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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변기행3-윤동주생가ㆍ도문ㆍ연길체육관ㆍ새벽시장ㆍ야경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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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2,480회 작성일 16-06-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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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5.28.토.윤동주시인 고향 명동촌 생가뜰 시비 양옆에서 기념촬영 중국연변 포석조명희문학제 충북방문단 소속으로 다녀온 연변기행 2016.5.25.수-30.월(5박6일) 다녀온 곳 청주 국제공항▶연길 조양천 국제공항▶모아산▶15회 연변 포석 조명희문학제(연변 가무단 극장) ▶백두산 천지▶장백폭포▶온천지대 관광▶지하삼림관광▶소천지▶녹원담▶해란강▶비암산 일송정 ▶용정중학교(구 대성중학교) 윤동주 기념관, 이상설기념관▶용두레 우물,용정초등학교▶애심원 ▶새벽상설시장▶윤동주생가(명동촌)▶발마사지 체험▶북한접경지역 도문▶연길체육관(축구결승)▶서시장 3편 연변새벽상설시장ㆍ명동촌(윤동주생가)ㆍ북한접경지역(도문)ㆍ연길체육관ㆍ서시장 윤동주 생가와 명동교회 명동학교가 있는 명동촌 입구에 세워진 표지석 윤동주 생가, 명동촌이다. '윤동주'는 만주 북간도의 화룡현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 '명동明東'은 용정에서 서남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이 곳은 1899년 함경북도 종성 출신의 문병규(文秉奎), 김약연(金躍淵), 남종구(南宗九)와 회령 출신의 김하규(金河奎) 네 가문 140여명이 집단 이주해 세운 한인마을로, 북간도 한인 이주사에 이정표를 마련한 곳이라고 한다. 이전에 이 땅의 이름은 '부걸라재(비둘기 바위)'였으나 ‘동방, 곧 한반도를 밝히는 곳’이라는 의미로 ‘명동촌’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윤동주 집안의 북간도 이주는 증조부인 윤재옥(尹在玉)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재옥이 43세 때인 1886년 부인과 4남 1녀의 어린 자녀들을 이끌고 본래 살던 함북 종성군 동풍면 상장포를 떠나 두만강 건너편 자동(紫洞. 현재의 자동子洞)에 처음 자리잡으면서, 윤동주 집안의 북간도 생활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북간도 이주 역사로 볼 때 윤동주 집안은 거의 초창기라고 볼 수 있다. 북간도 이민 초창기에 윤재옥은 부지런히 농토를 일구어 부자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자수성가했다. 그리고 1900년 조부인 윤하현(尹夏鉉, 1875-1947) 때 명동촌으로 이사하여 명동 한인촌의 식구가 되었다. 윤동주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북간도 명동촌은 일찍부터 신학문과 기독교를 받아들인 마을이었다. 북간도 최초의 신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이 이상설 열사의 헤이그 특파로 문을 닫게 되자, 뒤를 이어 명동촌에서 '명동서숙'이 문을 열었다. 명동서숙에서 출발한 명동학교는 신학문과 민족의식을 가르치는 학교로 자리잡았다. 1910년 명동학교에 중학교 과정이 만들어지고, 이듬해 여학교가 설립되면서 명동촌은 북간도 민족교육의 거점으로 떠올랐다. 윤동주 생가의 대문 보존되기 전까지 방앗간으로 사용됐다는 명동교회, 지금은 명동역사전시관으로 사용중이다. 명동역사전시관(明東歷史展示館) 내부로 입장이다. 벽면에 게시된 게시물 여러점을 둔다. 1901년 설립된 장재촌. 최초서당 규암제 뜰에 마련된 유동주 조각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윤동주 생가를 향해 뚜벅걸음이다. 윤동주의 생가는 1900년경에 그의 조부 윤하현이 지은 집으로 기와를 얹은 10칸과 곳간이 달린 조선족 전통 구조로 된 집이었다. 윤동주는 1917년 12월 30일 이 집에서 태어났다. 1932년 4월 윤동주가 용정 은진중학교로 진학하면서 그의 집도 함께 룡정으로 이사하고 이 집은 매도되어 다른 사람이 살다가 1981년 허물어졌다고 한다. 