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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동 헌책방 골목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161회 작성일 25-05-02 20:52

본문

 

  보수동 헌책방 골목




  갈매기의 꿈.

  어린왕자의 꿈.

  그리고 나의 푸른 꿈.


  무수한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이 날아들던 골목.

  그 곳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처럼 생각에 잠긴

  얼굴이 핼쑥한 헌책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달이 해를 배웅하던 어스름 낀 골목에 서서

  눈이 내리면 눈을 툭, 털고

  비가 내리면 젖은 옷자락을 쓰윽 문지르며

  어린왕자처럼, 무화과나무 밑 나다나엘처럼

  책들의 숲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갔어.


  걷는 내게

  책들이 추파의 눈짓을 던지면

  추파에 못 이겨 기꺼이 유혹당해주던

  가을날의 단풍 같은 마음이

  물관 체관처럼 오르내리던 골목.


  낡을수록 좋은 건 사랑이라 썼던

  옛 시인의 눈동자 닮은 가로등이

  마당, 삼중당 문고 표지의 말간 명화처럼

  고색창연하던 골목.


  그렇게 책들의 푸르른 고유명사였던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헤매이던

  별이 쏟아지는 밤들이 있었지.

  

  윤동주, 백석의 희귀본 한 권씩을 어렵사리 구해 손에 든 날

  호박죽 한 그릇 먹고 싶어

  자갈치시장 들러 두 손 비비며 후후 불던 그 날처럼,

  모든 저물어가던 꿈들을 밀어올리듯 

  속이 뜻뜻해져 올 때면,


  나는 오랜 친구 46번 버스를 타고

  날 기다리는 세상의 끝 골목 보수동으로 간다.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profile_image 수퍼스톰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인님께서 걸으셨던
책방으로 이어진 고풍스런 골목을 상상해 봅니다.
저도 엣날에 공부할 때 원서를 찾느라 동대문 평화시장 근처
청계천에 즐비하게 들어섰던 헌책방을 무척 많이 이용했는데
요즘은 몇 군데 안 남은 거 같습니다.
시인님도 오래전 부터 시를 쓰셨군요.
늘 건필하세요.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너덜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낡을수록 좋은 것은 사랑이라고
김수영 시인이 썼지만,
제겐 낡을수록 좋은 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나는 나무 냄새도 그렇고요.
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이장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이장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책들의 숲으로 천천히 걸어들어 간다는 표현 참 좋네요.
학창시절 청계천 헌책방가서 이것 저것 보았던 일이 생각나네요.
문제집 팔아서 용돈 쓰던 그때 ㅎㅎ
좋은 추억 떠올리게 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늘 건필하소서, 너덜길 시인님.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너덜길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늘 시마을의 든든한 지킴이로.
버팀목이 되어주신 것
늘 감사드립니다.
평안한 시심으로 건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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