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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6월을 보내며 지난날 김포애기봉에서 바라본 북녘땅을 다시 상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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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791회 작성일 16-06-29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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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 본 강 건너 개풍군 북한 선전마을 애기봉은 155마일 휴전선의 서측방에 위치하여 북녘땅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최단거리 전망대로서 병자호란때 평양감사와 애첩인 애기와의 슬픈 일화가 서려있는 곳으로, 故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을 '애기봉'이라 명하다. 슬픈 일화가 서린 김포 愛妓峰에서 바라 본 북녘땅 호국보훈의 달 6월을 보내면서 2년전에 다녀온 김포 애기봉이야기가 생각난다. 2014.10.11.토.. 그때 다녀온 이야기를 다시 이곳에 옮긴 게시물이다. 애기봉 전망대에 설치된 망원경..500원짜리 동전을 넣어 이용한다. 오전 반려견 추모제에 참석했다가 지척에 있는 애기봉까지 다녀왔다. 처음 경험해 본 추모제 이야기를 시작으로 애기봉이야기로 맺음이다. 한지붕밑에서 10년세월을 오로지 주인에 대한 충직으로 살아왔던 지난날의 우리 반려견 연이는 인제는 나를 지켜주는 수호동물로 나와 함께한다. 연이와 함께 한 10년세월은 내 젊음도 더불어 꽃피웠던 날들이었다. 돌이켜 볼 수는 있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젊음의 그 시절을 떠 올릴라치면 잠시 꿈을 꾼 듯한 인생의 허망함이 가슴을 먹먹하게도 했다. 참 잘 살아 주었고 참 잘 살아 온 10년세월이다. 그 10년세월을 다시 돌아보는 반려동물추모제가 있다기에 많이 망설임끝에 울 연이를 보낸 김포월드펫 제10회 행사에 다녀 왔다. 동물의 생명도 귀히 여기는 동물애호가들의 행사이기도 하다. 추모행사를 마치고 돌아온 이튿날 새벽 자다가 환청에 놀라 깨게 된다. 옆으로 누운 내 등 뒤에서 울 연이가 짖는 "멍멍멍" 소리가 세번 나더니 그쳤다. 돌아보니 연이는 없었고 환청만이 여운으로 남아 있었다. '연이의 혼이 날 찾아왔었구나! 자기를 추모해 준 감사 인사를 하러 잠시 다녀간게로군!' 순간 느껴지면서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참 착한 연이, 동물이지만 동물로만 볼 수 없는 일이 내 가슴을 저민다. 그 이후로 울 연이는 더욱 내 가슴에 애틋하게 자리하게 되었다. 추모행사의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이곳에도 남기며 울 연이를 다시 생각한다. 그 날 반려견 추모제에서 점심식사까지 마치고 착잡한 마음으로 가까이에 있는 애기봉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이동 중 만난 한재당이다. 경기도 기념물 제47호,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224 연산군 때의 문신이면서 무오사화때 모함을 받아 28세의 젊은 나이로 죽임을 당한 한재 이목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애기봉으로 이동이다. 애기봉(愛妓峰) 애기봉은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와 조강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155m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 바다로 흘러가는 곳에 솟아 있다. 병자호란때 평양감사와 기생 애기와의 슬픈 일화가 서려 있다 하여 애기봉이 되었다. 정상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의 선전마을과 송악산 등을 볼 수 있어 관광객과 실향민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1993년에는 실향민을 위해 망배단이 세워졌다. 애기봉전망대는 서울 서측방의 최북단인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 해발 154고지에 위치하여 1.8km에 위치한 북한 개성직할시 판문군 조강리일대를 최단거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서 북한주민의 생활모습과 대남방송, 선전용 위장마을, 각종 장애물을 조망할 수 있으며, 고려 태조 왕건이 개성 뒷산인 송악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 고려 도읍지를 송악(지금의 개성)에다 정한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로 맑은 날씨가 되면 애기전망대로부터 북방 23km에 험준한 자태와 그 위용을 드러낸다 한국의 서측방 최북단에 위치한 애기봉전망대는 조국의 분단현실을 생생히 실감할 수 있는 국내 최단거리의 통일안보관광지이다. 