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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의 혼이 서린 사육신공원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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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4,155회 작성일 15-07-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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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7.1.수.사육신공원 역사관에서 2015.7.1.수 충신의 혼이 서린 사육신공원의 여름
사육신 공원(死六臣公園)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는 묘와 그 외 사육신비 등이 안장된 공원이다. 본래 이곳에 있던 박팽년·성삼문·유응부·이개의 묘에, 하위지·유성원·김문기의 가묘를 새로 조성하였다.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1445년)으로부터 왕위를 빼앗고, 왕이 되자 이에 불복하고 단종 복위에 힘 쓰다 목숨을 잃은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에 추가로 김문기를 현창하여 모신 곳이다. 이들은 단종 3년(1455년)에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분개하여 단종의 복위를 노리던 중, 1456년 6월 명나라 사신의 환송연에서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과 유응부가 세조 일파를 처단하기로 계획하였으나, 이 사실이 사전에 누설되어 실패하였다. 이들의 계획이 좌절되자 거사 동지이며 집현전 출신인 김질(金礩) 등이 세조에게 단종복위 계획을 밀고하여 연루자들이 모두 붙잡혔다. 성삼문은 시뻘겋게 달군 쇠로 다리를 꿰고 팔을 잘라내는 잔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세조를 ‘전하’라 하지 않고 ‘나리’라 불렀으며, 나머지 사람들도 진상을 자백하면 용서한다는 말을 거부하고 형벌을 받았다.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는 단근질로 죽음을 당하였고, 하위지는 참살 당하였다. 유성원은 잡히기 전에 자기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자살하였고, 김문기(金文起)도 사지를 찢기는 참혹한 형벌을 받아 사망하였다. 이밖에 사육신의 가족으로 남자인 경우는 모두 죽음을 당하였고, 여자의 경우는 남의 노비로 끌려가는 등 70여명이 모반 혐의로 화를 입었다. 묘역과 공원의 조성은 사육신의 충성심과 장렬한 의기를 추모하고자 숙종 7년(1681년)에 민절서원을 세웠고, 정조 6년(1782년)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전해오다가, 1955년 5월에 육각의 사육신비를 세웠다. 1978년 서울특별시에서는 이들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영혼을 위로하고 그 정신을 널리 현창하고자 3,240평이었던 묘역을 9,370평으로 확장하고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의절사(義節祠), 불이문(不二門), 홍살문, 비각(碑閣)을 새로 지어 충효사상의 실천도량으로 정화하였다. 입구에 홍살문이 있고, 그 안 좌우로 신도비와 1955년에 세운 육각비가, 불이문을 들어서면 의절사가 있으며, 각종 편의시설도 구비되어 있다.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개방하고 있다. 매년 10월 9일에 위패를 모시고 추모제향을 올린다. 현재 이곳에 여섯이 아닌 일곱 분의 묘가 조성되어 있는 경위는 다음과 같다. 세조 2년 단종복위사건 가담자들의 참혹한 죽음 이후, 어느 스님이 성승·박팽년· 유응부·성삼문·이개 다섯 분의 시신을 현재의 위치에 모셨다고 한다. 《조선왕조실록》 세조 2년 6월 병오년 기록에는 성삼문·하위지·이개·유성원·김문기· 박팽년을 비롯한 성승·유응부 등의 이름이 보이고, 남효온이 지은 《육신전》 (六臣傳)에는 성삼문·박팽년·이개·유성원·하위지·유응부를 ‘사육신’이라 하였다. 