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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의 대마도기행1-부산국제항에서 이즈하라항까진 2시간10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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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872회 작성일 17-06-2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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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기행-1

2017. 6.9. 금~11.일 (2박3일)


한국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대마도의 숨은 비석과 역사를 둘러본다.

비운의 덕혜옹주 결혼봉축비와
수선사내 최익현선생 순국비, 그리고
대마도에서 가장 예쁜 성문인 금석성  
또 
스승과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나카라이와 이치오이야기 등 그외..
나카라이를 이야기하면서 빠뜨릴 수가 없는 것이 
현재 일본 5000엔 지폐의 주인공인 여류작가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 1872~1896)’이다. 

남편이 소속된 K대사학회에서 추진한 일본 대마도 2박3일 여행에 남편따라 다녀왔다.
답사회원 29명은 압구정현대백화점 주차장에서 2017년 6월9일 0시 정각에 출발하여 
5시에 부산 구포에 내려 재첩해장국으로 아침을 떼우고 부산항 국제여객선 선착장에서 
대아고속해운의 오션플라워에 승선하여 09시 10분에 출항, 2시간 10분만인 11시 20분에 
하대마도의 이즈하라항에 도착하였다.


부산항 국제 여객터미널에서 승선수속과 시간을 기다리는 중.








* 하대마도의 이즈하라항구에서 -지금 한창 항구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대마도(對馬島, 쓰시마)
소속: 나가사키현長岐縣 쓰시마시, 면적: 708km2(울릉도 10배, 제주도 40%, 산림지 89%)
거리: 부산 49.5km,후쿠오카 138km, 인구: 32,590 명(2015),상,하 두개의 대마도를
만제키바시(万關橋)로 연결되어 있다. 

1市 6町(쓰시마시, 이즈하라마치嚴原町, 미쓰시마마치美津島町, 도요타마마치豊玉町, 
미네마치峰町, 가미아가타마치上縣町, 가미쓰시마마치上對馬町)

대마도는 일본에서 두(2) 섬이라는 뜻의 쓰시마로 발음하지만 어원은 대한해협 대륙쪽
한국에서 남북으로 길쭉한 섬을 바라볼 때, 아소만(淺茅灣)을 사이에 두고 북쪽의 상대마도의
미타케(御岳,490m) 산군(山群)을 몸체로 한 1마리의 말과 남쪽의 하대마도의 시라타케(白嶽,519m)
산군을 몸체로 한 1마리의 암수 짝 2마리가 마주보며 대면(對面), 면대 혹은 좌우 대칭으로 
바라본다는 지형지세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대마도는 중앙부의 아소만과 동부의 쓰시마해협으로 연결되는 수로인 오후나코시(大船越)와 
만제키바시(万關橋)가 있는 만제키세토(万關瀨戶-뇌호는 水路)에 의해 상.하 두 섬으로 나뉜다.
인공의 소운하로 섬이 갈라졌지만, 대마도는 원래는 남북으로 오이처럼 길쭉하게 늘어진
한 개의 섬이었다.


숙소에 짐부터 맡기고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첫날 일정은 시골마을 읍내같은 이즈하라를 요골목 조골목 싸목싸목 걸으며 관광이다.






기원식당에서 점심식사를..
기원(祇園, 일본어 기온)
'기온'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식당




다다미방 


점심도시락식단이다.
반찬 리필은 없고 밥과 된장국은 원하는대로 다 제공된다.










개천을 깨끗하게 합시다.개천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이 개천은 바닷물이 흘러드는 것이다.
고향의 개천을 지켜서 아름다운 개천이 되도록 합시다.  나가사끼현




최익현 선생 순국비가 있는 슈젠지(修善寺)로 들어가는 입구


최익현(1833 ~1906) 선생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조약의 무효를 국내외에
선포하고 망국조약에 참여한 외부대신 박제순 등 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했다. 
1876년 1월 일본과의 통상조약 체결이 추진되자 도끼를 지니고 궁궐 앞에 엎드려
화의를 배척하는 상소를 올렸다. 

