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골목 / 한영옥
페이지 정보
작성자본문
환한 골목 / 한영옥
봄 골목 환하게 내려오길래
타박타박 올라가 알아보았더니
담벼락에 담쟁이 몇 가닥 올리느라
키를 늘였다 줄였다 장단 맞추는
노부부의 합심이 켜진 것이었다
생의 온도를 맞춤하게 조절해온
평강의 기운이 절로 환해진 것이었다
이번 여름이나 늦어도 내년 여름엔
초록 담벼락 싱그럽게 쿨렁거리겠다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한줌씩 시원하겠다.
―한영옥 시집, 『슬픔이 오시겠다는 전갈』(문학동네, 2018)
[시감상]
봄빛이 골목을 비추는 이유를 식물학이 아닌 마음의 물리학으로 설명한다.
담벼락에 오른 담쟁이의 박자를 따라, 노부부의 합심이 ‘켜지는’ 장면은
스위치 눌리듯 소리 없이 환하다.
잎맥의 날숨이 벽을 식히고, 그 벽이 다시 사람을 식히는 선순환,
생의 온도를 맞추는 조율사가 골목 한복판에 소환된다.
화법은 과장보다 절제를 택한다.
환함은 전등의 밝기가 아니라 태도의 밝기다.
키를 늘였다 줄이며 장단을 맞추는 담쟁이는 오래 맞춰 온 두 사람의
걸음과 포개지고, ‘평강’이라는 단어가 골목의 새 이름처럼 달린다.
한 집의 조심스런 합심이 동네의 기후를 바꾸는 장면,
이 시의 환함은 빛이 아니라 나눔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조용한 문장으로 끝까지 밀어 올린다.
(글 / 양현근 시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