그 후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성승의 묘를 찾을 수 없어 네 분의 묘만 있었으나, 여전히 사육신묘라 불렸다. 이리하여 서울특별시가 사육신묘 일대를 성역화하면서 육신에 대한 논란을 조정하였는데, 그 결과로 사육신묘에는 일곱 분의 묘가 모셔지게 되었다. 즉 본래 이곳에 있던 박팽년·성삼문·유응부·이개의 묘에, 하위지·유성원·김문기의 가묘(假墓)를 새로이 만든 것이다. 의절사 내의 위패와 마찬가지로 그 뒷편의 묘소는 동쪽으로부터 김문기·박팽년·유응부·이개·유성원·성삼문·하위지 순서로 모셔져 있다. 출처:위키백과 새벽산책을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다니면서 알게 된 사육신공원이다. 노량진 도로 옆 언덕위에 위치한 사육신묘를 언제나 차창밖 풍경으로만 바라보며 스쳐 지나갔던 곳을 오랜시간이 지난 이제서야 찾게 되었다. 늘 한번 찾아가 스케치를 해야지 벼르던 있었던 곳을 쉽게 찾아 갈 줄이야. 가까이에 이리도 아름답게 꾸며 놓은 역사현장이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니...... 사육신공원 정문으로 들어 선다. 샛강역에서 새벽 5시30분에 출발하는 9호선 첫 전철에 몸을 싣고 한 정거장만인 노량진역 하차 2번출구로 나와 직진으로 400m 걸으니 사육신 정문에 닿는다. 처음이라 잘 몰라서 좀 걸었는데 노들역1번출구로 나오면 바로 레미안 트위파크 옆 숲길로 오를 수 있는 빠른 길이 있음은 나중에 알았다. 사육신공원 정문앞 우측에서 '사충서원터' 해설을 만난다 사충서원터(四忠書院 址) 조선시대 후기 김창집(金昌集), 이건명(李建命),조태채(趙泰采), 이이명(李頤命) 선현의 제사를 모시고 학문을 연구하던 곳 老論四大臣 을 모신 사충서원(四忠書院) 터 노론사대신은 조선 경종(景宗:1720~24 재위) 때 노론세력을 이끌던 4대신. 김창집(金昌集)·이이명(李頤命)·이건명(李健命)·조태채(趙泰采)를 가리킨다. 경종이 아들이 없자 연잉군(延礽君 : 뒤의 영조)을 세자로 책봉하자는 상소가 있었다. 영의정 김창집, 좌의정 이건명, 판중추부사 조태채 등의 노론영수들이 이에 찬성하고, 1721년(경종 2) 연잉군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후 세자의 대리청정 문제로 노론과 소론은 다시 격렬하게 대립하였다. 그 결과 세자의 청정은 취소되고, 그해 12월에 소론의 김일경(金一鏡) 등이 노론의 김창집 등을 '四兇'이라 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에 노론은 실각되고, 1722년 4대신은 처형되었다. 이들과 관련된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도 죽거나 유배되었는데 이를 辛壬士禍(신축년,1721년과 임인년,1722년, 2년에 걸친 사화))라 한다. 영조가 즉위하자 복원되었다 지하철 9호선 노량진역 2번출구에서 사육신공원 정문까지 400m 걸어 온 셈이다. 입구에 우수조망명소도 안내되어 있었다. 1.홍살문 2.설명안내판 3.불이문 4.의절사 5.묘역 6.사육신역사관 7.조망명소 8.생활 체육시설 9.야생화정원 입구에 있는 홍살문 국가에서 풍속을 권장하기 위해 충신·효자·열녀 등 모범이 되는 사람을 표창하고자 그 사람이 사는 마을 입구나 집 문 앞에 세운 붉은 문. 불이문을 향하여.. 이른새벽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참배시간은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여서 오후에 다시 찾아 오기로 한다. 不事二君之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문, 즉 不二門이다- 배수지공원은 700m 라는데 아직 가보지 않았다. 바깥 울타리 넘어로 바라 본 불이문 내부풍경과 울타리넘어 사육신 묘역도 찰칵! 쭉쭉 뚜벅걸음으로 돌다보니 사육신역사관이 나온다. 새벽시간 굳게 닫혀있다. 내부를 둘러보기 위해 오후를 다시 기약한다. 사육신역사관 앞쪽으로 난 숲길을 내려오니 노량진 본동 레미안 트윈파크 아파트 진입로가 나왔다. 9호선 노들역 1번출구와 바로 연결되는 곳으로, 그곳에도 사육신공원으로 오르는 푸른 숲 산책길이 나 있었다. 삼성 래미안 트위파크 아파트 앞 느티나무 좌측 위가 사육신공원, 우측엔 레미안 트윈파크 아파트가 위치해 있다. 아래 도로쪽은 지하철 9호선 노들역 1번출구.. 모진 세월의 풍파를 이겨 낸 험한 모습을 본다. 밑둥에서도 읽을 수 있었다. 숲 오솔길 따라 다시 사육신 공원으로 오른다. 