1895년 8월 민비학살사건이 일어나고, 11월에 단발령(斷髮令)이 내려지자 
국모(國母)의 원수를 갚고 단발령에 반대할 것을 꾀했다.  
1906년 수백 명의 유림을 모아 의병을 모집했으나 곧 잡혀 쓰시마섬으로 유배되었고, 
단식을 하다가 순국하신 분이다.


대마도 수선사에 있는 최익현 선생 순국비








수국꽃이 만발이다.






순국비앞에서 마이郞의 해설에 경청중


이근배시인의 독도만세에서 나오는 시어중 하나 '최익현이다' 가 절로 나온다.




수신사 관람을 마치고 


다음일정으로 이동 중 어느집 주차장 천정밑에 제비가 들락거리길래
쳐다보니 제비새끼 한마리가 있는 둥지를 보게 되었다.


어미제비는 새끼제비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날라 먹이다가 


날 발견하곤 하던 동작멈추고 둥지를 지켰다.


해꽂이라도 할꺼 봐 모성애발동이다.






知韓派 작가 니카라이 토스이 기념관(半井桃水館) 입구이다.
나카라이 토스이는 대마도출신의 기자이자 소설가로, 
가장 한국적인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춘향전을 일본에 소개한 사람이다. 
나카라이 집안은 대대로 쓰시마 번주의 주치의 가문으로, 토스이는 1860년 
이즈하라에서 태어났다. 부산의 왜관에서 의사로 상주하던 아버지를 따라 
소년기를 부산에서 보내면서 한국어를 배우게 된다. 
15세에 귀국하여 동경의 영문학 학원인 공립학사를 졸업하게된다.

나카라이 토스이 탄생의 땅이라고 표기된 돌말뚝도 세워져 있다.
1875년, 강화도에서 일본 군함 운양호 '포격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태에 일본 여론은 흥분하지만, 
신문 논조는 의외로 냉정하여 유력 신문 「도쿄니치니치(東京日日)」나 
「유빈호치(郵便報知)」 등은 무력행사 반대론을 전개했다. 
15세의 학생이었던 토스이도 
「도쿄니치니치(東京日日)」에 무력행사 반대에 대한 투서를 보내, 게재되기도 한다.


마당에는 나카라이 토스이에 관한 설명판이 세워져있다.
그러나, 그가 자랑으로 여기고 있던 것은 화류계나 서민의 풍속 등, 
조선의 일상을 전하는 르포기사나 한글 입문과 같은 문화 자료였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것은, 「춘향전」을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한 것일 것이다. 
그의 번역으로 아사히의 연재 소설이 되었다(1882년).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그는 귀국 후, 소설기자로 아사히신문사에 정식으로 채용된다. 
그의 대표작 「호사부는 바람(胡砂吹く風)」은 
대마도번 무사가 부산에서 양반의 딸과 사랑에 빠지는 스토리로, 이 소설의 권두를 
이치요가 단가로 장식했다. 
연재되었던 시기(1891~1892년)가 정확히 이치요와의 '사제관계'의 시절에 해당된다.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 여론이 대조선 강경론 쪽으로 크게 기울어도, 
그는 대조선 강경론과는 반대의 자세를 취했다. 
1895년에 연재된 「속 호사부는 바람」에서는 일본·조선·중국·만주의 정치적·문화적 독립과 
원만한 동맹관계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사태는, 일본의 한국합병을 시작으로 대륙으로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돌진한다. 그는 이미 설 자리를 잃고, 아사히의 조선 보도뿐만 아니라 
일본의 문학계에서도 멀어지게 된다.

