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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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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정건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47회 작성일 23-12-16 19:16

본문

설거지를 하면서 / 정건우

아내가 잠든 사이 설거지를 해본다
덩그런 개수대 한중간에
양푼 냄비 바닥부터 층층이 쌓인 식기들
간장 종지는 밥그릇 안으로 파고들고
밥그릇은 국그릇 위에 얹히며
젓가락은 쭈뼛하게 돛대로 꽂힌 채
난파선처럼 기울어 있는 우리살림 밑천들
큰 것은 작은 것을 보듬어 안고
켜켜이 속을 채운 오지랖 질서
해무海霧 같은 세제의 거품으로
오염된 생활의 부속을 씻긴다
화단이 내려다보이는 창문 안쪽에 바다가 있었다니
아내는 끼니 후에 난파되는 배의 키를 거두어
해신제를 지내듯 하루 꼭 세 번
이것들을 닦아 진설했구나
수없이 바다에 손을 담그고 절했겠구나
엔진처럼 따뜻한 밥이
식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젖은 손을 갑문처럼 여닫아 묵은 바다를 비우고
새 바다를 담으려 하였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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