이곳 관람은 현재 군 주둔지역으로 출입통제소에서 신고서를 작성해야 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지참해야 한다. 주변에 문수산성(사적 139), 덕포진(사적 292), 고정리지석묘(경기기념물 91), 한재당(경기기념물 47) 등의 문화재가 있어 가족나들이 코스로도 알맞다. 대중교통편은 서울특별시 신촌이나 인천광역시에서 직행버스를 타거나, 서울특별시 영등포에서 강화운수 1번 버스를 타고 월곶면 군하리에서 하차하여 택시를 타면 10분정도 걸린다. 승용차로는 48번 국도를 따라 김포읍을 지나 군하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10분정도 달리면 도착한다. 애기봉 입구에 도착해 출입신고서를 쓴다, 주민등록증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소형주차비: 2,000원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한는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恨 애기봉 愛妓峰 조선 인조 14년(1636년) 청나라 태종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당시 평안감사는 치열한 전투로 다치고 굶주린 병사들과 피난민을 이끌고 한양을 향해 남하하고 있있다. 이 중에는 평안감사와 애첩 '애기(愛妓)도 있었는데 함께 남하하던 중 개풍군에서 평안감사는 청나라 군사들에 의해 북쪽으로 끌려가고, 기생 '애기'만이 한강을 건너 이곳 조강나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후 '애기는 조강리 마을에 머물면서 매일 봉우리에 올라가 강 건너편을 바라보며 일편단심으로 끌려간 평안감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평안감사는 돌아오지 못했고 '애기'는 병들어 죽기전 마을사람들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평안감사가 돌아오는 것을 빨리 볼 수 있도록 봉우리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이후 330년이 지난 1966년 10월7일 이곳을 방문한 故박정희 대통령이 봉우리에 얽힌 사연을 듣고난 후 '애기의 한恨'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恨'과 같다며 봉우리의 이름을 '애기봉愛妓峰'이라고 명명한 후 친필휘호로 비석을 세웠다. 꼬불꼬불 산길따라 오르니 휴게소에 도착, 그 앞쪽이 넓은 주차장이다. 2015년에 완공예정에 있는 애기봉 평화공원조감도이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촬영장소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년)은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가운데 최고작으로 꼽히는 한국 전쟁영화의 대표작입니다. 한국전쟁당시 해병대의 활약상을 그린 이 영화는 이곳 김포시에서 주요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특히 월곶면 고양2리의 야산과 논밭에서 중공군과의 고전장면을 촬영하였는데 이때 해병대사령부에서는 해병 2개 연대와 장비등을 지원하는 등 영화제작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습니다. 한국영화의 가장 중요한 감독중 한분인 이만희 감독의 대표작이기도 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서정민 촬영감독이 촬영하였으며 장동휘 최무룡 구봉서 이대엽, 전영선 등이 출연하였습니다. 전망대로 가는 길이 안내되어 있다. 여기서부터 도보로 250m이며, 민간인차량은 출입통제라 쓰여 있다. 애기봉 비석: 박정희 대통령 친필 비석의 아랫부분에 있는 시는 지금은 작고하신 유명한 시인 노산 이은상 선생님께서 이곳을 둘러보고 느끼신 감회를 시로서 표현하여 부대에 헌시하신 것입니다 애기봉(愛妓峰) / 노산 이은상 조강물이 남북을 꽤뚫어 민족의 한을 껴안고 띠같이 흐르네. 여기 한강을 가로질러 선 없는 금을 그어 놓았다. 누구의 짓이냐. 피는 강물보다 진하다. 민족은 하나요, 둘이 아니다. 여기 애기봉을 보라. 사랑하는 이를 잃고 일편단심 북녘 하늘을 바라보아 통곡하다 죽었네. 병자호란 때 일이다. 오늘날 우리들 온겨레의 상심과 같다. 아아 대한민국 해병대. 의기충천 멸공통일의 깃발을 높이 든다. 서기 1966년 10월 7일 귀신 잡는 해병대의 청룡 석상 실향민들의 애환을 달래기 위해 세워진 망배단 김포시에 거주하는 이북 5도민의 실향민이 모여 합동 제례를 지내는 곳이다. 