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강은 시 <로드킬 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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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킬 스테이션
사강은
길고 긴 나무 우거진 산속. 어두운 터널. 강원도 초행길. 출구까지 4킬로미터. 목적지까지 1시간 10분. 내비게이션에서 들리는 유쾌한 여자 목소리. 뒷좌석은 모두 숙면. 숨소리. 라디오에서 누군가 웃고 웃음 뒤에 잠시 침묵. 뿌연 앞 유리에 와이퍼 한 번. 또 한 번. 다른 방식으로 물기. 물기 위에 희뿌연 다시 잔해. 흐려진 시야. 시야 다음 철컹. 철컹하고 묵직. 지나가기.
지나쳤다. 철컹하고 묵직.
뭐였을까?
휴게소. 지워진 주차선. 주차선 벗어난 봉고차와 트럭들. 튀김 쩐내. 냄새 위에 얹히는 상상. 닳은 바퀴. 그 위에 묻은. 코너 뒤 화장실. 변기 가장자리 배설물. 유심히 보다가 휴지 걸이에 손. 휴지 아닌 차가운 쇠. 쏴아아하고 잔잔. 물 내리고 잠깐. 멈춰있기.
멈췄다. 쏴아아하고 잔잔.
뭐였을까?
시동 걸고 배기음. 뒷좌석에서 모두 휴게소 음식 물고 오물오물. 오물대다 창밖. 닫힌 창문으로 새어드는 확성기. 사과. 사과요. 당도 높고 실한. 뒷자석에서 모두 기상. 속력 올리고 트럭 질주. 투둑투둑 떨어지는 사과 몇 개. 좌회전 우회전 꺾어지며 투둑투둑. 따라서 속력 올리자 잦아드는 소리. 끝없는 도로라서. 혹은 다 터져 과즙 돼서. 뒷자석은 음식 두고 손가락 오물오물. 피 터져도 계속. 계속해서 달리기.
달렸다. 투둑투둑 터지기.
뭐였을까?
깜빡하고 졸음쉼터. 뒷좌석처럼 깜빡. 깜빡대다 꾸벅. 라디오 광고 음악. 청소업체 광고 음악. 깨끗하고 깔끔하게. 전부 치워드려요. 문득 타이어. 철컹하고 묵직했던 잔해. 피로한 목소리로 내비게이션 여자. 목적지까지 10분. 목적지까지 10분. 그럼에도 쏟아지는 졸음에 깜빡. 생각해 보니 옛날에. 열 살 때. 할머니 댁. 도살장 끌려가던 소. 불현듯 그 기억이. 자주 꾸던 꿈. 다시 졸음에 깜빡. 그사이 지나치는 똑같은 도로.
도로였다. 깜빡하는 꿈.
조금 알 것 같다.
운전대 잡고 도착한 목적지. 깜빡. 주차 요금 10분당 1천 원. 바다. 주차 요금을 잊게 하는 찬란한 바다. 그 사이로 보이는 사람. 사람들. 휴가철 죽은 눈빛. 모래바람에 충혈. 미간에 인상. 뒤돌아보니 뒷좌석에는 아무도 없고. 창문 없이 휑한 바람. 그리고 여전히.
모르겠다.
백미러 아래 달랑거리는 십자가 모형.
움직인다.
뒷바퀴에 묻은 잔해 비추는 백미러.
움직이지 않고.
운전대 놓고 의자를 뒤로 빼서 누웠더니 해가 졌다.
드디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 202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1999년 경기도 성남 출생
202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2026년 신춘문예ㅡ시 당선소감]
"어딘가를 향해 간다는 것, 그 사실이 이제야 기쁘다"
제자리에 정돈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늘 내 자리를 잘 찾지 못했다. 이곳으로 가면 저곳이, 저곳에 가면 또 다른 곳이 보였다. 내 자리가 있을 것 같아 가보면 텅 비어 있었다. 그런 곳들에라도 속하고 싶어 몸을 욱여넣어 봤다. 자리 잡지 못하고 세계 안에 무리하게 끼워진 것 같았다. 세계가 나를 낯설어하는 만큼 나도 세계가 낯설었다.
그럴 때마다 읽었다. 읽는 동안은 쫓겨날 일이 없었다. 머무르지 못해 슬퍼할 필요도 없었다. 한 권이 끝나면 또 다른 한 권으로 가면 될 뿐이었다. 문장을 쫓다 보면 정신이 팔려 어디 서 있었는지조차 잊혀졌다.
그래서 쓰게 됐다. 어딘가에서 누군가 나처럼 읽고 있을 것 같아서. 그런 기대를 하는 동안은 외롭지 않아서. 종잇장에 기대어 눕던 몸을 일으켜 두 발로 서 봤다. 감히 나도 누군가를 다독이고 싶어졌다. 쓰고자 해서 쓴 게 아니었다. 쓰다보니 써졌다. 써졌기 때문에 비로소 보였다. 나는 그걸 다시 옮겨 적을 뿐이었다.