그 후 1993년 4월 명동촌은 그 역사적 의의와 유래를 고려하여 용정시정부에서 관광점으로 지정했고 윤동주 생가는 1994년 연변대학 조선연구센터의 주선으로 중국 정부가 지원해 복원 건립했다. 그 후 2012년 중국조선족자치구가 9억여 원을 들여 윤동주 시인의 시집을 전시하기 위한 전람관과 작품비석을 세운 정원 등을 조성했다. 윤동주 생가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에 명동교회와 그 맞은편에 전람관이 있고 윤동주의 시가 새겨져 있는 많은 시비가 있는 정원을 지나면 가장 안쪽에 윤동주가 태어나고 자랐던 생가가 있다. 비록 새로 건축한 것이긴 하지만 당시에도 그의 집은 명동촌에서도 벼농사를 하는 몇 집 가운데 하나로 가세가 넉넉했다고 한다. 윤동주 생가 입구가 멀리 보인다. 그 앞으로 우리가 관람한 역사전시관 건물이 보인다. 생가 내에 마련된 시인 윤동주 서거 71주기 추모관이다. 윤동주 생가 내부 방 구조 방 내부 부뚜막이 있는 부엌으로 칸막이 없는 오픈된 방바닥과 이어져 마치 요즘 식당겸 거실로도 이용될 수 있는 온돌공간이다. 특이하게 보았다. 내부 공간이 10칸과 곳간이 달린 조선족 전통 구조중 부엌이 달린 1칸이다. 윤동주 생가 마루에서 일행들의 모습. 윤동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마을 명동촌에서 28년 생애의 절반인 14년을 보내며 자연을 벗삼아 시인으로서의 감수성을 키워나갔다. 또한 명동교회의 장로였던 할아버지와 한인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외삼촌 김약연의 영향으로 기독교신앙과 민족주의를 체득하며 1925년 만 8세의 나이로 명동소학교에 입학하였다. 명동소학교 시절부터 윤동주는 문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는데, 동기동창으로 윤동주 집에서 석 달 먼저 태어난 동갑내기 고종사촌 송몽규(宋夢奎)와 김약연의 조카로 윤동주와 외사촌간이었던 김정우, 그리고 문재린 목사의 아들인 문익환 등이 있었는데, 이들 모두가 문학 방면에 재능이 있었다. 서울에서 발행되던 <아이생활> <어린이> 등의 잡지를 구독하며 문학소년의 꿈을 키우던 이들은 5학년 때인 1929년 손수 원고를 모아 편집해서 <새 명동>이라는 잡지를 등사판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윤동주 생가뜰에 세워진 윤동주 조각품앞에서 일행들이 포즈를 취했다. 윤동주생가는 생가주변을 한창 정비 작업중이었다. 서시 / 윤동주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스치운다 내용 1941년 11월 20일에 창작되었고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詩)≫(1948)에 수록되어 있다. 윤동주 생가 대문 문패이다. 尹東柱 1940.4.. 생가를 다 둘러보고 나온다. 연변 조선족자치주 박물관앞에서 축구결승전 관람을 위해 잠시 대기중인 일행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이다. 요녕시(한족)와 연길시(조선족) 축구 결승전을 보기 위해서.. 바로 박물관 앞에 있는 2만명을 수용하는 대형축구장을 향해 가고 있다. 마침 축구결승전과 우리의 일정을 맞출수가 있어 포석문학제 주최측의 도움으로 운 좋게도 볼 수 있었다. 연변부덕축구구락부 체육관이다. 축구팬들로 북적되었고 경기장에서 흘러나오는 요란한 음향이 귀청을 찢는듯 했다. 28일 오후 3시 30분 연변팀 VS 료녕굉운팀 연길시 인민경기장에서 결승전 경기이다. 전광판에 4:1로 연변조선족축구팀 승리이다. 저 좁은 두만강 바로 건너로 보이는 곳이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시이다. 바지선이 강가에 고정되어 있고 작은 뗏목 유람선이 왔다 갔다한다 두만강 뗏목 유람선이다. 두만강의 전설 전하는데 따르면 옥황상제께서는 장백산 천지를 몹시 좋아하여 그곳을 천부의 물로 정하고 시위 백용신더러 지키게 하였다고 한다. 하루는 백용신이 옥황상제가 하사한 보물병에 전지물을 가득 담고 산아래로 내려가 놀고 있던 도중에 보물병이 그만 미끄러져 떨어지고 병안에 있던 천지물이 산세를 따라 바다로 흘러들어가 동쪽으로 흐르는 두만강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장백산천지는 옛적에 "두만박"이라 불리웠고 송화강, 압록강과 두만강 "세갈래 강의 발원지"이며 세갈래 강물중에서 두만강이 바다와 제일 가깝다고 하여 두만강은 "장백산천지의 적자"로 불리웠고 두만강도 이로하여 유명해졌다고 한다. 