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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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辯 / 백록
마스크 탓인지 세 치 혀가 심심해진 지 꽤 오래다
하여, 한라산이 낳은 아기 고사리들을 만나 아직도 못 다한 옛이야기들을 실컷 나누거나 그들에게 기꺼이 삼천배로 굽실거리면서라도 부처의 말씀을 전해 들을 요량으로 노꼬메오름 기슭을 헤매는데 거뭇한 말 하나가 긴 주둥이로 제 고삐를 끌어당기며 뭐라 중얼거리고 있다. 말똥말똥 눈망울 굴리는 낌새로 보아 뭔가 불만을 품고 원망을 하는 듯, 경계의 눈빛이 사뭇 큼직하다. 어림 한 척이 넘을 것 같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동태로 보아 뭔가 말을 하려다 도로 삼키는 것 같은데 도무지 말 한마디 없다. 앞발이 긁적이는 걸 보면 언뜻 무슨 글자를 쓰는 것 같고, 뒷발길질을 보면 어찌 여기를 눈여겨보라는 것 같아 사타구니 쪽을 보니 이놈의 혓바닥 같은 거시기가 무슨 말씀인 듯 무슨 말씨인 듯 덜렁거리고 있구나. 삽시간의 궁금증이 덜렁덜렁 중중모리장단처럼 몰려오는데 이리저리 사방을 둘러봐도 말이 없는 것들만 초록초록 잔뜩 우거지고 하늘을 올려봐도 가물가물한 표정이고 하는 수없이 아래를 기웃거리다 보니 가시덤불 속에 웅크린 아기 고사리들 소곤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귀 기울여보니 이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대강 줄거리인 즉,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타고날 때부터 말 많은 저 족속들이 우리를 탐하였는데 하물며 몽생이들조차 얼마나 처먹었으면 몸뚱이 색깔은 물론 흐물거리는 거시기조차 저토록 씨가 말라가는 자기들을 닮았겠느냐는 것, 그러나 다행히 자기들을 씹지도 않고 도로 뱉은 것들은 아직도 종족을 번식시키고 있다는 것, 살아남은 것들은 결국, 입에 재갈이 물리고 말을 잃어버렸다는 것’
어허, 그러고 보니 내가 지금 마스크를 낀 채 말을 잃어버린 것과 도긴개긴
횡설수설하다 보니 말머리가 어디고 말꼬리가 어딘지 모르겠다
옛날처럼 방목된 소가 나를 보았다면 히죽거리며 웃을 노릇
소는 막상 없었다. 대신 소낭들만 내려다볼 뿐
도축장으로 가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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