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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기행2..청산리전투의 영웅,김좌진장군의 생가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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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3,419회 작성일 16-03-1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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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 김좌진장군의 생가에서..2016.3.8.화. 둘이서 2016년 3월 8일 충남 내포신도시 2013년 충남도청이 새로 이전된 충남 홍성군 홍북면 신경리 용봉산 용봉사를 찾아서 떠난 여정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였으며 해발 381m 밖에 되지 않는 산이지만, 내포평야에서 바로 솟구쳐서 웅장하고 장엄하게 보였다. 용과 봉황이 있다는 용봉산(龍鳳山)! 그 금계포란형(金鷄包卵形) 지대에 용봉사, 병풍바위등을 돌아보고 홍주성과 김좌진장군생가지를 돌아보고 왔다. * 내포지역은 내포평야일대를 말하며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에 의하면 '內浦'란 과거에 예산, 당진, 홍성, 서산 일대를 일컫던 지방명으로 水路가 內陸깊이 들어 작은 浦口를 이룬다하여 지은 이름이다. 삽교천과 그 지류인 무한천, 석우천 등이 복류하면서 토사를 하천연안 곳곳에 퇴적하여 넓은 충적지를 이루었다. 野生花 作 '백련白莲 / 최정신' 총남 홍성에서 2016.3.8.화 용봉산용봉사▶홍주성▶김좌진생가및 기념관 2편: 김좌진장군의 생가지와 기념관 김좌진장군의 생가지는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백야로 546번길 12(행산리330-1)에 위치한다. 서해안고속도로 홍성 IC를 빠져나가 약 10여분 정도 가면 찾을 수 있고, 네비게이션 없이 표지판만 봐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백야 김좌진 장군이 태어나신 생가터에 생가를 복원해놓았고, 생가 옆으로 백야기념관, 뒷편으로는 사당과 공원이 만들어져 있어서 애국심과 여유로움을 한꺼번에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등 뒤로 보이는 건물이 백야김좌진기념관이다. 입구에 꾸며진 하트에서 포즈를 취한다. 백야 김좌진 장군 어록비 단장지통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데 칼끝에 찬 서리가 고국 생각을 돋구누나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말인가 단장의 아픈마음 쓰러버릴 길 없구나! 김좌진 장군 생가지(金佐鎭 將軍 生家址) 관리사무소 문간채와 함께 3칸규모의 건물을 하고 있는 안채대문 湖明精舍(호명정사) 家奴解放民族春(가노해방민족춘- 집안의 노비를 해방시키니 민족의 봄이로구나) 靑山大捷光復身(청산대첩광복신- 청산리대첩으로 몸은 다시 빛을 찾아왔다) 김좌진 장군 생가로 복원한 이 한옥은 '-'형으로 앞면 5칸반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가 붙어 있는 일체형 한옥구조이다. 남녀를 분리한다는 유교적 관념에서 안채와 사랑채가 분리되었던 일반적인 양반가 저택과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다. 사랑채는 안채와 같은 건물이면서도 안채보다는 높게 만들고 양쪽으로 툇마루를 두어서 구한말에 크게 유행한 누마루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랑채 문 위에 걸린 액자에는 김좌진장군의 서한이 있다. 우물 斷腸之痛(단장지통- 단장의 아픈마음) 刀頭風動關山月(도두풍동관산월- 적막한 달밤에 칼머리의 바람은 세찬대) 劍末霜寒故國心(검말상한고국심- 칼끝에 찬 서리가 고국 생각을 돋구누나) 三千槿域倭何事(삼천근역왜하사- 삼천리 금수강산에 왜놈이 웬말인가) 不斷腥塵一掃尋(부단성진일소심- 단장의 아픈마음 쓰러버릴 길 없구나!) 壬申之夏謹錄(임신지하근록- 1992년 여름 삼가 기록함) 白冶將軍詩(백야장군시- 백야장군의 시) 斷腸之痛一首(단장지통일수-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 한 수) 如初居士(여초거사- 김응현金膺顯1927-2007) 안채 대청마루의 유품들 청산리 전투를 지휘하여 대승으로 이끈 백야 김좌진 사령관 "할일이.....