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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교동답사에서..향교ㆍ읍성ㆍ수군통어영ㆍ부근당ㆍ정제두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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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091회 작성일 16-04-16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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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生花 作 '박꽃/임진이' 봄바람 꽃바람, 강화도 교동답사에서 2016.4.9.토. 교동향교ㆍ 화개사ㆍ 교동읍성ㆍ 수군통어영ㆍ 우리옥(중식)ㆍ 정제두묘ㆍ이건창생가 교동향교 홍살문(紅箭門) 陵, 園, 궁전, 관아, 鄕校, 서원, 旌閭閣에 세운 문으로 사악한 무리를 쫓아내고 모든 이들이 이곳에서 경의를 표하라는 뜻이 있다. 전국에는 많은 교동(校洞)이 존재한다. 교동의 교는 거의가 학교 교(校)를 쓴다. 이는 당시 향교가 이 지역에 있었음을 말하는 증거이다. 강릉교동,경주교동,전주교동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하지만 교동도의 교동은 높을 교(喬)와 오동나무동(桐)을 쓴다. 당시 교동에는 오동나무가 많았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동도의 향교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설립된 향교로 알려져 있다. 교동도는 민통선 지역이다. 전국에서 14번째 큰 섬이지만 황해도 연백과 붙어 있다보니 개발도 늦었고, 군사적으로도 통제되었던 곳이다. 다행히 2014년 6월에 교동도가 개통되면서 왕래가 자유로워졌지만 지금도 다리입구에서 군인들로부터 차적과 신분확인 절차를 거치고 가야만 하는 곳이다. 교동향교 향교는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 백성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세운 지방교육기관이다. 교동도 향교는 인천 유형문화재 28호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로 알려져 있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 안향이 원에 사신으로 갔다가 공자와 민손(閔損), 영경(冉 耕), 염옹(冉 雍), 재예(宰豫), 단목사(端木賜), 염구(冉求), 중유(仲由), 언언(言偃), 복상(卜商), 전손사(顓 孫師) 등 10철(10哲)의 초상화를 모셔와 문묘에 모시면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고, 제사공간을 형성하는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다. 이외에도 내삼문·외삼문과 제기고 등이 있다. 교동향교의 외삼문(喬桐鄕校 外三門)에서..붉은의상, 교동향교 전교(典校)님 명륜당(明倫堂) 서울의 성균관이나 지방의 각 향교에 부설되어 있는 강학당(講學堂)을 말한다. 명륜이란 인간사회의 윤리를 밝힌다는 뜻이다 명륜당 내부 현판, 중수기 重修記 我喬桐境地 有靈山 山不高而秀麗 林不長而茂盛 眺望長流四海風景 曰華蓋 幽松叢立 八字形址 北背南向 一坐雄殿 稀謂曰 孔聖享祠之所 而是鄕校也.<중략> 중수기 우리 교동땅에 영산이 있어 산이 높지않고 수려하며 수풀은 길지 않지만 무성하며 긴 흐름과 사해 풍경이 멀리 바라보여 이르러 화개산이라 하였다. 깊은 송림이 우뚝 솟아있고 팔자형태의 터와 북을 등에 지고 남쪽을 향하여 하나의 커다란 집을 세우니 드믈게 이르기를 공자성인의 제사를 올리는 곳으로 바로 이곳이 향교입니다. 初建華蓋山北麓 孔子廟奉安 李朝中葉 華蓋山南麓 現位置移建于.<중략> 처음에는 화개산 북쪽 기슭에 공자묘를 봉안하였으나 조선 중기 화개산 남쪽 기슭인 현재 위치에 옮겨 건축하였다. 