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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혜진 신작시 ‘관계: 그 불가능한 꿈을 향한 여정 / 고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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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스모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484회 작성일 19-02-0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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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그 불가능한 꿈을 향한 여정
⸺ 진혜진의 신작시 읽기
  
  고봉준
 
 
   미(美)가 아니라 추(醜)와 숭고, 조화가 아니라 불화와 균열, 승화가 아니라 충격, 익숙함이 아니라 낯섦…. 현대예술은 이렇게 그 이전 예술의 잣대들을 부정하면서 변화를 거듭해왔다. ‘예술’에 대한 현대적 사유는 “예술에 관한 어떤 것도 더 이상 자명하지 않다.”라는 아도르노의 주장처럼 기존의 가치와 합의를 부정한 ‘폐허’에서 ‘리셋(reset)’되었고, ‘예술의 종언’이라는 슬로건은 현대예술의 이러한 부정성을 지시하는 것이었다. 오해와 달리 ‘예술의 종언’이란 더 이상 예술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우리의 경험이 증명하듯이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예술의 중언’이란 우리가 ‘예술’이라는 언어기호로 표상해온 것들, 그 표상을 떠받치고 있던 잣대와 가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새롭게 발명되고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므로 ‘예술의 종언’은 예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종언 이후의 예술’을 사유해야 한다는 요청이다.
  후고 프리드리히(Hugo Friedrich)는 20세기 현대시의 특징을 ‘불협화’와 ‘비규범성’에서 찾았다. 불협화된 긴장의 미학을 통해 독자에게 충격 체험을 강제하는 것, 그럼으로써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기능화․ 자동화된 대중의 감각을 뒤흔들어 놓는 것이야말로 20세기 현대시가 자신에게 부여한 사명이었다는 주장이다. 과거에 ‘시’는 대중에게 위안/감동을 가져다주는 효과적인 수단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 ‘시’는 안정적인 삶과 근대적인 가치-질서에 맞서는 비탄자의 운명을 떠안게 되었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전통’과의 단절이라는 문제를 내포하게 되었으니, 이 모든 것은 실상 우리의 삶, 언어, 가치 등에 생긴 변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현대시는 이 문명이 남긴 상처를 ‘감동’과 ‘위로’의 방식으로 차유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현대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적 가치와 질서를 숭배하고, 모든 대상-세계를 화폐와 기능의 도구로 간주하는 태도 자체가 현대 문명의 질병이다. 예술에 그 질병을 치유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무뎌진 감각에 ‘충격’을 줌으로써,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상식’을 근본부터 뒤흔들어 놓음으로써, 다시 감각하고,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것으로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 낯선 감각 앞에서 방황하도록 만들고, 수수께끼 같은 난해한 대상 앞에서 사유하도록 강제하는 것, 현대예술은 이런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 
 
그의 눈길에 닳아 사라지는 것들은 살아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초록에 묻힌 단풍잎을 여럿의 불면으로 본다
 