망배단(望拜壇) 선열들이 목숨과 바꾼 조국이 두 동강나자 고향마저 버리고 자유 찾아 남하한 실향민(失鄕民)이 500만에 달한다. “오늘 해도 또 지고 마는구나 내일은 틀림없이 돌아갈 수 있겠지” 고향 하늘이 바라보이는 산등성이에 올라 똑 같은 말을 되뇌기를 반세기, 이제 눈물조차 말라버렸다. 부조(父祖)를 모시고자하는 자손의 효심이 인간 본연의 성정(性情)일진대 부조의 생사조차 모른 채 한 서린 나날을 보내야 하는 실향민들은 피멍 든 가슴을 쓸어내릴 뿐이다. 몽매(夢寐)에도 그리운 고향산천을 지척(咫尺) 강건너에 보면서 통일되는 날 한 달음에 달려 가리라. 주먹쥐며 이곳 김포에 눌러앉은 실향민이 2,000여 가구, 10,000여명이 명절 때면 이곳 애기봉에 올라 개인적으로 망배하며 설단의 필요를 절감하여 이 사업을 발의한 바 탑의 높이는 3.3m로서 민족 전래의 기원을 표상하는 숫자이며, 형태는 고향을 향해 날아가고 싶은 새를 형상화하여, 실향민들은 귀향의 비원(悲願)을, 전체 군인들은 통일에의 서원(誓願)을 결집하기 위한 숭고한 정성을 담아 1억원을 들여 경기도가 지원하고, 김포군이 주관하여 1993년 11월 12일 이 단을 세우다. 김무일 金 武 一 '옛 소대장의 소망' 돌비석 詩의 주인공님의 모습 (해병대 예비역 대위. 前 현대제철 부회장.) 애기봉전망대 교육관건물이 안쪽으로 보인다. 애기봉전망대에서 바라 본 강 건너쪽 북녘땅의 모습들.. 뒤쪽 우측 튀어 나온 부분이 쌍마고지, 좌측 희미한 작은섬이 유도다. 우리 선조들이 전방의 한강 하구를 이용하여 서울의 마포포구까지 뱃길 이용시 휴식처로 옛날에는 한양길에 오르는 사람들이나 뱃사람들을 위하여 선착장과 주막이 있어 잠시 쉬기도 했던 곳이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비무장지대이지만 지난 97년도 폭우 시 북한의 황소가 떠 내려와 구출한 섬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바로 이 구출한 소를 “평화의 소”로 명명하였다 한다. 또한 이 유도는 국내 최대 조류서식지로서, 학이 많아 학섬, 뱀이 많아 뱀섬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학은 뱀을 잡아 먹고, 뱀은 학의 알을 먹으며, 뱀과 학이 공생공존하는 푸른 나무와 수많은 새들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무인도 섬이다. 한강과 임진각강이 합수하는 중간지점에 위치한 유도는 남쪽 김포시 북단해안에서 300m, 북쪽 개풍군에서 1.3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김포 애기봉에서 바라 본 북녘땅 황해도 개풍군 선전용 위장마을이 강건너로 보인다. 보여주기 위한 북한의 선전용 위장마을이다. 현재는 주민을 강제이동시켜 70%만 거주한다고 한다. 교육관 1일 1-2회 애기봉해설이 이어지는 교육장이다. 아래사진은 교육관 안 사진으로 된 길게 이은 현황판을 알기쉽게 부분적으로 담았다. 유도와 쌍마고지, 대전차장애물, 암실마을, 선전용 위장마을과 송악산에 이르기까지 한눈으로 조망되는 풍경속 지점을 알려주는 현황판을 쪼개서 담은 사진이다. 쌍마고지: 튀어 나온 부분 비무장지대에 가장 인접한 북한군 소대급 진지로 육안으로 북한군의 생활을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좌측에서부터: 도고개, 암실마을, 대전차방벽, 스피커 하늘 구름아래 송악산(개성)이 있고 바로 앞으로 선전마을(해물)이 보인다. 송악산(개성) 고려태조 왕건이 개성에 있는 송악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 고려를 세우고, 도읍지를 송악(지금의 개성)에 정하게 되는 바로 개성 시가지 뒤쪽에 있는 산세 험준하고 정기가 빼어난 영嶺 흔적선/전기철책(좌측), 한터산(앞쪽 가운데산),군장산(우측끝) 불모지대 (흔적선/전기 철책) 한터산에 있는 도로모양의 흔적선은 탈북자 예방을 위하여 폭 10m 정도의 도로형태를 개설한 후 고운 흙을 갈고 비를 이용하여 슬어 놓은 후 탈북자 발생시 이를 추적하여 생포토록 하다가 야음을 이용하여 탈북하자 90년도에 전기청조망을 설치하여 탈북을 막고 있다. 전망대교육관에서 담은 사진 한점 이승복 어린이의 "공산당이 싫어요." 외침소리가 들리는 듯.. 관람을 마치고 망배단을 뒤로 내려오니 바닥에서 피어 오른 샛노란 가을국화가 잘 댕겨가라 배웅을 한다. 반려견 추모제에 참석했다가 그 지척에 있는 애기봉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한는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恨이 서린 애기봉 전망대에서 평화통일의 그날이 어서 오길 기원드리며 더욱 진한 안보의식을 마음속에 두면서 하루를 접는다.
글사진및편집찬란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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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빛e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2일전에 김무일 옛소대장님께서 제게 메일 한통을 보내왔습니다.
'꽁까이의 보은' 이라는 감동적인 베트남 참전 당시 이야기인데,
(박시호의 행복편지)에 실린 글입니다.

