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자기 깨달음의 기록이다 / 한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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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자기 깨달음의 기록이다 / 한승원
눈앞 가리는 꽃나무를 잘라 없애니
저녁 노을 아름다운 먼 데 산이 병풍처럼 펼쳐지네.
초의 스님이 일지암에서 도를 닦으며 쓴 시의 한 대목이다. 앞 구절은 나를 미망과 탐욕 속에 빠지게 하는 일들을 과감하게 쳐 없애는 일(止)이고, 뒤의 구절은 크고 드높은 지상의 삶(깨달음)을 열어간다(觀)는 것이다. 지관(止觀)이 그것이다.
우리의 삶은 바쁜 일상 속에서 허덕이느라(미혹과 탐욕 속에 빠져 있느라) 내 삶이 얼마나 추악해져 있고, 어디로 어떤 모양새로 흘러가는지 느끼지도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나는 무엇이냐, 지금 어디로 흘러가는 것이냐!’ 하는 의심(자각 증상)이 생긴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것이 명상이고 사유이다. 철학은 의심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의심은 미혹과 탐욕과 오만과 인색함과 옹졸함과 시기 질투 복수심을 그치게 하고, 깨끗하고 넉넉하고 드높은 삶을 보게 하고 그것을 열어가게 한다. 글쓰기는 바로 그 깨달음을 얻어가는 기록이다.
〈예문〉
농부가 이웃의 대밭에서 자기네 채마밭으로 뻗어온 솜대나무 뿌리를 파서 던지고, 대 뿌리가 다시는 건너오지 못하게 하려고 밭과 대밭 사이에 허벅다리가 잠길 만큼의 도랑을 팠습니다.
시인은 그 대 뿌리들을 서편 창문 앞 울타리에 심고, 이듬해부터 달이 서편으로 기우는 무렵 서창에 비치는 수묵의 대 그림자를 완상하고, 속 텅 비고 곧게 살아가는 대나무 속으로 자기가 들어가고 대나무로 하여금 자기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경계 허물기를 즐겼습니다.
3년 뒤, 서편 울타리로부터 서너 걸음 떨어진 금잔디 마당 안쪽에서 죽순 하나가 솟아나왔을 때 시인은 경계를 허무는 그놈을 용납할 수 없어서 잘라냈습니다.
그 이듬해 5월부터는 마당 한가운데에서 솟아오르는 죽순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서재 서쪽 구석의 바람벽과 장판의 굽이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갈색 창끝 같은 머리를 들이밀고 있어 소스라쳐 놀라 살펴보니 죽순이었습니다.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은 시인이 독한 마음을 먹고 그놈의 허리를 잘라버린 다음 우둔거리는 가슴을 안은 채 하늘을 향해 “아, 하느님, 나 죽고 나면, 경계를 허무는 이놈들 때문에 내 집은 무성한 솜대나무 밭이 되어버릴 터입니다” 하고 말하자 하느님이 말했습니다.
“그게 자연이라는 것이다.”
— 〈경계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전문
—출처 : 『한승원의 글쓰기 비법 108가지』 (푸르메,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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