색이 색을 놓치고
그는 그림 앞에 서 있어도 그림이 없다
물방울 눈을 뜨고 있어도 오전 10시의 침실은 캄캄하고
 
간밤의 난반사처럼 누군가의 손길을 덧칠하면
와인을 들고
체리를 물고
살바도르 달리는 달리 모르는 달리도 달리
 
한 사람의 초록 아침과 또 한 사람의 붉은 저녁이 만나는
그곳의 색깔이 궁금하다
 
색의 앞뒤를 만져볼 수 있을까
 
빨강을 해방시키는 햇살이 미술관으로 뛰어든다
 
초인종 소리, 고양이 소리, 거꾸로 흐르는 시계 소리, 여자의 서성이는 구두 소리…
초록 초록 사라지면
 
그가 빨강 빨강으로 살아지는
                                       
- 「수상한 색맹」 전문
 
 
   현대예술은 (무)의식적으로 우리 사회의 일면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구체적 방식은 사회과학이나 철학이 특정 개념을 통해 현대사회의 특징이나 문제점을 지시하는 것만큼이나 많고 다양하다. 진혜진의 시편들 또한 저마다 다른 시적 상황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유사한 이미지의 변주를 통해 특정한 문제의식을 노출하고 있다. 이 시의 출발점은 색각이상, 즉 ‘색맹’이다. 알다시피 인간이 인지하는 색은 대상이 갖고 있는 고유한 색이 아니라 대상이 부분적으로 흡수하거나 반사하는 빛의 색이다. 광학적 연구는‘색’이 가시광선 스펙트럼의 빛 파장의 조합에 의해 만들어지는 현상임을 밝혔다. 그리고 이러한 색의 인지 과정은 개개인이 자신의 눈과 뇌신경계를 통해 만들어내는 결과이므로 동일한 대상을 보더라도 사람에 따라 색에 대한 인식은 다를 수 있다. 이 차이가 일정 기준 이상으로 커서 특정한 색을 구별하지 못할 때 그것을 색각이상, 즉 색맹이라고 부른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그의 눈길에 닳아 사라지는 것들은 살아지고 있다”, “그는 초록에 묻힌 단풍잎을 여럿의 불면으로 본다” 같은 진술들이 색각이상 경험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시각 경험은 병리적인 현상은 될지언정 시가 되지 못한다. 이 시에서 색각이상이라는 시각 경험이 ‘시’의 문턱을 넘는 순간은 ‘사라지는’과 ‘살아지고’가 병치되는 때이다. 알다시피 ‘살아지고’라는 표현은 시인이 만들어낸 비(非)일상어이다. 일상적 맥락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생(生)이 지속된다고 느낄 때 ‘살아진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이 시에서 그것은 ‘사라지는’과 병치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인공어이다. 색각이상자의 입장에서 보면 특정한 색이 사라지는 것이지만, ‘색’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무(無)는 아니지만 부재(不在)로 간주되는, 즉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배제되는‘살아지는’ 상태인 것이다. “초록에 묻힌 단풍잎” 역시 적록색각이상의 경험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개별적 경험을 일반화하여 색각이상(‘색맹’)으로 간주할 때 “색이 색을 놓치고/그는 그림 앞에 서 있어도 그림이 없다”라는 진술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화자가 이러한 개별적․ 주관적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색의 세계, 그러니까 “한 사람의 초록 아침과 또 한 사람의 붉은 저녁이 만나는/그곳의 색깔”과 “색의 앞뒤”에 도달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표면적으로 이 이상적 세계(상태)에 대한 의지는 ‘색맹’이라는 병리적 현상을 극복하는 문제처럼 읽히지만 궁극적으로는 ‘한 사람’과‘또 한 사람’의 세계의 결합, 즉 개인적․주관적으로 분리될 수밖에 없는 경험의 개별성을 돌파하려는 ‘관계’에 대한 열망이라고 읽을 수 있다.
 
달달하게 당신의 한 시간을 삼켜 볼까요
 
목울대까지 소문이 올라오면
우리는 마카롱을 먹을 수 없습니다
 
소문에도 소문으로만 들었던 예장 스타일이 있습니다
노천카페를 애증으로 옮겨가는 마녀모델이 있고
사물과 사람
사실과 사정
위로 토핑을 올려놓는 검은 입술이 있습니다
 
내리는 비가 흐릅니다
격식이 있는 루머는 실제보다 우아하게
가끔씩 깃털로 내려앉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원탁 의자에 앉은 둥근 입술들
당신 없는 한 시간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발 없는 말이
외투입니까 옷감이 다른 정치입니까 아, 비는 외발입니다
왼쪽 귀를 당기면 소문이 주르르
오른쪽 패션으로 걸어나가고
 