歲久頹廢 欲急補修 資金無融 抵事未由中 西紀壹仟九百七拾四年 京畿道文化財五十八號 指定契期 政府 補助令達幷而本面儒林諸賢誠念贊助 合理施工 適有任員眞心監役改築 明倫堂及東西齋室改建.<중략> 세월이 오래가고 퇴락하고 무너져서 급히 보수하려했으나 자금이 어렵던 중 서기 1974년 경기도문화재 58호로 지정되는 계기로 정부 보조금과 본 면의 유림 제현의 찬조금으로 합리 시공하고 감독하여 명륜당과 동서재를 개축하였다. 孔子誕降貳仟五百參拾貳年 西紀壹仟九百八拾壹年 八月 日 공자탄신2532년, 서기1981년 8월 일 工事費 內譯 政府補助 四仟萬원 儒林贊助 壹百七拾萬원 前典校 黃鳳熙 謹撰 前掌議 韓永壽 謹書 典 校 方庚祿 掌 議 韓基一 동재(東齋)-원생의 기숙사-의 굴뚝 老龍巖 吊軒北庭層階下. 上有老松盤鬱. 下有築壇 丁酉年.忠愍公李鳳祥題老龍巖三字. 其後五十七年癸巳. 其孫達海撰刻古蹟. 去庚辰統禦使李奎書題刻. 虎距巖將軍灑風七字. 辛卯春重築石臺. 丁卯喬桐鄕校移置. 노룡암(老龍巖)번역 노룡암은 원래 교동현 동현 북쪽뜰 층계 아래에 있었는데 위에는 울창한 숲속에 늙은 소나무가 있고 아래에는 축단이 있었다. 丁酉 1717년(숙종 43)에 충민공 이봉상(忠愍公 李鳳祥)이 노룡암이라고 3자를 지었는데, 그후 57년 癸巳 1773년(영조 49)에 그의 손자 달해가 그 고적에다 글지은 것을 새기었다. 경진 1820년(순조 20)에 가서 통어사 이규서가 호거암장군쇄동(虎距巖將軍灑風) -호거암장군이 풍기를 깨끗이 하였다-는 7자 글체를 새기었다. 신묘 1831년(순조 31)봄에 거듭 석대로 쌓아 있었던 것을 정묘 1987년 교동향교에 옮겨 놓았다. *이봉상의 자는 의숙(儀叔)이요, 이순신(李舜臣)의 후손인데,장수의 재목으로 특별히 천거되어 무과 급제하였고, 승지, 포도대장, 훈련대장 등을 거쳐 형조참판에 이르렀다. 영조때에 영의정 이광좌의 미움을 받아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좌천되어 청주병영에 있을 때 이인좌의 반란이 일어났다.무신년(1728년) 겨울,눈 내리는 밤에 적도들이 청주 병영을 사방으로 포위하고,병사(이봉상)를 생포하여 항복을 받으려 했으나 끝까지 항거하다가 순절했다. 좌찬성을 추증하고 시호를 충민이라 하였으며, 충신 정려를 명하여 현충사에 배향하고, 부조묘를 명했다.묘는 탑동산에 있는데, 신도비는 도암 이재가 비문을 짓고, 대사헌 민우수가 글씨를 쓰고, 영의정 유척기가 전수하였다. 대성전 현재 교동향교의 대성전에는 공자,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 오성위와 송조2현(정자,주자),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석전대제가 중요무형문화재 85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석전대제의 석전은 동방문화민족의 뿌리이며, 인류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몸바친 성현의 빛나는 전통을 계승 발전 시키고자 하는 추모행사를 말한다.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 대성전을 열어주셨다. 우측엔 방형길 교동향교 전교님이시다. 안향이 모셔왔다는 공자초상 원본이다. 교동향교 대성전 선성선현위패 봉안위차도 중앙: 공자, 증자, 안자, 맹자, 자사 서벽: 최치원,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새체, 정호 동벽: 설총, 안유,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 주희 교동 화개사(喬桐 華蓋寺) 소재지: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화개사(華蓋寺)는 창건시기와 유래는 알수없으나, 고려 삼은(三隱) 중 한 명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이 이 절에 머물며 독서를 즐겼다고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있다. 1967년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이듬해에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법당이 있고, 유물로는 옛 절터에 팔각원당형 부도 1기가 있다. 