할일이 너무도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그게 한스러워서" "중국북만주 산시역 부근 정미소에서 공산당원인 박상실이 쏜 흉탄을 맞고 순국하시기직전 장군의 말씀중에서" 謹頌 白冶 金佐鎭將軍(근송 백야 김좌진장군- 삼가 칭송합니다 백야 김좌진장군) 本生安金忠義裔(본생안김충의예- 본래 어찌 김충의 후예로 태어나셔서) 自少非凡放家奴(자소비범방가노- 스스로 소시 때 비범하시어 집안의 노비를 해방시키시고) 出國遼東布宣戰(출국요동포선전- 요동으로 출국하시어 왜적과 싸우러 나가시며) 大韓獨立爲己任(대한독립위기임- 대한독립을 자기의 임무로 삼고) 靑山一戰得大捷(청산일전득대첩- 청산리 일전으로 대첩을 얻었으니) 史上永傳萬世功(사상영전만세공- 역사상 영원히 만세에 그 공을 전하리) 敢願爲國忠魂靈(감원위국충혼령- 감히 원컨데 나라를 위한 충성 혼령이시어) 祖國統一遂繁榮(조국통일수번영- 조국이 통일을 하여 드디어 번영토록 해주십시요) 己未三月下澣(기미삼월하한- 1979년 3월 하순) 後學 星藏 韓甲東 謹呈書(후학 성장 한갑동 근정서- 후학 성장 한갑동이 삼가 쓰고 드립니다) 대청마루에서 바라 본 누마루가 있는 사랑채 사랑채 내부에는 당시 양반들이 앉아서 책을 읽던 책상이 놓여 있다. 대문 바깥쪽에는 3칸짜리 마구간을 두고 있다. 말을 탄 장군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백야 김좌진 장군 사적비 장군의 기념관 뒷편에 있는 백야공원으로 나가는 문이다. 백야공원을 지나면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나온다. 백야 김좌진장군 생가지터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76호로 1989년 12월29일 지정되었다.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 330-1번지 기념관 내부로 들어선다. 입구에서 청산리 대첩을 표현한 부조를 배경으로 백야 김좌진 장군의 흉상을 만난다. 내부는 교실 1칸 정도의 작은 규모의 전시실이었다. 김좌진 장군과 관련한 복제 문서 몇건과, 친척들로부터 기증받은 김좌진 장군이 사용하던 생활용품 몇가지와 또 김좌진 장군의 생애나 활동을 패널을 통해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백야김좌진장군기념관은 백야 김좌진장군의 독립 운동을 세 시기로 구분해 놓았다. 첫번재 시기는 1910년 국권 강탈 이전 국내에서의 애국 계몽 운동기, 두번째 시기는 국권 강탈 이후의 국내에서의 국권 회복 운동기, 마지막 세번째 시기는 1917년 만주로 건너간 이후의 무장 독립 투쟁기로 구분되어 있다. 패널이나 유물들도 이런 시기 구분에 따라서 전시해놓았다. 김좌진의 약력 김좌진이 서거한 1930년 1월 24일 (음 1929년 12월 25일) 작성되어, 동년 1월 29일 사회장 식장에서 낭독되었던 김좌진의 약력 서탁과 김좌진이 서당에서 공부하면서 배운 서책 김좌진 서한 1901년 9월 5일(음 7월 23일) 김좌진이 스승에게 보낸 편지 백야 김좌진장군의 생애이다. 기념관 입구에 있는 패널 내용인데 글씨가 흐려 그대로 옮겨 적는다. 백야 김좌진장군은 1889년 충청남도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1907년 대한제국무관학교를 졸업한 김좌진은 고향에서 호명학교를 설립하여 신학문을 교육하였으며 기호흥학회 지부를 조직, 활동하였다. 또한 1907년 비밀결사인 신민회에 가입하였고, 1908년에는 노백린 등과 함께 신민회의 청년 기구인 청년학우회 활동에 참여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당하자 김좌진은 이창양행을 설립하고 해외 독립운동가들과 비밀 연락을 하기도 하였다. 1911년 독립 자금을 모금하다 체포되어 2년 6개월간 옥고를 치루었으며, 1915년 박상진 등이 조직한 비밀 조직인 대한광복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17년 대한광복회 부사령이 된 김좌진은 당시 만주의 독립군 단체인 중광단으로부터 독립군을 양성하여 달라는 요청에 의해 만주로 망명하였다. 1917년 만주로 망명한 후 대종교에 가입하였으며, 3.1운동의 전주곡이 된 대한독립선언서에 민족 대표로서 서명하기도 하였다. 1919년 12월 대한군정서의 총사령관에 선임된 김좌진은 총재 서일을 보필하는 한편, 사관연성소를 설치하고 독립군 간부 양성에 노력을 기울였다. 1920년 10월에는 독립군 소탕을 명목으로 간도에 침입한 일본군을 청산리 계곡에서 격파한 "청산리대첩"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일본군의 추적을 피해 북만주 밀산으로 이동, 그 곳에 모인 10여개의 독립군 조직들을 연합하여 대한독립군단을 결성하고 부총재에 취임하였다. 