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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 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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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04회 작성일 23-01-1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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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애지문학작품상 수상작] 


 

   임 봄

 

 

마당에 호랑이가 산다

 

드러낸 송곳니 휘날리는 갈기

완벽하게 전투태세를 갖춘

굶주린 초록의 호랑이들

 

보호색으로 위장하고

낮게 몸을 웅크려

은밀하게 눈알을 굴리다

 

구름에서 스미는 피 냄새에

두 팔 벌려 뛰어오르며

포효하는 소리

 

사방 들썩이는 땅에

화단에 모인 꽃들

일시에 숨을 멈춘다

 

[수상소감]

 

시는 자신이 죽을 곳이 어디인지 모르는 유목민의 불행과 슬픔을 먹고 자란다. 공수 내린 무녀처럼 죽을 곳을 문답하는 시인에게 식물은 때로 큰 위로이자 경전이 되기도 한다. 최소한 내 경우는 그러했다. 태어난 곳과 죽을 곳이 같다는 것을 안다는 것만큼 큰 지혜는 없으니까.

 

비만 오면 눈에 띄게 꿈틀거리는 생명들, 어둠 속으로 두려움 없이 스미는 생명들, 그 생명들을 품어 안는 대지. 나는 한동안 그 생명들과 나란히 웅크리고 앉아 상처받은 관념들을 위로받고자 했고 은 그렇게 내게로 왔다.

 

시가 무엇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어쩌면 시는 죽을 때까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화두일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이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나는 내가 느낀 대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시인은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하는 존재, 그들의 언어를 세상에 전달하는 흰옷 입은 무녀라고 말이다.

 

애지문학작품상 수상 소식으로 그 역할에 대한 부담이 이전보다 커졌다. 부디 겸손하게 경청하고 온전히 옮기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부족한 작품을 눈여겨 살펴주신 많은 시인과 내 문학의 터전이 되어준 <애지>에 깊이 감사드린다.

 

202210월 임 봄

 

 

[심사평]

 

펜데믹으로 세계의 질서가 헝클어지고 암울하고 우울한 변화를 가져온 지 3년이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2월부터 시작된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은 에너지 공급불안, 곡물자원 유통 문제가 심각해져 국가 경제가 침체되고, 세계 식량난이 확산되어 저성장이라는 지구촌의 갈등과 위기를 초래했다.

이런 상황에서 길을 찾고 함께공유하고 공감하는 인문학적 통섭과 네트웍이 여느 때 보다 절실하게 되었다. 시가 인문학의 중심에 있고, 둘 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면서 세계에 대한 가슴 따뜻한 이해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이 막막한 세상에서 시인은 말해야 하는 가치도 그렇고, 말할 수 없는 가치도 함께 발설할 수밖에 없다. 그냥 구렁이 담 넘어 가듯 대충 넘어가는 무책임한 안목과 화법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시가 시대와 세계에 대한 지적인 수다와 착한 스캔들이면 좋을 것이다.

 

2022년도 [애지문학회]에서는 예심에 올라온 10편의 후보작 중 별자리 안부(권기선)/ 현관의 센서등(이선희)/ (임봄) 3편의 애지문핚 작품상 후보작을 선정하였다. 89일부터 831일까지 회원들의 투표를 거친 가운데 2022년 제9회 애지문학 작품상은 임봄 시인의 []이 선정되었다.

 

임봄 시인은 2009[애지]로 등단하여 첫 시집 <백색어사전>에 이어 평론집, 인터뷰집, 지역사, 극작, 작사 등 마치 소리도 없이 봄을 점령하는 풀처럼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다.

 

임봄 시인의 첫 문장인 마당에는 호랑이가 산다.”에서 보이는 시인은 상상력을 보면 시의 승패는 첫 문장이 좌우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는 상상력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재발견의 안목으로 상상력을 확장하여 시상을 마무리한다.

 

드러낸 송곳니 휘날리는 갈기/ 완벽하게 전투태세를 갖춘/ 굶주린 초록의 호랑이들로 형상화된 풀, 그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은, 이미 있으나 없는 듯 사소한 것들을 잘 들여다보고 생명력 넘치는 존재, 즉 마당의 풀을 천하무적의 호랑이로 재발견하여 재해석한 것이다. 봄날 마당을 점령한 풀은 굶주린 호랑이가 되어 늠름한 갈기를 휘날리며 주도면밀하게 보호색으로 위장하고, 몸을 낮게 웅크려 비구름 속에서 조차 피 냄새를 맡고 포효한다. 마침내 모든 마당의 꽃들조차 제압하는 백수의 왕이 된다. 힘없이 보이는 풀을 눈알 굴리며 다가오는 호랑이로 구체화하고, 짓밟히기 쉬운 나약한 대상을 단박에 제압해버리는 강력한 힘으로 객관화한다. 13행의 짧은 시형에도 시와 언어 사이의 긴장을 놓치지 않고 한 편의 이야기를 들어앉히는 솜씨와 소재에 대한 그만의 낯선 안목과 언어적 장악력이 높게 평가되었다.

 

애지문학 작품상을 수상한 임봄 시인에게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최종 후보작에 올라 좋은 작품으로 선전을 해주신 권기선 시인과 이선희 시인에게도 아쉬움과 함께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아울러 투표에 적극 참여해 애지 작품상의 권위를 올려주신 애지 문학회 회원께도 감사를 드린다.

 

- 심사위원 일동(심사평 회장 조영심)

 



임봄시인.jpg


1970년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 박사과정 수료

2009년 계간 애지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2013년 계간 시와 사상》 평론부문 당선

시집으로 백색어사전』 

제9회 애지문학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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