붉은 가을빛 단풍을 만난다. 계절에 혼돈을 일으킨 단풍이 성급히 저 먼저 와선 가을로 우릴 반긴다나요. 허참, 고 녀석 기특하고 반가워서 내 디카에 찰칵! 담는다. 여름단풍도 빠알가니 새벽 길손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사색의 공간에서 한강을 조망한다. 우수조망명소 1. 서강대교, 2. 마포대교, 3. 원효대교, 4. 백련산, 5. 88대로, 6. 한강철교, 7. 안산. 8. 북한산 사색의 공간에서 바라본 여의도 63빌딩 방향 또 전진으로 한바퀴 돌면서 이번엔 차도건너 노량진 학원이 모여있는 쪽을 바라보며 하늘을 향해..능소화꽃 잘 정리된 공원내부 그 공원길을 가볍게 걷기산책을 활보로 즐기며 앗, 이새벽에 오토바이가 웬일이냐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새벽마다 건강체력쌓기 배드민턴 친목모임이 이곳에서 있었다. 그 일행중에 한분이 음식물 운반차 타고 온 오토바이였다. 그 분들이 운동을 한차례 마치고 식사중이다. 노량진 학원가 건물이 싱그런 나무숲 뒤로 보인다. 운동기구 세트가 몇개 있는데 그 중 한세트이다. 온 몸을 잠시 운동기구에 의지하며 체력단련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리고 또 걷는다. 새벽산책을 마치고 다시 입구로 나오니 이른새벽 노량진 대로에 많지 않은 차량들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노량진역 2번출구쪽을 향하여 뚜벅뚜벅 구석구석 동작이야기-노량진동 이야기다. 노량진 역으로 향하는 중 도로옆 벽면에 걸린 게시물이다. 오후에 다시 찾은 사육신공원 오후햇살을 듬뿍 받은 사육신역사관 앞 왕원추리꽃이 곱다. 홈에서 멀지 않아 오후에 역사관을 둘러볼 겸 다시 찾았다. 실은 매주 오후2시에 상영되는 무료영화감상도 겸해 찾았지만, 영화상영은 메르스로 상영중이어서 영화감상은 못했다. 사육신역사관 안으로 든다. 1층은 여유로운 공간에 정갈하고 잘 꾸며져 있어 들자마자 시원하단 생각부터 들었다. 영화감상실을 비롯해서 공부자습실등 여러방이 있었다. 영화감상실에선 매주 수요일 3~5시까지 한국영화를 상영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날은 메르스로 인해 임시 중단되었다 했다. 사육신관련 역사이야기는 2층에 알차게 전시되어 있었다. 1층 게시물 몇점을 옮긴다. 노량진이란 이름은 백로가 노닐던 나루터라는 뜻으로, 조선시대에 지금의 용산에서 수원 방면으로 가려면 노들나루를 이용하였는데 이곳에 도성을 지키기 위하여 노량진이 설치되어 마을 이름을 노량진이라 부른다 상촌 신흠(1566~1628)의 시 '梅一生寒不賣香(매는 일생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선비의 지조(志操)를 노래했다. 조선 漢文四大家의 한사람이다. 한문사대가는 月沙 李廷龜, 谿谷 張維, 象村 申欽, 澤堂 李植을 말한다. 또한 松江 鄭澈, 蘆溪 朴仁老, 孤山 尹善道와 더불어 조선 4대 문장가로 꼽히는 象村 申欽의 시, 광해군이 등극하자 파직되어 유배되었다가, 인조반정 후 이조판서, 대제학을 거쳐 영의정까지 올랐다. 그는 장남이 선조의 셋째딸 정숙옹주와 결혼할 때 주위에서 좁고 누추한 집을 수선할 것을 권했지만 집이 훌륭하지 못해도 예(禮)를 행하기에 충분하다며 끝내 기둥 하나도 바꾸지 않을 정도로 청렴했다. 전시관 2층에서 조선왕조의 시대적 배경 어린 단종 즉위하다 조선제6대 왕(재위 1452~1455) 문종의 아들로 세종 23년(1441)에 태어나 세종 30년(1448)에는 왕세손으로 삼고 문종이 왕위에 오르자 1450년에 왕세자가 되었다. 그 후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자 12세의 어린 나이에 1452년에 국왕이 되었다. 나이 어린 군주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면 궁중에서는 임금의 아내 중 가장 서열이 높은 사람이 왕을 도와 정사를 돌보는 수렴청정(垂簾聽政)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단종이 왕위에 오를 때는 궁중에 대왕대비가 없었고 어머니인 권씨도 세자빈으로 있을 때 단종을 낳고 이틀 만에 사망하여 대비도 없었다. 다만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 문종의 후궁 귀인 홍씨 양씨가 있었으나 이들은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따라서 모든 정치적 권력은 문종의 부탁을 받은 신하들이 갖게 되었다. 