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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권 시 <별을 건네는 시간> 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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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4회 작성일 26-03-30 10:32

본문

을 건네는 시간 외 2편

 

    김남권

 


길을 걷다 나무 한 그루가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리는 걸 볼 때 가슴 한 쪽이

, 하고 내려앉는다면 첫사랑이 온 것이다

 

발길 닿는 곳마다 땅이 울리고

눈길 닿는 곳마다 이파리가 돋아나

바람마저 화사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첫눈 같은 그 사람의 숨결이 오는 것이다

 

이생에 딱 한 번 가슴으로 스친 인연,

다시 천 년을 기다려야 한다면

주목나무의 붉은 뿌리로 살아남아

마른하늘의 무지개처럼

걸어서

걸어서

너에게 갈 것이다

 

눈 감고도 갈 수 있는 그 길을 눈길게 뜨고

꽃잎을 품에 안은 얇은 바람이 되어

이생에 마지막 체온을 담아

너에게 갈 것이다

 

생전 처음 와 보는 길모퉁이 산기슭,

얕은 강물 소리가 돌아나가는 너럭바위 어디쯤에서

, 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게

된다면 아직 그 가슴에 사랑의 씨앗이

남은 것이다

 

느티나무가 한자리에서 천 년을 견디다

속이 텅 빈 채로 쓰러진다 해도

그 뿌리는

살아남아 다시 천 년을 사는 것처럼 한 번

새겨진 사랑의 흔적은 뿌리에서 가슴으로

별의 족보를 이어가고

눈보라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눈을 감고 눈 밖을 본다

꽃 피지 않은 사람이 없고

꽃 피지 않은 시절이 없다

 

지금 여기, 꽃봉오리 하나 너의 손에

별무늬 하나를 건네고 있다

 

 

 

람의 온도를 재다

 

 

겨우내 눈을 뜨고 밤하늘만 쳐다보았다

기다려 주는 길목도 없었다

흔들리는 불빛도 없었다

하늘과 핏줄이 통하는 겨울나무의

줄기마다

바람을 움켜쥐고

별까지의 높이를 재 보았다

개울물 흘러가는 소리는 어둠 속에

갇힌 지 오래되었는지

도무지 시간을 알 수 없었다

성급한 물푸레나무의 물 긷는 소리에

묵정밭의 늙은 지렁이가 깨어나고

주름살을 펴지 못한 햇살이 빈 가지 위에서

코를 골고 누워있었다

한 겹의 투명한 비린내는 물빛을 안고 가고

한 겹의 투명한 거름 내는 흙빛을 쓸고 가고

한 겹의 투명한 날개는 무지개를 태우고 갔다

도무지 높이를 알 수 없는 바람 속에서

붉은 눈금 하나,

가쁜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첫 번째 정사처럼 몸이 녹기 시작했다

 

 


 

 

사방이 온통 꽃천지라는데 나는

참과 개에 빠져 내가 본 것들을

곱씹어 보다가

얼굴이 뜨거워진다

참꽃도 피고 참나물도 나오고 참두릅도

고개를 내미는데 나는 개나리가 좋고

개망초가 어여쁘고 개두릅에 반하느라

눈이 바쁘다

진달래보다는 달래가 더 사랑스럽고

참새보다는 개똥지빠귀가 더 보기 좋고

참개구리보다는 반딧불이 더 예쁘다

예로부터 귀한 자식일수록 개똥이라 불렀다는데

요즘은 진짜라고 우기는 가짜를

개라고 부르고

가짜라고 놀려도 허허 웃어넘기는

사람을 참이라고 한다

참은 얕은 바닥을 한없이 드러내고

싶어 하지만 개는 그 바닥이 부끄러워

말하기를 꺼려한다

세상이 온통 꽃천지일 때 발아래 다소곳이 숨죽여

웃고 있는 들판의 수많은 들꽃,

개들의 심장엔 키득키득 참씨가

자라고 있다

 

김남권 시집발신인이 없는 눈물을 받았다(시산맥, 2019)

 



 


1995년 조병화 시인 추천으로 문단 데뷔. 2015년 월간 시문학》 등단

시집 오후 네 시의 달』 천년의 바람』 외 다수동시집 비밀이야』 외 다수

동화집 바위소년』 외 다수

1회 해양수산부 주최 이어도문학상 대상비평문학상푸른시학상

KBS창작동요대회 노랫말 우수상강원아동문학상 등 수상

현재 계간 시와징후》 발행인강원아동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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