나카라이 토스이가 신문에 발표한 한국 고전소설 춘향전-아사히신문에 20회에 걸쳐 소개하여 
인기를 모았다. 토스이는 1926년 11월21일 사망, 향년 67세로 무덤은 도쿄 분쿄구 고머고메의 
요소지 절에 모셔져있다. 
「어떤 메이지인의 조선관 나카라이 토스이와 일본·조선의 관계」를 쓴 
카미가키(上垣外憲一)씨는 "토스이의 문장은 기본적으로 공평을 중요시하며, 조선에 대해서는 
동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에서의 생활 체험이 길어, 조선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느끼고 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나카라이 토스이는 '지한파(知韓派)'의 작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카라이 토스이 기념관 건물 오른쪽 마당에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펌프.


스승과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나카라이와 이치오가
나카라이를 이야기하면서 빠뜨릴 수가 없는 것이 현재 일본 5000엔 지폐의 주인공인 여류작가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 1872~1896)’이다. 
이치요가 토스이와 처음 만난 것은 1891년 4월15일. 이치요 19세, 도수이 31세 때였다. 

5000엔 지폐의 주인공인 여류작가 ‘히구치 이치요(樋口一葉 1872~1896)
이 때 이치요는 몰락한 일가를 지탱하기 위하여 신문소설을 쓰기 시작한 바로 직후였으며, 
아사히(朝日)신문의 소설기자로 활약하고 있던 토스이의 제자로 입문했다. 
이후 이치요는, 아내와 사별하여 독신이었던 핸섬한 토스이에게 스승 이상의 감정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일년 후, 이치요 이외의 여성에게도 자상했던 토스이의 행동으로 이른바 
"이치요의 오해"로 절교를 통고하게 된다. 
그러나, 이치요의 일기 등에 따르면 토스이를 향한 마음은 그녀가 24세로 요절할 때까지 변함이 없었다. 
유명한 작가가 된 그녀에게, 예전의 약혼자나 문학 동료, 출판사의 후계자 등이 구애했지만, 
그녀는 차갑게 거절했다. 그녀의 사후 남겨진 일기를 통해 토스이를 향한 연모의 정이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의 토스이관은  
대마시의 마을조성 커뮤니티 지원교류관으로 2006년부터 NPO법인 「대마도 향숙(郷宿)」이 
지정관리자로써 운영하고 있다. 다다미 방 (6죠, 8죠), 다목적 공간, 특산물판매 공간 등을 
대관해주기도 하고 시민 관광객들의 휴식의 장소, 활동의 장소로 쓰이고 있다. 


나카라이 토스이 기념관과 안쪽 마당
1882년, 다시 아버지의 조수로 부산으로 건너간 그는, 아사히신문 촉탁으로 부산 특파원이 된다. 
그가 체재한 1887년까지의 5년간,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이 일어났다. 
토스이는 이 보도로 이름을 떨쳤으며, 아사히는 판매부수가 단번에 늘어났다.
출처:중앙일보 조인스 블로그


이즈하라의 나카라이 토스이 문학기념관-기모노체험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일본여자인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온 체험여행자였다.


오픈해도 된다며 모델에 되어 주어 나란히 포즈를 취할 수 있었다.


다음일정지로 이동중 담벼락에 자라는 작은 초록풀이 이색적이다. 더위를 식혀주 듯 한다.


나카무라지구는 하치만구신사에 인접한 거리로, 헤이안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무로마치시대는 아비루 씨에 이어 소 시가 쓰시마를 지배합니다. 
당시의 쓰시마도주 10대 사다쿠니는 거점이엇던 미네마치 사가를 떠나, 후추(현 이즈하라)로 
옮겨 와서 오닌2년(1468년)에, 새 저택(성)을 현재의 쓰시마남경찰서 부근에 세웠습니다.

이 저택은 이후에 '나카무라저택'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이때부터 섬의 중심지로서 
후추의 마을정비가 진행되게 됩니다. 