1925년 3월 김좌진은 김혁 등과 함께 신민부를 조직하고 군사부위원장 겸 총사령에 선임되어 활동하였고, 또한 1925년 10월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으로 피선되었으나, 독립군의 무장 투쟁을 위하여 취임을 사양하기도 하였다. 1927년 당시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 김혁 등이 일제에 의해 체포되자 신민부를 재정비하고 중앙집행위원장에 취임하였으며 1928년 신민부, 참의부, 정의부 등 3부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29년 신민부와 정의부 일부를 통합하여 한족총연합회를 조직하고 주석에 취임한 김좌진은 독립 운동의 전개와 동포 사회의 안정을 위하여 힘쓰다 1930년 1월 박상실에 의해 암살당하였다. 중국 흑룡강성 혜림시에서 한족총연합회의 주도로 사회장이 치루어지고 1934년 국내로 유해가 몰래 들어와 이곳 홍성군에 안장되었다가, 묘소가 1957년 보령시로 이장되었고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김좌진 장군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 졸업하고 장교에 임관되었다. 그러나 임관 직후인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고향으로 내려왔다. 고향 홍성으로 돌아온 김좌진은 재산을 털어 호명학교를 설립하고 신학문을 교육하였으며, 경기와 충청 지역 의 교육 계몽을 목적으로 조직된 기호흥학회의 홍성 지부를 설립하고 활동하였다. 또한 1907년 안창호, 이승훈, 양기탁 등이 국권 회복을 위한 비밀 결사 단체로 조직한 신민회에 참여하였고, 1909년 8월 신민회 산하 청년 단체인 청년학우회가 조직되자 가입하고 활동하였다. 또한 오성학교 교감으로 교육활동을 전개하였으며, 한성신문의 이사직을 맡아 언론 투쟁도 전개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당하자 백야 김좌진 장군은 이창양행이라는 무역상회를 설립하고 독립운동가들과 연락을 꾀하는 한편 군자금 모금등의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다 일제에 피체되어 2년 6개월간 옥고를 치루고 출옥하였다. 1915년 김좌진은 국내에서 박상진 등이 중심되어 조직한 비밀결사 조직인 대한광복회에 참가하여 대한광복회 부사령에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17년 대종교인 서일의 초청에 의해 만주로 망명한 김좌진은 대종교에 입교하여 무장독립투쟁을 준비하였다. 당시 대종교는 1909 나철에 의해 민족종교로서 창교되었으며, 1914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본사를 만주로 이전하고, 군관학교를 설립하여 군대를 양성하였으며, 중광단이라는 무장독립운동 단체를 설립하고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만주에서 무장 독립운동 활동을 하던 김좌진은 김교헌,김동삼,신규식, 김규식 등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저명인사 39인과 함께 3.1운동의 전주곡이 된 대한독립선언서에 민족대표로서 서명을 하였다. 대한독립선언서는 1918년 음력 11월 주로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대종교인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가 39인이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며 발표한 것으로서, 일명 무오독립선언서라고도 한다. 이 대한독립선언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서로서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과 민주자립국임을 선포하고 있으며, 무력을 통한 국권회복을 주장하고 있다. 북간도의 대종교인을 중신으로 결성되었던 중광단은 1919년 3.1운동 이후 정의단으로 확대, 개편되었다가 무장 독립 투쟁을 위하여 대한군정서로 재편성되었다. 이후 1919년 12월 대한군정서는 임시정부의 명령에 의하여 북로군정서로 개칭하였으며, 총재는 서일이 맡았다.