분홍에서 하양으로 넘어가는 구설 디자이너들
하 깃털이 사랑할 줄 압니까
 
각기 다른 입술로 우리는 코러스
 
배후에는 수제 마카롱이 있습니다
달달해서 추문을 씹기에 딱 좋은
 
동고비, 하고 입을 모르면 새는 활자로 날아 앉습니다
                                   
- 「앙상블」 전문
 
   앙상블(ensemble)은 통일, 조화 등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시가 보여주는 상황은 이러한 미덕과는 거리가 멀다. 시적 상황 자체가 의도적인 왜상(anamorphosis)에 가까워 선명하게 요약할 수는 없지만, 흩어져 있는 몇몇 조각들을 이정표 삼아 읽어보자. 집중해서 읽으면 이 시에는 ‘소문’, ‘애증’, ‘루머’, ‘발 없는 말’, ‘구설’, ‘추문’처럼 ‘사실’이 아닌 것을 일컫는 말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마카롱’, ‘노천카페’, ‘토핑’, ‘원탁 의자’ 등 특정한 장소성을 지시하는 단어들과 눈에 띈다. 이러한 조각들을 이어붙이면 “노천카페를 애증으로 옮겨가는 마녀모델”, “격식이 있는 루머는 실제보다 우아하게” 등이 암시하는 시적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구설 디자이너’라고 명명되는 사람들이 ‘노천카페’에 모여 앉아 “달달해서 추문을 씹기에 딱 좋은” “수제 마카롱”을 놓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들은 “사물과 사람/사실과 사정”위에 ‘토핑’을 올려놓고 “격식이 있는 루머”를 생산하고 있고, ‘발 없는 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것은“왼쪽 귀를 당기면 소문이 주르르/오른쪽 패션으로 걸어나가고”라는 표현처럼 타인을 향해 퍼져나가고 있다. 시인은 이 상황을 “각기 다른 입술로 우리는 코러스”라고 표현한다. 이구동성(異口同聲)이라고 말해도 괜찮을까? 흥미로운 점은 “동고비, 하고 입을 모으면 새는 활자로 날아 앉습니다”라는 표현이다. 여기에서 ‘동고비’는 고유한 대상이 아니라 ‘새’를 지시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선택된 기호이니 다른 새의 이름으로 바뀌어도 상관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입을 모으면 ‘새’가 “활자로 날아 앉”는다는 사실이다. 화자는 이 노천카페 모임에서 사람들이 “각기 다른 입술”의 코러스를 통해 루머와 추문을 생산하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지시대상이 없는 언어가 ‘사실’, 즉 물질화되는 것을 경험한 듯하다. 그리하여 그는 허구적인 ‘말’이 ‘사실’로 귀착되는 상황을 ‘새’라는 단어(‘활자’)가 실제 날아다니는 ‘동고비-새’가 되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앙상블’이라는 제목과는 관계없이 통일, 조화가 해체되는 장면을 왜상(歪像)처럼 일그러뜨려 제시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너를 눕히고 날을 세워 나를 고정했다
 
우리의 가늠을 가늠하며
닫힌 문, 닫히지 않는 몸틀
 
하나이기만을 바랄 때마다
다른 네가 그려진다 다른 내가 지워진다
 
나의 나는
수많은 너
 
의식을 생략한 수술대처럼
피의 급박함으로 우리를 응급 분류해야 하나
 
이대로 봉합이 가능합니까?
가늠함이 가능하겠냐는 말입니다
 
너는 말문에 본을 뜬다
 
속이 훤히 다 보여
감염되어도 좋단 말이지
 
너든 나를 속인 내 손바닥이든
순정의 깜냥은 지니고 있겠지
 
판화 적으로
응급 적으로
균열과 교섭 중이다
 
드러난 너와 더 드러난 나는 서로의 판이다
너는 누구냐?
                                 
- 「판화」 전문
 
   “한 사람의 초록 아침과 또 한 사람의 붉은 저녁이 만나는/그곳”(「수상한 색맹」)과 “각기 다른 입술로 우리는 코러스”(「앙상블」)라는 진술과 마찬가지로 「판화」에서의 ‘너’와 ‘나’의 관계도 ‘관계-단절’이라는 문제의식의 이미지에 해당한다. 다만 앞선 두 편의 시에서 ‘관계’가 타인들 사이의 관계라면, ‘판화’라는 객관적 상관물의 특징이 암시하고 있듯이 여기에서 ‘너-나’의 관계에는 동일성이나 차이로 환원할 수 없는 모호한 연속성이 존재한다. 주지하듯이 판화는 회화의 취약점인 일회성을 극복하고 다량 복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러므로 ‘판화’에는 항상 원본과 복사본, 또는 밑그림과 복제본 사이에 존재론적 가치와 위계의 문제가 발생한다. 시인은 이러한 관계를 ‘너’와 ‘나’의 관계로 치환한다. 시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너를 눕히고 날을 세워 나를 고정했다”라는 말은 가령 실크스크린처럼 판화를 찍어내는 과정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읽어도 좋을 듯하다. 그런데‘판화’에는 우연적인 요소가 작용하므로 그 결과가 창작자의 의도와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는다. 의도와 결과의 이러한 불일치를 시인은 “하나이기만을 바랄 때마다/다른 네가 그려진다 다른 내가 지워진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려진다’와 ‘지워진다’의 관계는 앞에서 살펴본 ‘사라진다’와 ‘살아진다’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행위가 발생함으로써 두 개의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실크스크린은 그것을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그려진다’고 말할 수도 있고 ‘지워진다’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나는/수많은 너”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로 판화의 속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 시에서도 시인의 욕망은 ‘나’와 ‘너’의 분열을‘봉합’하려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이대로 봉합이 가능합니까?” 과거의 소박한 문학은 ‘나’의 정체성을 고정불변하는 단일한 본질이라고 생각했고, ‘나’와 타인, 혹은 세계의 관계 역시 연속성의 관점에서 이해했다. 반면 현대사회에서 언어는 자의적인 기호로 간주될 뿐 ‘사물’을 지시하는 능력을 잃었고, 인간과 자연-대상과의 관계는 도구적․ 실용적 관계로 바뀌었으며, 같은 맥락에서 인간들 사이의 관계도 파편화되었다.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읽을 때, ‘나’와 ‘너’의 분열을 ‘봉합’하려는, 그 가능성을 타진하는 화자의 태도는 의미심장하게 와 닿는다. 다만 그 ‘봉합’을 낙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관계를 “판화 적으로/응급 적으로/균열과 교섭 중”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이 시에는 현대시 특유의 태도가 투사되어 있다.
 
