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강 / 김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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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근의 아침을 여는 詩]
겨울강 / 김완수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닌
우리가
오랜 기억이 묻힌 겨울 강가로 돌아왔을 때
어제 흐르고 남은 시간이 오늘 또 흐르고 있었다
스스로 풍장에 든
잡풀들이여
자갈들이여
나뭇조각들이여
끝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여
풍경이여
행여 너였다가 혹은 나였다가
그리하여 우리가
용서할 것도 없이 방황하는 겨울 강가에 서서
눈보라를 맞는다
흐르고 난 시간은 어디서 퇴적할까
긴 세월 동안 우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어둠은 스스로 어둠을 밝히며 깊어지고
겨울 강에 스치는 바람은
허공으로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진 가운데 또 흩어진다
―김완수 시집, 『누가 저 황홀을 굴리는가』 中
[詩 감상]
얼음물을 마신 듯 정신이 맑아지는 성찰의 시입니다.
존재의 소멸과 비워냄을 통해 '우리'라는 깊은 본질에
닿으려는 모습을 인상깊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흐르지 않는 듯 흐르는 시간의 벼랑 끝에서
우리는 '너'와 '나'라는 개별의 이름을 지우고
비로소 시린 기억의 강가에 당도합니다.
어제의 눈물이 오늘로 흘러와 강물이 될 때,
스스로를 비워 바람의 길에 내맡긴 풍경들은
무엇이 되려 애쓰지 않는 '무(無)'의 평화를 보여줍니다.
나뭇조각과 자갈, 끝내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되어
풍장에 든 채로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는 일,
그것은 얼마나 시리고도 투명한 구원인지요.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는 방황 속에서
우리는 온몸으로 눈보라를 맞으며 깨닫습니다.
어둠이 제 몸을 태워 더 깊은 어둠을 밝히듯,
우리의 고독 또한 서로를 응시하며 깊어지고 있다는 것을요.
허공으로, 다시 허공으로 산산이 흩어지는 저 바람은
결국 소멸이 아니라 자유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비어있기에 비로소 가득 찬 겨울 강의 침묵 아래,
퇴적된 시간의 무덤 위로 슬픔인 듯 다시 눈이 내립니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그 눈부신 '우리'라는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양현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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