화개사(華蓋寺)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폐위되어 교동에서 생을 마감한 연산군과 그의 부인 신씨의 화상으로 추정하는 탱화가 걸려있는 부근당이 우측에 위치해 있다. 연산군과 그의 부인 신씨의 화상으로 추정하는 탱화 남문 홍예만 남아 있는 교동읍성 남산포 안쪽으로 교동도호부 관아가 있는 읍성이고, 그 뒷 화개산에는 읍성의 방어기능을 보와하기 위한 화개산성이 있었다고 한다. 둘레 약 430m. 높이 약 6m.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3호. 이 성곽은 강화도 서편의 교동도에 축조된 고을성으로 1629년(인조 7)에 쌓은 것이라 한다. 성을 쌓은 목적은 예로부터 서해안의 방어를 위한 것이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 성 안에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의 본진이 주둔하여 왔다. 원래 이 성에는 세 곳에 문루를 갖춘 성문이 있었는데 동문에는 통삼루(統三樓), 북문에는 공북루(拱北樓), 남문에는 유량루(庾亮樓)란 문루가 있었다고 한다. 1753년(영조 29)에는 당시의 통어사 백동원이 성곽과 여장(女墻)을 고쳐 쌓았고, 1884년(고종 21)에는 통어사 이교복이 남문을 중건하고 또한 문루와 성벽을 수리하였는데 공사를 끝내지 못하였다. 그 뒤 1890년(고종 27)에도 동문과 북문을 고쳐 세웠는데 세월이 흘러 무너졌다고 한다. 특히 남문의 유량루는 1921년의 폭풍으로 무너졌으나 홍예(虹霓) 부분만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는 도서와 해안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 외적의 방어를 위해 고을성을 많이 축조하여 왔는데 교동읍성 이외에도 인근의 강화읍성, 충청남도의 해미읍성과 안흥성, 전라북도의 고창읍성, 전남 진도의 남도석성 등을 들 수 있다. 홍예문 기초석에 새긴 글 남루南樓 남문 입구 좌측에 비신은 사라지고 받침대만 남아있는 돌거북이다. 뒤편 갈대, 둑을 막아놓은 곳이 원래는 바다로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 옛 수영의 흔적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정박시 배를 묶어두던 계류석(繫留石) 경기도, 충청도, 황해도를 관할로 하는 수군통어영이 있던 자리인 지금의 남산포는 조그만 시골어항이다. 사신당은 남산포 앞 급경사 산길을 밧줄잡고 유격훈련하듯 올라야 닿는다. 사신당 안을 들여다 보니.. 남산포로 내려오는 산길은 더 위험했다. 안전을 위해 조심조심. 강화 교동읍성 남쪽편 남산포, 삼도수군통어영이 있던 포구이다. 인조7년(1629) 남양 화령진에 있던 경기수영(京畿水營)이 교동현으로 옮기면서 교동도호부로 승격(昇格)되었고 인조11년(1633)에 이르러 경기 황해 충청도 수군(水軍)을 총괄(總括)하는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이 교동도 남산포에 설치되었다. 남산포는 고려시대 도성(都城)의 관문(關門)으로 중요한 지리적 위치에 있었으므로 사신당(使臣堂)과 사신관(使臣館) 터가 남아있으며 선박을 계류(繫留) 할 때 사용했던 계류석(繫留石)도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경기수영과 통어영이 필요에 따라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고종3년(1866) 강화에 있는 진무영(鎭撫營)이 강화되어 진무사(鎭撫使)가 정2품으로 승격되면서 통어영(統禦營)이 강화(江華)로 옮겨가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각도 수군을 지휘하기 위해서 정3품 외관직인 수군절도사를 두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경상,전라,함경도에 각 3명, 경기,충청 평안도에 각 2명, 강원,황해도에는 각1명을 두었다고 한다. 대부분 관찰사와 병마절도사가 겸임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경상,전라에 각2명, 경기,충청에만 각 1명씩 독립된 정직의 수군절도사가 있었다. 