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되어 누워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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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되어 누워보니
/장 승규
네가 가만히 걸어 들어온 그날부터
나는 길이 되었다
길은 목적지가 아닌 줄 안다
머물지도 않고
돌아오지도 않고
하물며 돌아보지도 않고
모두들 자기만의 한 더미 시간을 지고, 이고
바삐 지나간다
누군가의 무게는
길을 더욱 단단하게 하였고
누군가의 갈망은 길을 넓히었다
늦가을 이 길에
가랑가랑 울면서 지나가는 가랑잎 하나
어느 봄날
길가에 들고 섰던 그 수수한 꽃
아! 그것이 너의 고백이었구나
(요하네스버그 서재에서 2025.05.30)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Lying Down on the Path
/Sankei Jang
Since the day you walked in quietly,
I became a path.
A path is not a destination itself.
No one lingers,
No one returns,
No one even looks back.
Bearing their own heap of time and longing,
Each hurries past
Someone's weight made the path firmer
Someone's longing made the path wider.
On this path late autumn,
A single maple leaf weeps as it passes.
That day in spring,
The flower that you held still by the pathside
Ah, that was your confession.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장 승규 시인의 시 「길이 되어 누워보니」는 말없는 기다림과 존재의 깊이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아름다운 명상시다.
시의 화자는 네가 조용히 걸어 들어온 그날부터 스스로 ‘길’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한 구절만으로도 이미 시인은 ‘길’이라는 상징을 통해 자신을 타인의 여정에 내어준 존재로 승화시킨다.
길은 목적지가 아닌 줄 안다. 그저 ‘지나는 곳’일 뿐이다.
머물지 않고, 돌아오지 않으며, 심지어 돌아보지도 않는다.
시인은 무심히 스쳐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 속에서도 각자가 ‘한 더미 시간’을 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바삐 지나가는 이들은 삶의 무게를 짊어진 존재들이고, 길은 묵묵히 그 무게를 감당하며, 말없이 그들의 시간을 받아낸다.
그러나 길로서의 존재는 단순한 희생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 지나침 속에서 더 단단해지고, 더 넓어졌다.
누군가의 무게는 그를 견고하게 했고, 누군가의 사랑은 그를 넓혔다.
스스로 깔려 누운 자리가 타인의 슬픔과 사랑을 받아내며 더 깊은 존재로 변해간다. 이것은 곧 ‘참된 만남’의 형상이다.
타인의 삶이 내게 남긴 흔적이 곧 내 존재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가장 아름답고 인상적인 순간은 마지막 연이다.
“늦가을 이 길에
가랑가랑 울고 지나가는 가랑잎 하나
어느 봄날, 길가에 들고 섰던 그 수수한 꽃
아!그것이 너의 고백이었구나”
단풍과 봄꽃, 계절을 넘나드는 이 상징은 지나간 사랑의 시간이 뒤늦게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을 보여준다.
시인은 자연의 미세한 움직임 속에서 감정의 진실을 포착한다.
단풍 한 잎의 눈물에서 봄날의 고백을 떠올리는 시적 직관은 너무도 섬세하고도 아련하다.
그것은 아마, 지나간 사랑이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그 늦은 깨달음의 울음일 것이다.
이 시는, 살아오며 우리가 얼마나 많은 길을 지나왔는지,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길이 되어 주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세상을 지나가는 모든 발자국들 속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울고 있고, 누군가는 사랑을 흘리며 지나간다.
그 모든 지나침이 내 안에 스며들어 나를 더 크고 깊게 만든다.
장 승규 시인의 이 작품은 짧지만, 그 여운은 길다.
길이 되어 누운 존재의 내면은 말없이도 많은 것을 품고, 많은 것을 전한다.
이 시는 우리 모두가 잠시 멈춰 서서, 누군가의 길이 되어주었던 자신의 시간을 들여다보게 하는 조용한 초대장이다.
香湖김진수님의 댓글
돌아보면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위해 길이 되어주지 못했는 것 같습니다
고백하자면 실패한 연극일 뿐입니다
주인공은 커녕 조연도 아니었습니다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한
다만 누군가에게 폐 끼치지 아니하고 스쳐지나는 행인이었다는 것으로 스스로 위로 합니다.
좋은 날 되십시요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향호님!
다녀가셨군요.
감사합니다.
임기정님의 댓글
산청에 있을 때 산을 올라 길인 줄 알고
따라갔는데 엉뚱한 곳이라 그 이후부터
표식을 하면서 갔던 기억이 있네요
길이란 인생과 같다고 생각해 봅니다
시 잘 읽었습니다. 회장님
장승규님의 댓글의 댓글
기정님!
인생길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 길에도 표식을 하고 다니세요.
언제 돌아가는 길 잊으면 어떡해요.ㅎ
장승규님의 댓글
시작노트 <길이 되어 누워보니>
안녕하십니까? 시마을 동인 장승규입니다.
이렇게 시마을 예술제를 마련해 주신 운영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본인의 졸시를 행사의 일부로 선정해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여러분은 ‘길’ 하면 무엇이 떠오르십니까?
〈길이 되어 누워보니〉이 시는 어느 순간, 제 삶을 멀리서 바라보게 되면서문득 발아된 시입니다.
그리고 이 시는 제 자전적 소설 『길이 되어 누워보니』의 서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흔히 길을 어딘가로 가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저도 그렇게 믿으며, 그 어딘가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쉼 없이 걸어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길은 내가 어디로 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누군가가 지나갈 수 있도록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가난했던 제 아버지는 어느 산골마을의 새마을지도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좁다랗던 마을길을 넓히고,굽은 길을 곧게 펴고,없던 길을 새로 내셨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조금 더 편히 오갈 수 있도록 평생 길을 닦으셨던 분입니다.
내가 왜 갑자기, 내 가난한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느냐 하면
나는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온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돌아보니,저는 그 아버지의 새마을길을 딛고 편히 세상으로 걸어나온 사람이었단 말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길이 되어본 적이 있는가.
아내에게,가족에게,이웃에게,그리고 내 동포에게.
이 시에 나오는 가랑잎 하나,그리고 어느 봄날의 수수한 꽃은이 길이 기억하는 지난 사랑의 흔적입니다.
길이 되어 누워, 그 작은 흔적들을 돌아보며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지금은 작아 보여도 오래 흔적으로 남는다는 것을.
그래서 이 시는 어떤 결론이나 다짐이라기보다 하나의 깨달음에 가깝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이 졸시를 소리로 다시 건네주신 낭송가 이종숙님과 정나래님께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제 저는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오늘,누군가 편히 지나갈 수 있는 길인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