현재의 나카무라지구 모습은 간분시대(1660 년대)에 무가저택마을로서의 마을만들기 계획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며, 지금도 남아있는 많은 돌담이나 무가저택의 문 등이 그 당시 
무가저택의 분위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히구치 이치요의 스승으로 유명한 소설가 
'나카라이토스이'나 메이지미녀전(메이지시대 미인들의 일생)에
이름을 남긴 '아라이가미노오츠마' 등 저명 인사가 이 지구에서 배출되었습니다.

이런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알므다운 나카무라지구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마을 정비에 힘쓰고 있습니다. 




대마초대번주 종 의지(宗 義智, 소우요시토시)

조선국과의 통호에 빛난 생애(생몰 1568~1615)

영록 11년(1568) 종가 14대將盛(마사모리)의 4남으로 豊崎郡 豊村(上對馬町豊)에서 태어나
12세에 19대島主(초대藩主)가 되었다. 중세에서 근세로 이동하는 격동기에 천하를 얻은
풍신수길이 대륙으로 무모한 출병을 요구해 종의지는 조선과의 융화점을 찾으려 노력하고자
거듭된 교섭을 하였으나 실패하고 7년간의 文祿.慶長의 전쟁을 하였다. 이것이 대마번주
종의지에게 파란만장의 생애를 가져왔다.
시대가 변해서 德川家康으로부터 조선국과의 관계수복을 명받은 종의지는 양국의 많은 문제점을 
뛰어 넘어 10년간의 세월이 지나 경장 12년(1607) 조선통신사를 초빙하는데 성공했다. 
동 14년(1609)에는 조선국과 통호조약(己酉約條)를 성립하고 덕천가강으로 부터 공적을 인정 받았고 
막부부터 독립하는 기관으로서 조선과 무역을 할 수 있겠끔 허가를 받았다.

幕藩體制하에서는 특수한 입장을 확보하고 선린우호의 길을 가게 되었다. 사후 400주년을 맞이하여
종의지의 조선통호에 빛나는 생애를 현창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이 동상을 건립한 것입니다.

평성 28년(2016) 3월 길일, 종의지공편창비건립실행위원회


















八幡宮神社(하치만궁)의 鳥居(도리이) 즉 신사입구에 세우는 문
새가 머문다는 곳, 우리의 솟대와 같은 의미




팔번궁신사(八幡宮,하치만구神社)
소위 삼한을 정벌했다는 신화속의 인물인 신공황후를 모신 신사이다

제신(祭神)은 신공황후(神功皇后), 중애천황(仲哀天皇), 응신천황(應神天皇), 
희 대신(姬 大神), 무내숙녜(武內宿禰), 




어본전옥근즙체병 누문개수공사기부자방명(御本殿屋根葺替並 樓門改修工事寄附者芳名)
-삼가 본전 지붕교체 및 누문개수공사 기부자 방명비-






참배하는 방법
두번 절하고 두번 박수치며 다시 한번 절한다.






평신사(平神社)
제신(祭神), 천수일명(天穗日命), 인덕천황(仁德天皇), 일본무존(日本武尊), 토도황자(兎道皇子)




우노도신사(宇努刀神社, 기원사)
제신, 수좌남명(須佐男命)




천신신사(天神神社)
제신, 안덕천황(安德天皇), 관원도진공(菅原道眞公)




금궁 약궁신사(今宮 若宮神社)
제신, 소서부인 마리아(小西夫人 마리아)




천신신사(天神神社)오르는 돌계단










文化八(1811)年度 朝鮮通信使幕府接遇地(문화8,1811년도 조선통신사막부접우의 땅)


이 역사적인 땅에 대마시 이즈하라에서 가장 큰 수퍼마켓 Red Cabbage가 입주했다


조선후기의 통신사는 선조 40년(1607)부터 순조 11년(1811)사이에 12회 파견되었다.
이들은 조선과 일본 사이의 선린우호를 위한 국가외교의 사절이며, 아울러 일대
문화사절이기도 하였다.