수군절도사가 있던 곳에는 수영이 설치되었는데 동래,거제,여수,교동,보령,옹진 등이 유명한 수영이었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각도의 수군을 통괄 지휘하기 위한 수군통제영이 통영에 설치되었으며, 병자호란 이후에는 한강하구를 지키기 위해서 강화도 교동도에 경기,황해,충청 수군을 총괄지휘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이 설치되었고, 교동도호부 부사가 이를 겸임하였다. 한강이 서울을 지나 서해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교동도는 그리 큰 섬은 아니지만, 한강 조운을 관리하고 유사시 바다로부터의 적의 침입을 대비하기 위해서 국방상 아주 중요한 요지로 삼국시대 이래로 별도의 행정기관이 교동현에 설치되어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만주에서 등장한 청나라 세력에 위협을 느낀 조선은 고려때 대몽항전의 예를 참조하여 강화지역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서 남양(화성)에 설치되어 있던 경기수영을 교동도로 옮기면서 경기,충청,황해도 수군을 통합 지휘 할 삼도수군통어영을 교동도애 설치하면서 교동헌을 도호부로 승격시켰다. 지금의 남산포는 조그만 시골어항으로 정박하고 있는 배 한척이 쓸쓸하다. 교동읍성 남쪽편 갯벌 중식은 강화관광안내 가까이에 위치한 '우리옥'에서 '냠' 032-934-2427.강화읍 신문리184 한정식, 병어찌개 샛노란 개나리꽃이 우리 길손을 반기며 화사히 피어 있었다. 정제두 묘를 향해 오른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산 165 아래쪽으로 정제두 선생의 부친 정상징과 모친 한산 이씨 묘소 贈 崇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五衛都摠莩摠管成均進士鄭尙徵墓 贈 貞敬夫人韓山李氏祔左 (증 숭록대부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 오위도총부 도총관 성균진사 정상징묘) (증 정경부인 한산이씨 부좌) 정제두 선생의 부친 정상징과 모친 한산 이씨 묘소에 핀 할미꽃 고개숙인 할미꽃이 무덤 위 여러곳에 피어 있었다. 할미꽃이 지니 할머니의 하얀머리카락처럼 변했다. 이렇게 할머니 머리카락처럼 보인다고 해서 꽃명이 할미꽃이란다. 옆에 나란히 동행했던 일행 한분이 내게 일러준다. 이건창 생가, 명미당 (화도면 사기리 167-30) 이건창 생가, 명미당 굴뚝이 이색적으로 멋스럽다. 생가 뒷산 이건창의 조부 이시원 묘 본래 길상면 길직리에 있던 것을 1985년 정경부인 청송심씨와 함께 이곳에 합장한 묘이다. 증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영의정 행정헌대부이조판서겸홍문관제학 지종정경부사시충정이공휘시원지묘 증정경부인청송심씨 합부 이건창의 7대조 이대성(李大成)의 묘 이건창의 조부가 이시원(2대) 이시원의 증조가 이광명(3대) 이광명의 조부가 이대성(2대) 계7대(이건창의 7대) 이건창의 7대조 이대성신도비 이건창생가 뒷편 위쪽인 바로 앞이 이건창의 7대조 이대성의 묘이고, 아래쪽이 이건창의 조부인 이시원의 묘이다. 이건창은 어린 시절 이곳 선조들이 묻힌 언덕 아래서 자라며 양이(洋夷)의 강화도 침범에 자진한 할아버지 이시원 형제의 순국을 목도했다. 또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도 이곳에서 일본의 강점에 분개하고 기우는 나라를 걱정했다. 그리고 고종 35년 마흔여섯의 많지 않은 나이에 이곳 강화 땅에 묻혔다. 이건창 생가앞에 우리를 데려다 준 버스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이건창의 5대조 이광명(李匡明)묘가 위로 보인다. 막혀있어 접근할 수 없었다. 명미당 이건창선생 문학비(明美堂李建昌先生文學碑) 崧陽道中(숭양도중) - 숭양가는 길에 崧陽六載五經過(숭양육재오경과) - 개성을 육년 사이에 다섯번 지났지만 不見扶山與彩霞(불견부산여채하) - 부소산과 채하동도 들르지 못했네. 