조선족 민간전설중에서 두만강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있는데 발원한 곳에서 한 구간의 물줄기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데 조선어에서 "두만"은 "도망"과 음이 비슷하여 "도망강"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조선족전설 전하는데 의하면 5,000여년전 천제의 아들 환웅은 3,000 충복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신시를 건립하였다. 그때 곰 한마리와 호랑이 한마리가 있었는데 매일 신단수 앞에 와서 사람이 되기를 빌었다. 이에 감동한 환웅은 그들에게 영험있는 쑥과 마늘을 주면서 백일동안 이것을 먹고 동굴에 피해 있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호랑이는 견디지 못해 사람으로 되지 못했지만 곰은 분부대로 하여 스무하루만에 녀인으로 되었으며 웅녀라고 이름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와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매일 신단수 앞에서 아들 낳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를 가상히 여긴 환웅은 사람모양으로 변하여 웅녀와 결합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단군이라고 이름지었다. 단군운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왕국-단군조선을 건립하였는데 조선은 평온한 아침햇살의 나라라는 뜻이다. 이로 인하여 단군은 조선민족의 시조로 존경을 받고 그 후대를 조선인으로 자칭하였다. 두만강과 해양진출 1886년. <중로훈춘동쪽국경조약> 에서는 중국국기를 단 선박이 두만강을 지나 일본해에 진입하는 것을 로씨아가 "막을 수 없다"고 규정하였다. 1964년. 중국은 조선측에 두만강 해양진출문제를 제출하였고 조선은 중국선박이 두만강하류를 통과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담복하였다. 1990년 5월28일. 길림성에서 두만강하구 한 구간의 과학고찰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1991년. <중쏘동쪽구역변경협의> 에서는 중국국기를 단 선박이 두만강하류에서 자유로 항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쏘련이 해체된후 로씨아측은 중국과 쏘련이 서명한 일체유효협의를 존중한다고 표시하였다. 1991년 6월3일. 우리나라는 제2차 두만강 바다 진입 과학고찰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여 52년동안 중단되였던 두만강해양진출권을 행사하였다. * 눈물젖은 두만강 과 비탄의 배경 이야기 국민가요로 불리우며 모두가 알고 있는 눈물젖은 두만강이지만 이 노래에 대한 애절한 사연이 있다. '1935년 독립투사 남편이 형무소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을 면회하기 위해 아내는 두만강을 넘어왔는데 남편은 이미 서울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곡가 이시우님이 그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 아내가 넘어온 두만강을 바라보며 그녀의 비통함과 나라잃은 설움을 생각하며 지은 노래이다. 그 독립투사가 당시 문창학 임시정부 교통총장이었다 한다. 자세한 이야기를 더하면 때는 1935년 여름, 유랑극단 예원좌의 일원으로 두만강 유역에 공연 갔던 작곡가 '이시우'는 당시 여관에서 쉬고 있었다. 피곤한 몸을 누이고 잠을 자려는데 옆방에서 들리는 한 여인의 비통한 울음소리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이시우는 이튿날 여관 주인으로부터 울음의 사연을 들었다. 그 여인의 남편은 여관주인과도 잘 아는 사이로, 항일 투쟁을 하다 체포되어 형무소에 갇히게 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부인이 두만강을 건너 면회를 왔다. 그러나 남편은 이미 일경에게 총살된 후였다. 남편이 사현당했다는 사실을 안 독립군 아내는, 그 날이 마침 남편의 생일인지라 생일제라도 드리려 여관방에서 술 한잔을 바치려 했는데, 이를 안 여관주인이 제사상을 차려 들여주자 여인은 북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통곡을 했다는 것이다. 사연을 들은 이시우는 밖으로 나와 그 여인이 건너온 한 서린 두만강을 바라보면서 나라잃은 설움과 남편잃은 비통함을 오선지에 그려나갔다. 그 곡을 극단 예원좌의 소녀가수 장월성에게 순회공연의 막간에 부르게했다. 그리고 노래의 사연을 소개하자 공연장은 이내 눈물 바다를 이루었다. 