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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반 시 <대숲에 들면>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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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회 작성일 26-05-12 12:14

본문

숲에 들면 외 4편


      김계반

 

 

바람 없는 날에도 대숲에 들면

젓대소리 들려오는데

고개 젖히고 보면 한낮에도 댓잎

별을 만지고 있는데

빽빽한 느낌표 같이 가로막아서는

대숲은 어느새 옷깃 적시기 시작하지요

오래된 상처일수록

가슴에 꽃물 든 묵은 상처일수록

가슴 밖으로 화악 끄집어내어

바람에 헹구는 젓대소리

대금 시나위

마디마디 속살 영근 쌍골

속 비우고 바람 후려내는 소리는

천년을 저미어도 그 마음

기울다 차오르는 보름달 같은 사랑

지귀志鬼의 숨소리 같기도 한데

그러기에 그 가락

한 줄금 소나기 같이 가슴 훑을 때면

울컥,

진한 꽃물 토해내는 거 아니겠는지요

 

 

 

살풀이춤

 

 

팽팽한 활시위에 얹혀

숨소리 말아 쥔 저 몸짓 줌 보소

 

버선발로 끌고 가는 하얀 치마저고리

키를 넘는 명주수건에 강줄기가 구비친다

구천을 넘나들며 맺히고 얽힌 살

왔던 길 있었으니 갈 길도 그 길이라

풀잎같이 여린 몸에 감기지 말고

설설이도 떠나라고

백호살 공망살 역마살 도화살

해찰궂은 모든 액살 진양조에 녹여

중모리 중중모리 흐드러질라 치면

흐느끼는 허리가 애착의 바다에 엎어진다

자진모리로 달래어 넌출거리는 신명을 업는데

짐짓 허수아비인양 딴청부리는 어깨

삼 줄 같은 업연業緣이 손끝에서 떨고 있다

가거라, 망설이지 말고 가거라

가로막는 산도 없는 정토淨土의 하늘에서

바람 없이도 날 수 있는 새가 되어라

머물러서 아픈 이 땅을 버리고

옹이진 한일랑은 꽃잠 속에 뉘어

아침 해 돋는 쪽으로 가거라

뒤돌아보지 말고 가거라

 

휘몰이장단에 바람 모으는 날개

하늘 오르는 저, 외씨버선코 좀 보소

 

 

 

쟁이

 

 

여름이 무성해지면 담쟁이가 오르는

벽은 초록 연못이다

수면은 햇살을 누비는 물결로 차르락거리고

수위를 높여가는 초록은 전설의 가닥을 잡는데

수직상승을 꿈꾸는 암벽등반

지상에서 높이 오를수록 바람의 성질도 가팔라서

고양이처럼 기어오르던 손발톱이

한 순간 틈새를 놓치고

두레박처럼 절벽 앞에서 대롱거리던 발아래

흔들린다는 것은

잃어버린 중심을 바로잡기 위한 명현반응인지도 몰라

발붙일 틈이 자주 흘러내리는

펄럭이는 꼭짓점에서 생각을 돌이킨 초록이

무성한 잡념을 노을빛 사유思惟로 걸러

출렁거리던 한 철을 뿌리 쪽에 내려놓으면

흔들림이 고요해지는 계절

낮은 앉음으로 지난세월을 돌아보기 시작하는데

바람에 맞서 휘어지거나 꺾이었던 자리

그 보다는 많았을지 모르는 즐거움에 등 휘었던

날들의 이야기를, 겨울이 깊어지면

얼음판에 획 그으며 입 열기를 삼가는 연못처럼

담쟁이도 벽을 펴놓고 운필 중인 것이다

 

 

 

폭우

 

 

잘못했다고 빌어,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종아리에 쏟아지는 폭우

꽃잎 뭉개진 매 자국에서는 빌일 없었다고

새빨갛게 부푸는 항변

그만 해라

부모 매는 아첨이 있어도

형제 매는 아첨 없다 카더라

 

늦둥이 역성들지 않으려 참다 뱉는

엄마 목의 가시

 

폭우에 집 잃은 뉴스 보면서

세상에 내리는 빗줄기, 엄마 손매 같이

아첨 두고 내렸으면 좋겠다고

빌어 보았습니다

 



아침이슬

 

 

밤은 어둠 속에 씨앗을 뿌려놓은

별들의 보석밭입니다

속눈썹에 그을음이 맺히는

매운 어둠에도

밤을 건넌 옷자락엔

별가루가 반짝이기 때문이지요

아직도 삶이란

어눌한 인사말로 스쳐가는

오래된 이웃 같고

낭떠러지 앞에서

날개가 돋기만을 기도하는

어린 날의 꿈속 같기도 하여

모서리 없이 활짝 웃는 보름달에도

그림자를 눕히곤 하지요

생각을 쉰 거미줄이 어둠을 걷어낸 아침

진주조개처럼

풀잎이 손바닥마다 내미는 보석을

햇빛이 알알이 점안點眼하였으니

오늘 하루

당신의 이마가 별처럼 반짝이겠습니다

 

김계반 시집, 대숲에 들면(시선사, 2009)



  


본명 김옥선

대구 출생

2009년 계간 시선으로 등단

시집 대숲에 들면』  『발자국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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