細數一生遊宦事(세수일생유환사) - 자세히 헤아리니 일생 동안 벼슬살이에서 會心偏少役形多(회심편소역형다) - 마음에 맞는 일보다는 몸만 고달팠네. 명미당 이건창(明美堂 李建昌)선생은 맑고 고운 시문으로 구한말의 사단詞壇을 빛낸 문장가요 시인이시며, 양명학을 가학家學으로 받들고 고궁固窮을 가헌家憲으로 지킨 조선시대 선비의 전형이시며, 닦은 학문과 포부는 마음껏 펴지 못했지만 대쪽 같은 기개와 신념으로 불의와의 타협을 거부한 전통시대 관인官人의 모범이셨다. 선생은 조선왕조 제2대왕 정종의 별자 덕천군德泉君 후손으로 1852년 강화도 사기골에서 상학공象學公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으며 1898년 47년을 일기로 세상을 버리셨다. 선생의 자는 봉조鳳藻 호는 영재寧齋 또는 명미당明美堂이다. 일문이 강화와 인연을 가지게 된 것은, 5대조 광명공匡明公이 하곡霞谷 정제두鄭齊斗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비롯되었으며, 훗날 신임옥사의 여얼餘孼로 일문이 파가破家의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강화는 피세避世의 공간이자 삶의 터전이 되었다. 이로부터 종5대조 광사공匡師公을 비롯하여 고조부 충익공忠翊公 증조부 면백공勉伯公의 조자손祖子孫 양명학을 전수하여 강화학 200년 전통의 단초를 열었다. 병인양요 때 조부 시원공是遠公의 순절로 강화에서 별시를 보이자 선생은 15세의 어린 나이로 급제하였으며 19세에 옥당에 들어가 최연소의 패기를 자랑하였다. 이때 문명이 널리 알려져 개성의 김택영金澤榮과 구례의 황현黃玹이 찾아 들었으며 훗날 가장 가까운 문우文友가 되어 우리나라 한문학의 마지막장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선생은 암행어사, 한성부소윤, 승지, 공조참판 등 생애의 태반을 묘당에서 보냈지만 관인으로서의 선생은 큰 뜻을 펴지 못했으나 문장을 통하여 영채를 드러내었다. 갑오경장을 정변으로 단정한 선생은 1896년 해주관찰사에 임명되었으나 스스로 고군산도古群山島에 유배를 자원하여 조부 이래의 자강自强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문집 명미당집과 당의통략黨議通略을 저서로 남긴 선생은 당신의 시문집서전詩文集敍傳을 미리 지어두고 2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1997년 7월 5일 서울대학교 교수 문학박사 민병수 짓고, 소당 이수덕 쓰고, 한국문학비건립동호회 세우다. 이건창생가를 마지막 일정으로 일일답사기행을 마친다. 황룡우물, 연산적거지, 이규보묘, 대명항도 일정에 있었으나 시간부족으로 들리질 못함은 아쉬움이었다. 감사합니다. 찬란한빛e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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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박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박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찬란한빛e* 解說(作)家 님!!!
  "찬란한빛e"作家님!"江華島"의 風光을,즐`感해여..
  "鄕校"를 세우신 先祖(안향or안유)님을,尊敬합니다!
  "순흥安씨"의,4代祖`할아버님 이시고..저는,27代`子孫..
    郎君님과 꼭 함께,다니시는 貌濕이~ 아름답습니다!
  "김영희"作家님!歷史서린映像과,개나리`진달래等도..
  "연산君"과 "申씨婦人"탱畵모신,"扶芹堂"이 넘`쓸쓸..
  "병어찌개"와 "강화`순무깍두기"의~맛을 보셨네如!
  "찬란한빛e"作家님!멋진作品에 感謝오며,安寧해要!^*^

찬란한빛e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박사님 오셨군요.
27代`子孫..그러시군요.
귀하신 님, 남다른 시선으로 보셨겠습니다.
이번 답사는 여느때와 달리
많이 배운 흡족한 나들이었습니다.
병어찌개도 맛있게 들었구요.
고운정성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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