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裸木)
페이지 정보
작성자본문
나목(裸木)
봄부터 지녀온 묵은 시간들
하나하나 정성으로 아름답게 물들여
정 떼고 겨우 바람에 날려 마지막 알몸으로 남았다
수선대던 수많은 이야기들
살 속으로 동그랗게 새겨 나이테로 동여매고
꽃도 잎도 사랑도 아픔도 명예도 돈도
계급장 떼고 서로 맞장 뜨고 싶은 나무들
새벽안개에 젖어 민낯으로 훨씬 더 생기가 흐른다
달과 해가 멀리 있어도 말없이 서로 의지하고
생긴 그 인연 그대로 받아드려
더 많이 갖지 않았다고 더 화려하지 않다고 더 못났다고
지레 겁먹고 쓰러져 사라져야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
언제나 동녘 해가 떠 멀리서 찾아오면 온 몸에 스미는
따스함과 오로지 살아있음에 대해 묵념할 뿐.
잎을 떠나보내 홀가분한 가지들은 팔 벌려 푸른 하늘을 바라고
겨우내 찬바람은 안으로 스미는 깊은 사색의 옷을 두껍게 입힌다
힘껏 피워내고 다시 버림으로써 남지 않은 지난 삶의 흔적들
나목은 봄에 다시 올 푸른 잎을 꿈꾸며 슬퍼할 시간조차 갖지 않는다
벗음으로 꽉 찬 그대에게 한 표를 던진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