따라서 영의정 황보 인, 좌의정 남지, 우의정 김종서 등이 단종을 도와 일을 처리했고 세종과 문종으로부터 단종 보호를 부탁받은 집현전 학사 출신의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신숙주, 이개, 류성원 등도 곁에서 단종을 도왔다. 포토존에서의 포즈를 마지막으로 역사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사육신 묘역으로 드는 불이문으로 향한다. 불이문이 오픈되어 있어 참배할 수 있었다. 참배시간 死, 성삼문 성삼문, 박팽년, 류성원, 이개, 하위지는 집현전학사로 유응부와 더불어 세종대왕의 높은 신망과 깊은 은총에 감명하여 장손 단종을 보위하고... "이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하니 蓬萊山第一峰에 落落長松되었다가 白雪이 滿乾坤할 제 獨也靑靑하리라" 육각면에 새겨진 여섯분의 충신 死,성삼문..六,박팽년..臣,이개..之,유응부..基,하위지..碑,류성원 사육신신도비각(死六臣神道碑閣) 1456년(세조2년) 조선의 제6대 임금인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바친 朴彭年, 成三問, 李塏, 河緯地, 柳誠源, 兪應孚 등 6명의 신하 즉 사육신을 모신 묘역이다. 이들은 1455년(단종3년)에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고 단종을 몰아내자 이에 분개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참혹한 최후를 맞았다. 사육신의 충성심과 장렬한 의기를 추모하기 위해 1681년(숙종7년)에 이곳에 서원을 세우고, 1782년(정조6년)에는 신도비를 세웠다. 1955년에는 사육신비를 세우기도 하였고, 이후 묘역을 확장하여 새롭게 정비하여 충효사상을 기리고자 하였다. 원래의 묘역에는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후에 하위지, 류성원, 金文起의 묘도 만들어 함께 모시고 있다.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는 사육신묘역은 동작구 노량진1동 185-2번지 사육신공원 내에 위치해 있다. 사각지붕 형태의 碑閣안에 안치된 신도비에는 무늬 없는 臺石위에 碑身을 세우고 팔작지붕 형태의 屋蓋石을 갖춘 神道碑에는 [有明朝鮮國六臣墓碑銘] 이라는 篆額이 새겨져 있다. 1782년(정조6년)에 건립된 사육신묘비는 자중추부사를 지낸 文簡公 晦軒 趙觀彬이 비문을 지었고, 당나라 시대의 명필인 顔眞卿의 글씨를 集字하였다. 신도비의 크기는 높이 214cm, 너비 79cm, 두께 42cm의 규모이다. 의절사(義節祠) 사육신 神主를 모신 6 位牌에 金文起를 추가하여 7 위패가 모셔져 있다. *1977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白村 金文起(金寧 金氏)선생을 사육신으로 판정한 결의문 본 위원회는 조선왕조시대의 기본사료인 조선왕조실록에 의하여 학술적인 연구와 위원회의 토론을 거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1. 세조 2년 6월 6일 甲辰條에 [팔도관찰사, 절제사, 처치사에게 내린 선유문에 이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류성원, 박중림, 권자신, 김문기, 성승, 유응부, 박쟁, 송석동, 최득지, 최치지, 윤영손, 박기년, 박대년 등이 반역을 음모하였다...] 라고 17인이 기록되어 있음. 2. 세조 2년 6월 8일 丙午條에 丙子靖難관련자를 군기감앞길에서 능지처참, 효수 3일케한 사실과 주모관원의 활동상에 관한 기록을 검토하건데, 그들 중 특히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류성원, 김문기 순으로 육신만을 들고 있으며, 김문기가 都鎭撫로서 박팽년과 모의 할 때 군동원의 책임을 맡은 사실이 기록되어 있음. 이러므로 위에 든 육신이 세조조에 가려진 육신이라고 판정됨. 3. 肅慕殿 西廡配享位次에 국혼관계자를 제한 병자정난관원으로는 김문기의 위차가 수위임. 결론 이상 1,2,3,항의 사료에 전거하여 판단하건데 충의공 김문기를 현창하여야 된다고 史斷함. 첨기(添記) 조선왕조 실록은 사관이 기록한 정사이고, 秋江集은 傳聞한 바를 사찬한 것 임을 밝힘. 1977년 9월 22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최영희 위원 이병도 백낙준 이선근 오홍렬 신석호 조기준 한우근 고병익 김원룡 김철준 이기백 이광인 전해종 김도연 의절사 안에 모셔진 7인의 위패 의절사 앞에서 바라 본 불이문(不二門) 불이문에서 묘역으로 드는 두 개의 門 中에 하나만 개방되어 있었다 숲으로 삥 둘러치진 넓은 잔디밭에 7인의 충신들이 고히 잠들고 계시다. 