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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현근 시인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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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안을 걷다 / 김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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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9회 작성일 26-05-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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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현근의 아침을 여는 ]


달 안을 걷다 / 김병호

 

 

내가 한 그루 은사시나무이었을 때

내 안에 머물던 눈 먼 새들

바늘 돋은 혀로 말간 울음을 날렸다

울음은 부풀어 둥근 달을 낳고

속잎새에만 골라 앉은 숫눈이

돌처럼 뜨거워져 발갛게 떠올랐다

 

잎 진 나무 모양으로 흐르던 푸른 수맥의 흔적

그 사이로 등지느러미 세운 물고기가

해질녘 주름진 빛과 몸 바꿔 흐를 때

내가 제일 나중에 지녔던 울음과

몸담아 흐른 기억마다에 피는 상여꽃

 

봄을 앓는 어머니가 누이의 머리채를 흔들고

꽃뱀이 누이의 다리를 휘감는다

한참 누이를 사랑하던 꽃뱀은

은사시나무로 다시 몸을 바꾸고

아버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연못으로 나가

허리를 꺾는다

어머니는 누이를 향해 자꾸만 손나비를 날리고

검은 살의 물고기들이 달려와 은사시잎을 뜯는다

아버지는 자정의 종소리로 울리고

달빛 속의 누이는 한없이 부풀어 오른다

 

바람을 읽으면 별이 될 수 있을까

잎 큰 나무들이 바람을 모아

제 안에 나이테를 그려놓고

잎 떨군 나는,

눈 먼 새들의 울음을 모아 내 몸을 헹군다

 

 

[감상]  은사시나무로 헹구어낸 푸른 비명


 

  은사시나무라는 고독한 존재로 치환된 화자의 내면에는, 바늘 돋은 혀를 가진 눈 먼 새들의 울음이 둥근 달로 차오릅니다. 시인은 가족사의 아픈 얼룩과 생의 비극을 은유로 풀어냅니다. 그리하여 아픈 상처마저 뜨거운 숫눈과 상여꽃이 만발하는 비원(悲願)의 세계가 됩니다.

 

  어머니의 앓음과 누이의 다리를 휘감는 꽃뱀, 그리고 연못에서 허리를 꺾는 아버지의 형상은 처절한 슬픔의 기록이지만, 시인의 시선은 이를 자정의 종소리와 달빛의 팽창으로 치환하며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통증의 풍경화를 완성합니다. 검은 살의 물고기들이 은사시잎을 뜯는 소멸의 순간에도, 시인은 결코 무너지지 않고 바람의 결을 읽어내려 애씁니다.

 

  결국 이 시는 눈 먼 새들의 울음을 모아 스스로의 몸을 헹구는 정화의 제의입니다. 잎을 다 떨구고 빈 몸이 된 나무가 제 안에 나이테를 새기듯, 고통의 기억을 낱낱이 기록하여 끝내 별이 되고자 하는 영혼의 처절한 산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눈 먼 새들의 울음으로 몸을 헹군다'는 마지막 문장이 참 시리게 다가오는 봄날의 초입입니다.


(/ 양현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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