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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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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성영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9건 조회 1,003회 작성일 19-10-28 16:59

본문

먼지의 계보

 성영희


 오래전 닫혔던 가게 문을 열었다. 비스듬히 드러나는 먼지의 춤, 날아다니는 먼지가 손님을 맞는다. 달력은 여전히 이십년 전 성업 중이고 정지된 시간을 지킨 것은 뱀이나 원숭이 같은 달력 속 짐승들이다. 똑딱똑딱 제 소리를 따먹으며 천천히 멈추었을 시곗바늘은 묶어 놓은 듯 자정이다.

 한때는 숨이고 관상이었을 수족관, 말라가는 포르말린을 뻐끔거리며 침몰했을 지느러미들에게 물 마른 館은 미궁일 뿐이다.

 어둑한 탁자에 머물러 있는 두 잔의 대화, 미처 거두지 못한 침묵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어떤 약속은 뚜뚜 거리며 수화기를 대롱거리고 흐릿한 메모는 긴 기다림만 남겨 놓았다. 누구의 고향이었나, 돌담길 돌다 멈춘 레코드판, 옛 가수는 늙지 않았다 조금은 가물가물해졌으나 어느 닫힌 하루를 열기까지 변심 없는 웃음이다.

 오늘은 서로 다른 날짜가 마주보는 하루다. 눅눅한 지하의 시간들이 기둥을 가로질러 계단을 빠져나가고 있는 정오, 이십 년 전의 햇살과 오늘의 햇살이 아득한 옛 목록 속에서 꿈틀거린다.


2019 청라문학 15호

댓글목록

성영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성영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러게요...
시간처럼 냉정하고 정확한 것도 없겠지만
지나고 보면 참 아쉽고 소중한 순간들을 담아내는 무형의 재산이 아닐까 생각해요.
함께한 시간 반가웠고 즐거웠어요^^

최정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최정신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행마다 담긴 사유에 빈말이
한 마디도 없네요
먼지도 시인의 맘 끝에선 계보를 남기는 군요.
성쉰에게 인내와 긍정을 배웁니다.

성영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성영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몇해 전 지인을 따라 20여년 넘게 닫혀 있었다는 가게(다방)를 들어가 보적 있어요.
오목교 근처였고 지하였는데 도심 한복판에 그런곳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테이블 위 찻잔이며 공중전화와 레코드판도 마법처럼 시간을 잡아두고 있었어요...
늘 넘치는 말씀 감사합니다 시인님. 오래오래 함께해요^^

서피랑님의 댓글

profile_image 서피랑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못 나눈게  아쉽네요.
오늘은 서로 다른 날짜가 마주보는 하루...
가슴에 손을 넣는 구절입니다. 좋은 시집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성영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성영희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에 대한 열정과 깊이는 서피랑님이 대가이시지죠.
다음엔 많은 조언 얻어 오겠습니다.
시집은 발표시들이 많아서 신선하지 못할것 같아요.
출간 되는대로 보내드릴게요.^^

임기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임기정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역시나 먼지마저도 시인님의 눈 앞에서 딱 걸렸네요
요로코롬 만나게 시 쓰시니 제가 팬 안되것슈
오랫만에 만나서 반거워구
또한 기동찬시 읽어서 즐거웠구
포동이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김용두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용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늘 대상을 확실하게 장악 하십니다.^^
거기에 시간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상상력,,,
이것이 성영희 시인님의 시의 한 특성이 아닐런지 생각해 봅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박해옥님의 댓글

profile_image 박해옥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마치 먼지와 예기를 주고 받듯
그 감성이 샘이 납니다
성영희시인님
이 가을엔 좋은 글도 많이 쓰고
건강도 잘 챙기시구요
행복한 겨울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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