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에 임명된 백야 김좌진 장군은 독립군의 군사 훈련과 무장 독립 투쟁에 전력하였으며, 사관연성소 교장으로 초급 장교를 양성하는 등 군비를 확장하였다. 김좌진 등의 노력으로 청산리 대첩 이전 북로군정서는 총대원 약 1,100명에 달하였으며, 무기는 소총 800정과 기관총 4정, 대포 및 수류탄 약 2,000여발에 이르는 등 대규모의 군대로 성장하였다. 1920년 10월 독립군 소탕을 목적으로 일본군이 간도에 침입하자, 김좌진은 북로군정서와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등과 함께 연합 부대를 형성하고, 청산리에서 일본을 대파하는 청산리대첩을 거두었다. 이후 일본군을 피하여 만주 밀산으로 이동한 북로군정서는 대한독립군 등과 연합하여 대한독립군단을 형성하였다. 위에서 나온 것처럼 이후 1930년 암살당할 때까지 만주 지역의 무장 독립 투쟁을 주도하였다. 백야 김좌진장군하면 떠오르는 청산리대첩은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까지 6일동안 청산리 계곡 일대에서 김좌진장군이 이끌던 북로군정서를 중심으로 독립군 연합 부대들이 벌였던 10여차례의 크고 작은 전투를 합쳐서 일컫는 것이다. 10월 21일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완루구 전투, 22일 천수평 전투와 어랑촌 전투, 23일 맹개골 전투와 만기구 전투, 24일 쉬구 전투, 24일부터 25일가지 벌어진 천보산 전투, 26일 고동하 전투가 벌어졌다. 당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발표한 전과표를 보면, 일본군은 연대장 1인을 포함하여 1,257명이 사살되었고 200여명이 부상을 당하였다. 반면, 독립군은 전사 1인, 부상 5인, 포로 2인에 불과하였고 소총 500정, 기관총 4정 등을 전리품으로 획득하였다. 아래 사진은 청산리대첩이 벌어졌던 지역을 표시한 지도이다. 청산리대첩 1920년 10월 일제는 간도의 독립군을 소탕한다는 명목으로 대규모의 군대를 출동시켰다. 이에 백야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는 군대를 2개부대로 편성하고 백두산 부근으로 이동하던 중, 10월 21일 간도 삼도구 청산리 골짜기백운평에서 일본군기병대를 맞이하여 전투를 개시하였다. 이 전투에서 김좌진은 일본군을 백운평 절벽 밑으로 유인한 후 일제히 공격하여 일본군 1개 중대를 섬멸하였으며, 뒤에 도착한 일본군대에게도 타격을 가한 후 퇴각하였다. 이어 22일 새벽 김좌진은 천수평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기병대를 기습하여 몰살시켰으며, 또한 추격하여 오던 일본군을 홍범도의 독립군과 합동으로 어랑촌에서 격퇴하였다. 이후 부대를 소규모로 편성한 김좌진은 계속하여 명개골, 천보산 등지에서 일본군을 격파하였다. 이 청산리대첩에서 북로군정서를 비롯한 독립군 연합부대는 일본군 약 1,200여명을 사살하는 등 독립전쟁 최대의 전과를 올렸다. 청산리전투를 묘사 북로군정서 대원들의 청산리대첩 기념 사진(가운데 앉은 분이 김좌진) 독립군 사용무기 1929년 한족총연합회를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김좌진 장군은 1930년 만주 중동선 산시역 부근의 정미소에서 작업을 하던 중 일제 고등계 형사 김일성의 사주를 받은 박상실에 의해 암살되었다. 김좌진 생가지 관람을 마지막으로 하루여정을 마친다. 입구로 나오면서 러브포토존을 다시 만난다. 그냥 가시게요? 그러지 마시고예 이번엔 님께서 오신 기념으로다강 저기 하트서 포즈 취해보세요. 예 좋아요. 찰칵! 아~ 찍혔습니다. 멋진포즈, 사랑과 감사드립니다. 사진및편집:찬란한 빛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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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빛e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닉을 다시 변경했습니다.
찬란한 빛▶▶찬란한은빛소녀▶▶찬란한빛e 로..
현재 사용될 닉은
'찬란한빛e'입니다. 헷갈리지 마세요.ㅎ

찬란한빛으로 바꾸려고 했는데
이미 사용중인 회원님이 계셔서 부득불 닉 뒷부분에 '이(e)'자 하나 더 붙였습니다.
오늘도 고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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