成氏之墓(성삼문) 모든 묘소에 비석은 朴氏之墓,兪氏之墓,柳氏之墓,李氏之墓,河氏之墓,金氏之墓로 새겨졌다. 좌로부터 柳誠源, 成三問, 河緯地의 묘 위로부터 시계방향으로 金文起, 朴彭年, 兪應孚, 李塏의 묘 묘소 뒤쪽에서 내려다 본 풍경 *사육신묘에 묘가 7기(七基)인 까닭은? 사육신의 충절과 그 의로움을 추모하여, 1691년(숙종 17년) 이곳에 민절서원을 세우고, 1782년(정조 6)에는 무덤 곁에 비석을 세웠다. 세조 당대에는 물론 그 후에도 오랫동안 사육신묘에 대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 그러다 1614년에 나온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이수광은 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빌려 노량진 육신묘를 언급하였다. 이수광은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3인의 묘가 있다고만 기록하였다. 이후 1650~1670년 사이에 박팽년의 후손 박숭고의 노력으로 노량진 육신묘가 재정비되고 국가의 인정도 받게 되었다. 그헣지만 사육신 가운데 류성원, 하위지의 묘는 이곳에 있었다는 기록이 없어서 재정비할 때 함께 정비하지는 못했다. 일제 강점기 이후 1950년대까지는 무덤과 비석 등이 훼손된 상태로 방치되다가 1972년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의 4기 묘가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977년~1978년에는 서울시의 사육신묘 정화사업 때 하위지와 류성원 그리고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 모의를 추진한 김문기의 가묘를 추가로 안치, 정비하여 지금에 이른다. 사육신묘에 핀 무궁화꽃 사육신묘에서 바라 본 의절사 사육신공원의 여름이 푸른 나무에서 푸르게 푸르게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eclin 우기수선생님의 영상作 '그리움' 9호선 지하철 노량진역 2번출구로 나와 걷기 운동차 며칠전 도로를 따라 쭈욱 걸어 가다가 멀지 않은 곳에서 정문을 만나 새벽산책을 즐기는 코스로 정한 곳이다.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잘 꾸며지고 잘 정비된 쉼터이기도 하면서 역사문화 공간이었다. 사육신역사관에서는 1주일에 한번씩(수요일) 새로운 영화를 보여준다고 광고되어 있어 그날은 아침 새벽산책을 마친 뒤 오후에 다시 와서 영화도 보고 사육신묘 참배, 그리고 역사관도 둘러볼겸 오후에 다시오니 영화는 메르스로 인해 당분간 상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음날에 이용하기로 하곤 사육신묘 참배와 역사관 내부 1,2층 전시게시물들을 상세히 둘러보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날 새벽산책과 오후, 두번의 스케치를 두며...... 영상작품도 감상하시며 쉬어 가세요. 감사합니다. 사진ㆍ글:권진순/김영희(찬란한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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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찬란한 빛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 빛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도
조금있다가 사육신공원으로 새벽산책을 다녀옵니다.
지하철9호선 노들역1번 출구로 나와 레미안트윈파크 옆
오솔길로 들면 바로 사육신 공원으로 오릅니다.

올때는 공원 한바퀴 돌아 정문으로 나와서 약 10분정도 걸어
노량진역 2번홈으로 들어가서 한정거장 오게 되지요.
산책하기 좋은 곳이 있어 기쁨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모두 건강한 하루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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