때로 정사를 비롯한 5백명에 이르는 使行은 그 행렬이 장렬하기 이를 데 없었고, 이들은
선진 학문에 세련된 예술, 그리고 현란한 새 문화의 향훈을 전해 주었다.

이 통신사의 유형,무형의 행적은 지금도 일본 각지에 역력히 남아 있어, 근세 일본이
鎖國시대에도 언어와 관습을 달리하면서도, 정성과 믿음으로 교류한 이웃나라와 그들에게
한층 尊崇의 정을 더해 가고 있다. 오늘날 새로운 동아시아 국제사회 형성에 즈음하여,
조선통신사의 영원한 역사적 의의를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 




陶山訥庵先生肖像(수야마토츠안센세이시요우죠우)(1657~1732)

강호시대중기의 유학자. 11세때 강호(동경)에 나와서,木下順庵(기노시타쥰안)에게 
주자학을 배움,歸藩後,대마도번에 관리로 나가,郡務를 봉행하며,대마전도의 
멧돼지사냥을 실시하는 등 농정에 진력하였다.
"猪鹿追詰覺書","津嶋紀略","農政問答"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도통(刀筒, 일본어 카타나쓰쓰), 강호시대(江戶, 도쿄), 宗家文庫史料, 대마역사자료관


군선(軍扇, 군센)
옛날 장수가 군사를 지휘할 때 쓰던 쥘부채 


雨森芳洲(우삼방주,아메노모리호우시유우, 1668~1755)
江戶시대 중기의 유학자. 木下順庵의 문하에 들어가, 후에 그의 推擧에 의해 1689(元祿2)년,
대마번에 출사함. 朝鮮方佐役을 맡아보고, 側用人役도 함."호헤(互惠)라는 것은 속이는 것이 
아니다, 다투는 것도 아니다, 진실을 가지고 교환하는 것이다"라는 이념의 원칙으로 
조선외교에 임했다.

중국어,조선어에 능했으며, 朝鮮語通詞의 양성제도에 확립에 진력하였고,"交隣提醒",
"治要管見", "交隣始末物語"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 제발(題跋)

公爾忘私(공이망사 : 너는 공을 위해서는 사심을 잊으라)
國爾忘家(국이망가 : 너는 나라를 위해서는 가정을 잊으라)

先公後私정신과 爲國忠情을 喝破


平長親告身(평장신고신,타이라노나가치카코쿠신)
가정 34년, 조선 명종 10년(1555)5월 조선에서 대마도의 타이라노나가치카에게
임금의 명령서인 교지를 내린 것, 평장친을 절충장군(정3품)첨지중추부사로 
임명하는 발령장이다




구 세이겐지 범종(舊 淸玄寺 梵鐘)

높이 139.4cm. 구경 75.8cm, 국가지정 중요문화재, 무로마치 시대(1469년)

그 세이겐지 범종은 무로마치 시대인 1469년 만들어진 당시부터 나이에 세이겐지에 있었으나,
에도시대초기인 1648년에 고쿠후(현 이즈하라)의 반쇼인으로 옮겨졌습니다. 

본 종은 일본제이면서도 조선의 종과 아주 비슷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즉, 용두(종을 매달기위해
두부에 붙여져 잇는 용머리 모양을 한 부분)가 쌍두인 것,  기술형식과 배열(4단 4열) 당좌의 외장이
일본 종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  하타오시(용, 조선의 종에 있어서 배면에 배치된 원통형 장식)이 
없는 것을 제외하면 작품이 조선 양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명문의 고래무네는 소씨의 것으로 사다쿠니는 그의 10대손.
본 종은 조선, 일본의 혼종이며, 명문이 있는 最古의 종으로서 쓰시마 문화의 특징을 알 수 있다.