오래전 젊은 날의 옛일이 떠올라 답글을 올립니다.

'꽁까이의 보은'

대학을 졸업하던 해, 병역의무를 필하려고 해병대 초급장교로 지원 입대하여
‘베트남’전에 참전하였습니다.
 
전투부대 소총소대장으로 수개월째 소대원들을 이끌고 생사의 고비를 넘던 중,
월남전 중 가장 치열했던 68년도 구정 공세날 새벽녘~ 위험에 처한 청룡부대
제10중대를 구출하라는 임무를 받고 며칠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포위망을 뚫고 (중대장을 잃어 가며)
임무를 완수하고 귀환 도중…. 폐허가 된 마을을 지나면서,
기둥에 목줄이 매여 며칠째 물 한 모금 못 먹은 빈사상태의 개 한 마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전령 ‘유재호’ 상병에게 개줄을 풀어 데려갈 것을 명하니,
마침 옆에 있던 선임하사 ‘천철수’ 중사가 말리길 “소대장님예… 살지도 몬할낀데 모할라꼬 쌩고생할랍니껴?”
제가 답하기를 “살릴 때까지다! …데려가자!” 귀하게 아끼던 수통물을 그놈 입가에 대고 벌컥대며 먹이고,
씨레이션, 전투식량을 까 먹이며 귀대하였습니다.
 
하루하루 원기를 회복한 ‘꽁까이’(소대원들이 붙여준 개이름)는 어느덧 튼실하게 잘 자라 주었고,
우리 수색중대의 ‘마스코트’로 성장하여 주인을 알아보듯 고마운 표정으로 항상 제 곁을 맴돌며
자나 깨나 저를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있던 약혼녀의 편지에 ‘꽁까이에게 너무 마음 뺏기지 말라’는 경고도 수차례 받곤 하였답니다.
 
그런 ‘꽁까이’와의 밀월도 몇 달~. 이제 소대장 임기도 거의 끝날 무렵인 어느 날….
치열한 공격명령이 하달된 전투에서 마지막 고지탈환의 돌격선에, 철벽 같은 ‘베트콩’의 철조망과
지뢰밭에 봉착, 전소대원이 소낙비 적탄 속의 몰살 위기에…. 저 지뢰밭 속에 단 한 발만이라도 폭파되면,
그 길로 돌격돌파가 가능할 텐데…. 오직 그 생각뿐인 소대장의 간절한 소망…. 그렇다고 부하를 그 속에
뛰어들게 할 수도 없는 소대장의 아픈 마음…. 결국 이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소대장이 뛰어들어
부하들을 살릴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 적탄은 빗발치고…. 여기저기 소대원의 비명소리….
약혼녀와 부모님의 얼굴도 잠시…. “얍 !!!…. 부하들의 목숨을 위해…. 이 한몸을…!”
 
