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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시 <시래기 한 움큼>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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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4회 작성일 26-05-10 13:04

본문

래기 한 움큼4

 

    공광규

 

 

빌딩 숲에서 일하는 한 회사원이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넘겨졌다

점심 먹고 식당 골목을 빠져나올 때

담벼락에 걸린 시래기 한 움큼 빼서 코에 부비다가

식당 주인에게 들킨 것이다

이봐, 왜 남의 재산에 손을 대!”

반말로 호통치는 식당 주인에게 회사원은

미안하다며 사과했지만

막무가내 식당 주인과 시비를 벌이고

멱살잡이를 하다가 파출소까지 갔다

화해시켜보려는 경찰의 노력도

그를 신임하는 동료들이 찾아가 빌어도

식당 주인은 한사코 절도죄를 주장했다

한몫 보려는 식당 주인은

그동안 시래기를 엄청 도둑맞았다며

한 달치 월급이 넘는 합의금을 요구했다

시래기 한 줌 합의금이 한 달치 월급이라니!

그는 야박한 인심이 미웠다

더러운 도심의 한가운데서 밥을 구하는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래, 그리움을 훔쳤다, 개새끼야!”

평생 주먹다짐 한 번 안 해본 산골 출신인 그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미운 인심에게

주먹을 날렸다

경찰서에 넘겨져 조서를 받던 그는

찬 유치장 바닥에 뒹굴다가 선잠에 들어

흙벽에 매달린 시래기를 보았다

늙은 어머니 손처럼 오그라들어 부시럭거리는.

 

 


무량사 한 채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브이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 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꽃살문 스치는 바람 소리를 냅니다.

 

 


자식 놈이 사고 친 날

 

 

잘생긴 나의 먼 친척 형은

오이밭에서 농약 먹고 뒹굴다 죽어

별티에 묻혔다고 한다

 

링링링 종벌레 우는 소리에 취하여

오이꽃처럼 번 별이불 덮고

수십 년째 자고 있다고 한다

 

하숙집 색시에게 열여덟 살을 빼앗기고

학교를 떠나

엿장수로 고물장수로 술주정뱅이로

스물한 살까지 떠돌았다고 한다

 

고향에 돌아와 당당하게 농약 먹던 날

나의 먼 친척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하늘이

아주아주 깜깜했다고 한다

 

오늘이 마치 그날 같다.

 

 

 

 

루나무 붓글씨

 

 

시냇가 미루나무 여럿

들판 캔버스에 그림을 그립니다

바람 부는 날은 더 열심히 그려댑니다

곧은길만 가기 어려운 사람 발걸음을 생각해

논둑과 밭둑과 길은 휘어지게 그리고

높이 떴다 지는 둥근 해가 다치지 않게

산 능선을 곡선으로 그립니다

미루나무도 개구쟁이 아이를 키우는지

물감통을 들판에 확! 엎지를 때가 있습니다

미루나무도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 되면

붓을 빨러 냇물로 내려가다 뒹구는지

노란 물감을 하늘에 뿌리거나

언덕에 물감을 흘려놓기도 합니다

미루나무의 실수는 천진해서 별이나 풀꽃이 됩니다

이런 미루나무도 심심한 날이 있어서

뭐라 뭐라 허공에 붓글씨를 쓰기도 하는데

나는 어려서 꼭 한 번 읽은 적이 있습니다

 

광규야, 가출하거라.”

 

 

 

정취암에서 하룻밤

 

 

저녁 산길 돌아 붉은 구름 높이에 올라와

객사 앞 소나무에 달을 걸어놓고 잤지요

새벽 도량석에 끌려 밖에 나가니

나도 객사도 법당도 별이불 덮고 자는 게 아니겠어요

대승암에 틀어 앉은 늙은 느티나무 위에선

가끔 철없이 깬 날짐승이 밤새 징징거리더군요

바람을 재우느라 수런거리는 대밭과 짐승 울음과

심란한 마음이 열사흘 달빛과 몽유하는 객사

그릇 부딪히는 공양간 소리에 깨어 마루에 나오니

안개가 폭설처럼 마을을 묻어버렸더군요

산신각 뒤곁 죽은 소나무 우듬지에서

열심히 아침 공양을 드시는 딱따구리

내가 한 숟가락 뜰 때 열 숟가락도 더 드시는 딱따구리

꾀꼬리 노래 따라 응진전 지나 간월대 오르는데

이마를 툭 치는 개암나무 열매

고개 드니 어젯밤 쏟아진 유성이

바위 벼랑에 나리꽃으로 매달려 있는 게 아니겠어요?

 

 공광규 시집, 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



DSC04895.jpg

 

1960년 충남 청양 출생

동국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86동서문학등단

1987실천문학에 현장시들을 발표

2009년 제4회 윤동주상 문학부문 대상

2010년 제1회 김만중문학상 시부문 금상

2011년 제16회 현대불교문학상 시부문 

시집 대학 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덩이』 『담장을 허물다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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