* 상기 삼도덕리전무삼(三島德利傳茂三)항아리, 무삼다완(茂三茶碗) 찻잔,
도산눌암선생초상, 도통, 군선, 우삼방주초상, 평장친고신, 구 청현사 범종은
지금은 내부 수리중으로 폐쇄되어 볼 수가 없어서  지난 2013년 11월에 찍은
대마역사자료관 전시품을 올렸습니다.






금석성터(金石城跡) 가네이시지요우
國지정문화재 史跡 平成7년(1995)3월28일지정

享祿원년(1528)의 내란에서 종씨의 '池의館(이케노야가타)'은 화재로 소실되었다. 亂後
淸水山자락, 島分寺(國分寺)가 있었다고 전해졌던 금석에 종가14대將盛(마사모리)은
관을 옮겨서 "金石의 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寬文9년(1669)21대宗義眞(요시사네)이
성곽을 개수해서 櫓(望樓 로)를 축성하고 '府城'또는 "金石城"이라고도 불리었다.
그 시대에는,전국적인 豪壯한 축성이 유행하였지만 對馬에서는 天守閣같은 성은
쌓지 아니하였다.옛날의 위용을 살짝 몰래 들여넣는 성곽이나 정원의 연못등이 남아있다.

櫓門(야쿠라몬,城樓門)은 大正8년(1919)에 해체됐지만 모형도 당시의 사진에도 있어 
平成2년(1990)8월에 재건하였다. 배후에 청수산성적, 앞을 흐르는 금석천상류에 万松院이 있다.
嚴原町敎育委員會


李王家宗伯爵家御結婚奉祝紀念碑(이왕가종백작가어결혼봉축기념비)

조선국 제26대 고종의 왕녀 德惠翁主는 1931년 5월 宗武志公과 결혼하여
동년11월에는 대마를 방문했다. 옛 대마도주 宗家當主가 조선의 왕녀를 부인으로
맞이하여 來島하였으므로 열렬히 환영을 받았다. 이 비는 두분의 성혼을 축하햐여
대마도거주한국인들이 건립했다. 한편 청수산성에 대마도민들이 경축하여 세우고
심었던 기념비와 철쭉이 지금도 잘 남아 있다.

결혼생활은 많은 고난이 있었으나 딸 正惠를 낳아 서로 신뢰와 애정이 깊었다.
그러나 양국관계는 갈등이 심하여 두분은 1955년에 이혼하였으며 무지공은
1985년에 덕혜옹주는 1961년 귀국후(낙선재에 머물다) 1989에 별세하였다.

이제 역사에 묻혀있던 이 기념비를 재건하여 두분의 힘들었던 생애를 되돌아
보면서 양국민의 진정한 화해와 영원한 평화를 희망한다.












꽃과 여인












대마시역소(對馬市役所, 대마시청사)


우리가 이틀동안 숙박한 대마시청옆 민숙 두산(民宿 豆酸, 쓰쓰)

대나무와 숲이 우거진 공기 맑은 다다미 숙소로 쾌적했지만 화징실이 부족하여
약간의 불편이 있었으나 친절하고 상냥하고 아침식사도 깔끔하고 맛있었다.

대마도답사 첫날은 이렇게 저물어 가고  다음 날은 2편과 3편으로 
카미자카공원, 코모다하마신사, 쓰쓰자키해상공원, 아유모도시 자연공원, 
대마도번주선착장, 에보시타케 전망대, 와타즈미신사로 이어지겠습니다.


찬란한 빛/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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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찬란한빛e님의 댓글

profile_image 찬란한빛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호텔에약은 두달전에 했어야 했는데
한달전에 하다보니 방이 없었다는군요.
하여 민숙에 들었는데 대마도 시청이 가깝고 그 주변에 관광지들이 몰려있어
좋았고 다다미방에서 포근하게 잘 지냈습니다.
식사도 잘 나오고 일본 대마도 가정문화를 엿보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지요.
2편부터 4편까지 준비되는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기대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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