벌떡 일어나 지뢰밭으로 뛰어들려는 순간…. 나의 방탄조끼 밑에 겁먹고 쭈그려 있던 ‘꽁까이’가
어느새 앞질러 뛰어 들어가, 어느 지점의 지뢰를 폭발시켜 주인 대신 처절히 산화하였고,
그와 동시에 전 소대원이 함성를 지르며 공격을 개시하여 고지를 점령하였던 그날이….
‘항상 친애하는 박시호 동지의 행복편지’를 열어 본 오늘 아침…,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40여년 전 옛일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스물여섯의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짧은 인생을 영원한 조국에…!!” 노산 선생의 어록에서…. 꿈 많던 시절이었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베트남어로 ‘귀여운 아가씨’를 지칭하는 ‘껀까이’를.
한국군 사병들은 편한 발음으로 ‘꽁까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우리 부대의 마스코트 충견 ‘꽁까이’가 소대장 대신 장렬히 산화하기 한 달쯤 전인가….
청룡부대의 ‘용궁작전’에 투입, ‘호이안’ 외곽지역을 수색하던 중… 베트콩 정규군과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수적으로 우세한 적에게 역포위를 당하게 되어, 적군의 필사적 공세로 아군의 보급지원이 끊긴 채
40여 명의 소대원들과 함께 사흘째 굶으며 철벽 같은 포위망 속에 고립된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실탄, 탄약은 물론 식수, 전투식량(씨레이션)까지도 고갈된 지 나흘째. 전투원의 투지도 한계를 벗어난 듯
소대장과 선임하사를 비롯하여 전소대원이 섭씨 40도를 웃도는 열대의 뙤약볕에 언제 공격을 시도할지 모르는
불안과 초조…. 사흘을 꼬박 새우며 불면, 그리고 허기지고 목마른 고통의 나흘은 지옥의 문턱을 연상케 하였습니다.
주변 전투상황이 여의치 못해 공중지원도 불가능하고, 주변엔 적의 독극물 투여로 식수도 구하기 어려운 극한상황에서
소대장의 책임감도 (소대원들을 살려야겠다는 절박감으로) 절실한 마음이었습니다.
 
소대원들은 진지에 흩어져 정글 곳곳을 뒤지며, 혹 요깃거리를 찾곤 하던 중…,
1분대장 ‘박인화’ 하사가 개울가에서 어미 잃은 주먹만 한 새끼오리 십여 마리를 잡아 와,
철모에 물을 담아 삶는 냄새는 잠시 우리들 모두가 행복을 만끽할 만큼 구수하였답니다. …
즉석 요리로 둘러앉은 3명의 분대장과 선임하사관, 그리고 위생하사와 소대장 ….
이렇게 허겁지겁 집어 든 순간
소대장의 눈엔, 멀찌감치에서(안 보는 척) 우리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소대원들이 마음에 걸려…
즉시 중단시켜, 철모 속의 한 움큼도 안되는 그것들을 소대원들이 보는 가운데 맨땅에 쏟아 부을 때,
깜짝 놀란 분대장들에게 “소대원들과 함께 고통을 참아 내자!”고 달래며 시종 코끝을 킁킁대며 주변을 돌던,
허기진 ‘꽁까이’에게 먹게 하였습니다.
 
‘꽁까이’ 역시도 주인의 마음을 읽었던지 끝끝내 먹지를 않았습니다.
 
‘소대장은 언제나 소대원들과 고락을 함께하며,
독수리의 공격에서 목숨 걸고 병아리를 품어 살려야 한다는 전술교관 ‘라스패기’ 소령의 명언으로
극적인 전투상황을 돌파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꽁까이의보은1(박시호의 행복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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