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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과 수평의 밤(퇴고)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447회 작성일 23-12-12 14:54

본문

  

  수직과 수평의 밤



  불면증,

  널 생각할 때면 흰 눈발이 떠올라.


  넌 자꾸 하얘지는 바다 같아.

  갈매기마저 잠 못 들게 하는 파랑(波浪)의 불안.

  어지러운 서류, 쓰다 만 기록들.

  무수한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던 밤들.

  읽으면 읽을수록 물감처럼 번지던 상처들.


  그리하여 널 읽는 건 포기했었지.

  차라리 문맹이었으면.

  침대가 땅 밑으로 꺼지는 하얀 새벽이 오면

  12개의 철제 의자들은 참 조용히도 누워 있었지.


  비워낸 위처럼 수척해진 문장들 사이로

  밤마다 수평으로 넘어지던 절벽들.

  뒤돌아 수직으로 멈춰버린 강물들.

  자꾸만 내 시린 눈망울 속으로 뛰어들던 그들.


  문장의 밖으로 나가 문장을 바라보려는 시인처럼

  난 네 바깥에서 흐르기로 했어.


  서리 낀 창문을 여는 아침엔

  다시 갈매기 떼 일깨우는 푸른 파도의 기분으로

  한 잔의 커피 향을 읽으며

  또 빛바랜 수면제를 휴지통에 던져버리며

  맨정신 맨몸으로 싸우던 밤들을 생각해야겠지.


  그러니 이젠 안녕

  작은 알약들아, 희미한 정신과 길었던 생각들아.


  넘어졌던 절벽을 수직으로 세워

  멈춰버린 강물을 수평으로 눕혀

  절벽처럼 서서 강물처럼 흐를 새로운 아침의 나.


  그리고 섬망 같았던,

  네 모든 문장을 서서히 지우면서.



댓글목록

콩트님의 댓글

profile_image 콩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맛에 시를 감상하나 봅니다.
오랜만에 여운이 남는 시,
잘 감상했습니다.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내년에도 시인님의 멋진 시
더 많이 감상할 수 있길 고대합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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