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슬픈 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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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bluemarbl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9회 작성일 19-06-04 09:18본문
구슬픈 육체 / 김수영
불을 끄고 누웠다가
잊어지지 않는 것이 있어
다시 일어났다
암만해도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 있어 다시 불을 켜고 앉았을 때는 이미
내가 찾던 것은 없어졌을 때
반드시 찾으려고 불을 켠 것도 아니지만
없어지는 自體를 보기 위하여서만 불을 켠 것도 아닌데
잊어버려서 아까운지 아까웁지 않은지 헤아릴 사이도 없이 불은 켜지고
나는 잠시 아름다운 統覺과 調和와 永遠과 歸結을 찾지 않으려 한다
어둠 속에 본 것은 청춘이었는지 大地의 진동이었는지
나는 자꾸 땅만 만지고 싶었는데
땅과 몸이 一體가 되기를 원하며 그것만을 힘삼고 있었는데
오히려 그러한 不屈의 意志에서 나오는 것인가
어둠 속에서 일순간을 다투며
없어져버린 애처롭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부박한 꿈을 찾으려 하는 것은
생활이여 생활이여
잊어버린 생활이여
너무나 멀리 잊어버려 天上의 무슨 燈臺같이 까마득히 사라져버린
귀중한 생활들이여
말없는 생활들이여
마지막에는 海底의 풀떨기같이 혹은 책상에 붙은 민민한 판대기처럼
무감각하게 될 생활이여
調和가 없어 아름다웠던 생활을 조화를 원하고
가슴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조화를 원하는 심장으로 찾을 것은 아니로나
지나간 생활을 지나간 벗같이 여기고
해 지자 헤어진 구슬픈 벗같이 여기고
잊어버린 생활을 위하여 불을 켜서는 아니될 것이지만
天使같이 천사같이 흘려버릴 것이지만
아아 아아 아아
불은 켜지고
나는 쉴 사이 없이 가야 하는 몸이기에
구슬픈 육체(肉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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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 생각>
자다가 깨어, 이 시를 읽다 보니...
정말 나도 <구슬픈 몸>인 것 같아서
절로 한숨이 나온다
생각하면,
꿈(소망)이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것이 늘 신기루 같았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삶이란 게 참 서글프게 느껴진다
(잠들기 전에도 비참한 마음이었지만)
아, 그런데...
김수영 시인에게도 이런 시간이 있었던가
(시에서 비록, 잠시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의 詩에서는 늘, 사그러지지 않는
초월超越과 자유, 그리고 사랑이 물결치곤 했는데...
그리고 비애悲哀와 고독의 감정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은 언제나 그의 <새로운 세계>를 위한
하나의 통과제의通過祭儀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에게도 이렇게 쓸쓸하고
상실감에 가득한 시간이 있었구나
그도 살면서, 이렇게 혹독하게 외로웠구나
어쩌면, 죽음을 읽어버린 영혼이
그의 서글픈 육체를 위하여 위로의 말을
던지는 듯 해서 가슴이 뭉클해 온다
그가 일찌기 말했듯이...
진정한 자유는 죽음을 통과할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얻는 것이라지만
그리고, 그 통과의 고통이 크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살아간다는 일이 이토록
모든 것으로 부터 분리分離된 것 같은
시간은 슬프다
(슬픈 건 슬픈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의 산문 [詩여, 침을 뱉어라]에서 말하고 있는
<온몸에 의한 온몸의 이행履行이 사랑>이라는
그의 힘찬 사유思惟를 다시 생각해 본다
그것 또한, 그토록 구슬픈 그의 몸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문득, 하늘나라에 계신 시인이 보고 싶어진다
이렇게 외롭고 아픈 시간을 보내고도,
삶이 토해냈던 그 모든 절망을
거역했던 시인이...
- bluemarble 熙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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