100m 앞에서 너의 냄새가 사라지고 있어
땀과 조말론이 섞여 있는 나만이 아는 향
 
말초신경을 따라 걷고 있어
너의 손이 한 방울 한 방울 비어가
 
순간
고소공포증이 있는 왼 자리와 공포증이 사라진 오른 다리 사이로
떨어지면 죽을 것 같은 협곡의 냄새가 나
 
바다 신호가 10년에 1센티 자라듯 향기가 자라면 좋겠어
집착이 파도에 쓸리듯
우리는 서로의 취명, 출렁이는 부표겠지
 
가까이 보이는데 너는 멀다고 한다
자작나무 하얀 껍질 벗겨지는 소리처럼 우리의 바깥으로 바람이 불어
 
어떤 이별이든
홀로라는 조짐은 내 옆에도 있고 네 옆에도 있어
 
마음의 거리는 그날의 습도 같아서
향수병 안에 너를 넣고 흔든다
우리는 기온차가 심한 간절기, 빈 스프레이야
 
바로 눈앞에서 네가 사라지고
 
언젠가 바닥 날 향수의 눈금을 수평선이라고 말하는 사이
방 안의 흔들의자가 흔들리고 있어
 
순간의 미끄럼틀은 비휘발성
증발되지 않는 너의 체취를 모으는 나는 조향사
                                        
- 「진원지」 전문
 
   이 시에서 ‘나’와 ‘너’의 ‘거리’는 ‘냄새’에 의해 가늠된다. 현대의 특권화된 감각인 시각이 아니라 ‘조말론’, ‘냄새’, ‘향수’, ‘체취’ 등에 의해 타인과의 거리가 측정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화자는 자신을 조향사(調香師), 즉 향기와 냄새를 혼합해서 새롭고 독특한 향기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그래서일까?이 시의 출발점은 ‘너’의 냄새가 사라지는 사건이다. “100m 앞에서 너의 냄새가 사라지고 있어”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땀과 조말론이 섞여 있는” 특유의 향에 ‘말초신경’을 집중하고 걷다가, 불현듯 ‘너’의 존재를 지시하는 향기가 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화자에게 있어서 ‘냄새’를 통해 연결된 ‘너’와의 관계가 해체되는 것은 “떨어지면 죽을 것 같은 협곡의 냄새”를 맡는 것이니, ‘나’는 죽음 대신 너의 ‘향기’가 맡아지길 희망한다. 그때부터 ‘나’와 ‘너’ 사이에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은 “가까이 보이는데 너는 멀다고 한다”처럼 물리적인 거리와 별개인 거리, 즉 ‘마음의 거리’이다. 6연에서 화자는 그것을 ‘이별’, ‘홀로’ 같은 시어들로 표현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자신이 ‘조향사’라는 화자의 말은 자신의 직업을 소개한 것으로 읽을 수 없다. 화자인 ‘나’는 ‘너’와의 거리를 경험하고 있고, 그 경험은 ‘시각’이 아닌 ‘후각’에 의한 것이니 물리적 거리라기보다는 ‘마음의 거리’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하다. 화자에게 이 ‘너’와의 거리는 죽음의 위협으로 경험되므로, 그는 그 거리가 사라지기를 희망한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등장하는 “증발되지 않는 너의 체취를 모으는 나”는 ‘너’와의 거리를 수락할 수 없는, 그 거리를 없앰으로써 서로가 공명(共鳴)하는 관계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욕망의 표출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진혜진의 시편들은 관계의 해체라는 현실 앞에서 균열과 해체의 ‘봉합’이라는 실현불가능한 욕망을 드러낸다. 또한 그 욕망을 다양한 이미지의 변주를 통해 반복함으로써 시인의 실존을 위협하는 세계의 맨얼굴을 가시화한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를 ‘과잉 연결’ 사회라고 진단하기도 하지만, 시인에게 세계는 관계의 끈이 절단된 균열 상태로 경험되고 있다. 우리의 일상적 삶이 가리키고 있듯이 이 균열이 아름답게 ‘봉합’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그 영원한 합일의 세계를 지향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 불가능한 꿈을 잔인한 아름다움의 세계라고 말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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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熙善41님의 댓글

profile_image 安熙善4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간만에 참, 좋은 글을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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