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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여덟의 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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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초운김주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294회 작성일 21-01-29 13:53

본문

마흔 여덟의 비망록

 

눈 뜰 때마다 하루는

깨끗한 백지 같은

미지의 시간을 데리고 온다

그런데 볼에 닿는 그 질감이 예전과는

사뭇 다른 것은 무슨 까닭일까

내가 보낸 모든 시간은

연필심이 제 목숨을 닳게 하며 써내려간

되돌릴 수 없는 숙명의 발걸음 같은 것!

부르지도 않았는데

서른이 오고 마흔이 왔듯

바라지도 않았는데

코앞으로 지천명의 오십령(五十嶺)이 기다리고 있다

불러도 오지 않던 사랑과

다가가도 멀어져만 가던 이상,

그 사이로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바람이 불었다

아직 중년이라는 단어가 너무 낯선데

무엇을 잡아야 할지, 무엇을 놓아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들이 모여 내 머리를 희게 한다

스물여덟의 나가 지금의 나를 찾아온다면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

예순여덟의 나가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할까

산은 높이 오를수록 시야가 넓어지는 법인데

왜 내 눈엔 여전히 발밑 오르막만 자꾸 보이는 것일까

후진할 수 없는 일방통행로의 바퀴들처럼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 사이에서

생의 연필심이 조금씩 닳아가는 동안

때로는 개기월식처럼 내면의 시간이 캄캄하기도 했고

때로는 싱크홀처럼 마음 한쪽이 푹 꺼질 때도 있었다

너무 일찍 머리에 느닷없이 내린 폭설을

회춘의 껌정물로 제설하며 헤아려본다

인생이란 생각보다 더 빨리 지나는 굽이가 많은 길이자

제 뜻과 같지 않은 깨지 못하는 장대한 미몽일 것이니

굴렁쇠처럼, 나는 푸석이는 마음을 어떻게 굴려가야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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