이 노래를 듣는 청중들이 감격해 하고 뜨거운 반응을 보이자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이시우는 이 노래를 정식 음반으로 남기고 싶어서 그당시 인기가수 '김정구'를 찾아갔다. 노래가 마음에 들었던 김정구는 작곡가 박시춘을 찾아가 음반제작 허락을 받고, 작곡가 김용호에게 부탁해 1절밖에 없던 노래를 3절까지 완성시켜 취입을 했다. 음반이 발표되자 김정구는 가는곳마다 무대에서 이 노래를 꼭 불러야 했을 정도로 반응이 대단했다. 1930년대 이시우가 작곡하고 김정구가 부른 '눈물젖은 두만강'은 나라를 빼앗기고,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의 애절한 심경을 울려 삽시간에 전 국민의 노래처럼 애창되어온 것이라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오/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랑>은 조선족의 유명한 민요이고 뜻은 "나의 랑군"이며 조선 고려시기의 사랑이야기에서 발원하였다. 한쌍의 금슬 좋은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은 안해의 험담을 듣고 집을 나갔고 남편을 만류하기 위해 안해는 뒤에서 따라가며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내용이, 바로 "나의 랑군" 즉 <아리랑>이었다. 일본통치시기 조선사람들은 <아리랑>을 구호로 봉기를 일으켰고 <아리랑>도 이때문에 널리 불러져 지금은 이미 조선민족의 가장 대표적인 고전가요로 되였다. 오랜 세월은 부동한 형식의 <아리랑>을 탄생시켰는데 그 중 <본조아리랑> <신조아리랑>.<밀양아리랑>. <강원도아리랑> 등 12가지 <아리랑> 이 제일 대표성이 있으며 가장 많이 부리우는 것은 <본조아리랑>이다. 중국 두만강변경로 관광안내도라는 한글이 있어서 읽기 쉽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는 의무적으로 모든 간판에는 한글을 병기하도록 되어 있다. 빙강관조(憑江觀朝) 두만강 정자에 기대어 강 건너 조선을 바라본다. 中朝友谊塔 앞에서 중국과 북한을 잇는 교량 아래로 작은 하천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한중(韓中) 최단 국경(國境)인 두만강이고, 그 위에 놓인 다리가 도문대교(圖們大橋:투먼다차오)이다. 위 사진에서 보듯이 도문대교 옆면 고동색은 중국, 끄트머리 두만강이 흐르는 곤색으로 칠해진 다리는 북한다리이다. 색깔로 중국과 조선이 구분되어 있다. 두만강 하류는 강폭이 넓다하는데 도문에서 바라본 상류는 강너비가 좁기에 두만강 푸른물에 배 띄워 노를 저을만한 강이 아니라 개천같은 느낌으로 넓지 않았다. 특히 강폭이 좁은 곳은 물과 10m정도라고 하니 겨울철 강물이 얼어붙으면 경계가 소홀한 틈을 타 월경(越境)도 가능해 보인다. 두만강 접경지대에는 5km의 강변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북한이 가까이 보이는 조망권에서는 북한 땅이 손안에 닿을 듯 보인다. 입구에서 입장료 한화 5천원을 지불하면 중국과 북한의 국경다리 경계선까지만 밟아 볼 수 있다. 맑은 날에는 집단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볼 수 있는데 다리를 밟지 않고도 사물을 관찰할 수 있었다. 도문대교 중조 국경선까지 걸어간다. 도문은 남으로 강을 사이두고 조선 남양시와 마주하고 북으로는 연변과 흑룡강성과 잇대어 있어서 군사요충지이고 교통의 인후이다. 현재 연변 각지와 장춘, 심양, 북경, 모단강 등으로 통하는 열차는 도문이 시발점이고 두만강연안에서 육로와 철도로 조선과 무역을 하는 제일 큰 해관(세관)이 여기에 있다. 변계선(邊界線) 변경선에서 필자의 모습 여기까지이다. 더 갈 수 없는 아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해 온다. 도문대교의 국경선에서, 가운데 붉은 선을 넘으면 북한이다 도문대교 국경선에서 바라 본 건너편 북한 산야와 북한 아파트이다. 아파트는 꼭 짓다 만 빈집 같아 보였는데 집단농장에서 일하는 여인들, 그리고 자동차가 지나가는 걸 보면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맞나 보다. 한낮 여름의 뜨거운 태양은 북한 남양시 땅에도 하얗게 내려 앉아 있었다. 집단농장에서 밭일 하다 잠시 쉬어가며 여담을 나누는 북한 여인 둘의 모습을 클로즈업이다. 작열하는 6월 태양 아래서 한 여인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우거진 녹음의 빛깔은 남이나 북이나 다름없이 짙푸르게 그리고 나무들도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북한을 관광토록 해관(세관)옥상에 시설해 둔 전망대는 많은 한국인관광객이 모이며 옛날엔 그 곳에 수상시장이 열려 북한사람과 서로 물건을 사고팔고 하였다고 한다. 