겨우 막 일어선 나에게 걷는 법을 알려준 이름들을 적고 싶다. 김대오 교수님, 김희정 교수님, 윤평중 교수님. 덩그러니 서 있던 저에게 이곳저곳을 보여 주셔서 마침내 저 이 자리에 왔어요. 건방진 시작을 침착한 기대로 바꿔 주신 서윤후 선생님, 구부정했던 제 시를 펼쳐 주신 이영주 선생님. 평생 읽은 책 페이지 수만큼의 두꺼운 마음을 보내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기꺼이 나와 걷는 나의 사람들도 이곳에 불러본다. 나의 영감인 엄마, 나의 근원인 아빠, 나의 영원한 선배인 동생에게. 사랑한다는 말로는 부족하니 더 오래 말할 기회를 줘. 흠집 난 내 믿음에 자주 땜질해 주는 하영에게. 네가 바라는 내가 내가 바라는 나인 거 알지. 비관 속으로 굴러 떨어지려는 나를 긍정으로 붙잡는 고은에게. 앞으로도 온전히 서로를 위하는 우리가 되자. 그리고 나의 예술가 소연, 지연, 지현 언니, 영현 오빠에게 존경과 감사를. 순도 백 퍼센트의 축하를 보내 준 성아, 윤아, 민정, 주희, 서희에게는 응원과 행운을. 오히려 내가 보내 주고 싶어. 내 몫까지.
더 많이 쓰고 읽힐 수 있도록 기회 주신 심사위원 세 분과 지면 나눠 주신 한국일보에도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미처 다 알지 못하는 도움들 앞에 조용히 무릎 꿇어 봅니다.
어딘가를 향해 간다는 것. 그 사실이 이제야 기쁘다. 이제는 기대를 기대답게 쓰고 싶다. 희망. 한 번도 입에 올린 적 없던 그 말처럼. 사랑. 사랑으로. 나는 걷고 싶다.
사강은
1999년 경기 성남 출생
한신대 철학과 졸업
202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2026년 신춘문예ㅡ시 심사평]
"개인적 고뇌와 사회적 문제 중첩… 한층 입체성 띤 사유"
수준 높은 응모작들을 살피며 시인으로서 기분 좋은 자극을 받았다. 어느 해보다 복잡하고 다난한 한 해를 지나며 시의 언어와 사유도 그에 대한 응전으로 한층 입체성을 띠는 듯했다. 개인적 고뇌와 사회적 문제의 중첩이 여러 시에서 보였고, 어떤 문장과 맥락에서 폭발하기도 했다. 시가 가진 매력이자 힘이었다. 시를 쓰는 순간만큼 우리는 결과물의 수준과 상관없이 폭발의 가능성을 안고 있다. 하여, 모두가 시인이 된다. 그러나 심사는 모두를 시인으로 부르고자 하는 절차가 아니다. 한순간 시인이었던 주체 중, 계속하여 시인이 될 한 사람을 뽑는 행위일 것이다.
전반적으로 시가 길어졌다. 시가 꼭 짧아야 할 이유는 없겠으나, 반대로 길다면 긴 연유가 있어야 한다. 긴 시의 부자연스러움은 산문시보다 되레 행 구분이 확연한 시에서 도드라졌다. 많은 시에서 따로 독립된 한 줄은 독립된 만큼의 의미를 지닌다. 그 의미를 지탱하지 못한 문장이 종종 보였다. 혹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과도하게 노출된 알레고리로 인해 납작해진 시도 있었다. 시의 모든 주제는 꼭 필요한 명제일 테지만, 그것이 시가 될 때 어쩌면 쓸모없어지기도 한다. 그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다.
이러한 논의 끝에 '검도' 외 4편, '무엇이 사랑할 수 있을까' 외 4편, '농성' 외 4편, '고해성사' 외 4편을 두고 최종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검도'는 다소 낯선 소재로 시적인 것을 취하는 세련된 방식이 돋보였다. '무엇이 사랑할 수 있을까'는 시어의 운용과 구성이 자유롭고 과감하여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다만 응모작의 편차가 있어 끝내 선택하기에 조금의 아쉬움이 있었다. '농성'은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기를 주저한 원고였다. 그의 모든 응모작이 품고 있는 현실 참여에의 의지가 거칠다면 거칠고, 새롭다면 새로웠다. 거칠되 새로운 것은 언제나 신인의 미덕이 되어왔다. 다만 대부분의 시가 각주의 설명에 기대어 의미망이 형성된다는 점은 아쉬웠다. 더 용기를 낸다면 새로운 정치시의 지평을 열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최종적으로 당선작은 '고해성사'로 결정되었다. 응모작 전체에서 시의 길이와 리듬, 형식과 주제 모든 면에서 균형감 있는 새로움을 선보였다. '고해성사'는 산문시가 드러낼 수 있는 최대한의 리듬감을 가지면서, 산문시의 장점이라 할 서사성을 갖추었다. 명징한 메시지를 유연하게 풀어가는 능력과 희미한 상징을 뚜렷하게 표현하는 감각이 새로 태어날 시인에게 신뢰를 보내게 한다. 짧은 꿈인 듯하면서 굳건한 현실인 듯한 이 시에서 우리는 마지막에 와서야 각자의 손목을 쳐다보았다. "수갑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듯하여.
모든 응모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새해, 모두에게 다정한 문운이 깃들길 바란다.
심사위원-강성은, 서효인, 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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