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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수 시 <자정의 취향>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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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8회 작성일 26-05-04 10:41

본문

정의 취향 4

 

    최연수

 

 

맨발과 맨발이 필요해

의심을 키우고 눈동자를 세우지 않아도 되지

자유롭게 눈빛이 오가는

유리창의 방식

경계마저 지우고

한 뼘 귀만 세워놓기로 해

아무리 닦아도 발목이 검은

이쪽은 이석이 덜거덕거리는 유리창의 바깥

휙 건너뛰는 저 스프링, 어제를 분해하면 나올까

내다보는 관절이 우두둑

하루의 혓바닥이 밍밍해

스스로에게 소외된 날

등으로 몰린 허기를 맛보면

잠 못 든 호기심도 잦아들 것 같아

나를 방기하기 좋은 밤은

한 모금 심호흡을 부르지

야옹, 검은 발목

스물네 계단이 필요 없는 생각이야

 

 

 

찢어진 관계

 

 

편애하던 구름이 찢어졌다

 

우툴두툴 가려움이 잠을 찢고

당신의 걱정이 내일을 찢었다

 

이제는 그제의 사람을 찢고

한 해에 한 번 빈집이 되는 연못이 제 집을 비웠다

검은 우산 같은 연잎이 물과 함께 얼었다

 

오른쪽과 통하는 시간

물밑 겨울을 찢으면 다시 무더위가 시작될 것 같아

 

가로쓰기 서툰 철탑이 불온한 뼈를 맞춰

울음이 찢어지면

오롯한 햇살이 될까

 

쏟아지는 바늘은

찢어진 날씨를 꿰맬 수 없다

 

나보다 오래 잠 못 든 환청을 깁는

당신의 뾰족한 관계들

 

편견은 다른 취향으로 기워진다

 

 

 

카스테라가 구워지는 동안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망설이는 네게 골똘해지는

나의 사랑법은

경계를 넘어가도 네모

되돌아와도 네모

 

달려드는 뿔을 품기에 알맞은 각이다

 

대합실 형식에 앉아

민무늬는 단단해, 한 방향 최면을 갈아타고

잠을 재단하는 공기가 달콤해도 냄새 없는 악몽이 발목을 잡아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찾아가는 여기에서

거기까지

 

허물거나 허물리거나

가장 부푼 기분으로 가장 부드러운 표정으로

 

자정을 이해 못 해 휘저은 아침

발치에는 몽롱한 구름을 꺼내놓고

어제도 있고 내일도 있는 사람처럼 웃고 있는 곳에서

웃고 있는 곳까지

 

막연한 듯 무심한 듯 같아 신은 체온은

어디에도 묶이질 않아

 

한쪽 까매진 생각이 난간을 반복해 걷는다

 



랑 중독자

 

 

차가운 불빛으로 채워진 서랍은

모두 파랑

봄과 먼 이름이 오싹 팔목을 물었다

 

표정 없는 가면은 꽃피운 구멍부터 땜질하고

눈잎이 파래질수록 캄캄해진 뿌리에 오목한 입들이 매달렸다

구근처럼

 

밥상에 올려놓은 물 한 대접에도 파랑이 일렁거렸다

 

무심코 방문을 얻었을 때

답을 기다리지 않은 질문 같은

미처 소등 못 한 붉은 얼굴은

길을 잘못 든 파랑

 

그 파랑은

밤의 기울기에 맞는

불꽃과 불꽃을 용접하고 있어야 했다

 

두 손바닥이 가린 표정을 기웃거려도 막막한 파랑

막무가내인 파랑

 

이별의 고향도 파랑일 것 같아

가면의 바깥, 멀리 돌아가는

파랑주의보

 

어린 파랑은 파란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나는 너를 뒤통수로 읽는다

 

 

호되게 당한 것도 같고 더 이상 남은 뒤도 없을 것 같은데

눈시울 달라붙어 글썽거리는 내 뒤통수

 

뼈가 덜거덕거리고 모근이 뜨거운데

아무것도 모르는 듯 잘 아는

돌아선 뒷모습

 

다른 뒤로 완성해가는 뒤는

누구를 시원스레 쳐본 적 없어

호기 한번 휘두르지 못한 을의 길

뒤통수가 밟는 뒤통수는 을과 을의 관계

믿은 도끼에 발등 찍혔다는 말과 통한다

 

소리 큰 단어들과 소리 없는 단어들은

꿈쩍 않는 생각과 벌벌 기는 생각의 착각

갑과 을앞과 뒤거처하는 곳이 달라

뻔뻔하거나 겸연쩍다

 

차마 돌아볼 수 없어 방향 돌린 샛길은

길의 뒤쪽

수줍은 뒤통수가 천천히 방향을 꺾는다

 

가로등은 뒤통수가 어두워

그 누구는 누구의 뒤를 닮았나 

 

최연수 시집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상상인, 2021)


 

 최연수.jpg

  

2015년 <영주일보신춘문예 당선

2015 시산맥 등단

7회 철도문학상 수상

시집 누에섶을 뜨겁게 껴안다』 『안녕은 혼자일 때 녹는다』 

평론집 이 시인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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