또 도문시에는 홍범도장군이 일본군을 통쾌히 물리쳤던 현장인 봉오동 전적지가 있어 우리 민족에게는 특별한 감회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2015년 5월 kbs뉴스에 어린 꽃제비들이 먹을 것을 찾아 두만강 북-중 국경을 넘어오다 중국 공안에 체포되면, 도문교를 건너 다시 북한으로 끌려가는데 탈북자들은 이 다리를 북송(北送)다리로 부른다고 보도된 바 있다. 도문방문은 두만강 건너에 북한땅을 가까이서 볼 수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지만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 살며 코앞에 두고도 바라 볼 수 밖에 없는 현실에 가슴 저미는 시간이기도 했다. 중국 도문(투먼) 통상구(中國圖們口岸), 국경선에서 본 중국쪽 관문이다. 중국의 길림성 두만강 도문(투먼) 국경(豆滿江圖們國境)은 조선족 자치구 연길(연길:옌지)에서 동쪽으로 약1시간 30분가량 달려가면 두만강변에 위치해 있다. 도문대교(圖們大橋:투먼 다차오) 중국측 문 상단에 중국도문구안(中國圖們口岸)이라 적혀 있는데 글씨는 1991년 5월8일 장쩌민(江澤民)이 쓴것이다. 이 건물은 옥상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고 이곳 국문(國門) 전망대에서는 도문(圖們:투먼)의 두만강 유역 북한지역의 여러모습을 구경할 수가 있다. 연길 새벽 상설 수상시장을 둘러보다. 새벽 5시부터 8시까지 라는데 없는 물건없이 규모가 어마어마한 큰 장이다. 엔지랜드(연길 디즈니랜드)와 야경 구경 기행 마지막 오찬은 삼겹살로 해결후 비행장으로 이동이다. 5박6일동안 연변 기행은 이로써 모두 끝나고 청주 국제공항행 비행기에 오른다. 사진편집ㆍ글/ 찬란한빛 김영희(왼쪽에서 3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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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찬란한빛e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3편은 사진부터 먼저 구경하세요.
아직 미완성으로 해설은 준비되는대로 올리겠습니다.

5박6일 기행은 3편으로 마칩니다.

충북 동양일보 조철호회장님의 특별 배려로
충북방문단에 합류해서 다녀온 기행을
회원님들의 많은 사진을 오픈하며 보여드립니다.
회원님들께서도 오시면 그날의 모습을 다시 추억하며
하나로 뭉쳐 행복을 나누었던 그날의 기쁨을 다시 누려보세요.
감사합니다.

안박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박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찬란한빛e`김영희* 旅行作家님!!!
    "연변`龍井"- "明東"에 있는,"윤동주"生家..
    "中國朝鮮族`愛國詩人,윤동주古居,력사博物館"등..
    看板`文字의 낯설은 表現에서,世月의 흐름을느낍니다!
    平素에 늘 좋아라했던,"윤동주"詩人의 "序詩"가 방갑네如..
    "찬란한빛e`김영희"作家님! 生生한 映像에 感謝오며,安寧`要!^*^

찬란한빛e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안박사님께서 머물러주신 흔적을 바라보며 고마워합니다.
이일저일에 쫓기며 뜬구름처럼 지내다보니 늦어져서
일단 먼저 사진만 정리해서 올렸는데
빈자리 채우시며 고운정을 두셨습니다.
공부도 할 겸해서 여러자료를 찾아 미완성부분을 메우겠습니다.
오늘도 고마움에 열두폭치마에 가득 담아 온 복을 안겨드립니다.
축복을 드립니다.

찬란한빛e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미완성을 이제서야 해설을 담아 대충 완성되었습니다.
3편까지 완료되었지만 3편은 좀 부실한 듯합니다.
다녀온지 한참되어 일정도 헷갈렸고, 잊어버린 내용도 있고요.

그리고
5박6일간 어울리며 참 잘 지낸 아름다운 일행분들과
아름다웠던 먼길 동행을 오래도록 추억하기 위해 만든 기행물이어서
인물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언제나 고운시선으로 봐주시는 고운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여름철 건강에 유의하시고 늘 건강과 함께 행복을 빌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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