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준다는 것 / 복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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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근의 아침을 여는 詩]
덮어준다는 것 / 복효근
달팽이 두 마리가 붙어 있다
빈집에서 길게 몸을 빼내어
한 놈이 한 놈을 덮으려 하고 있다
덮어주려 하고 있다
일생이 노숙이었으므로
온몸이 맨살 혹은 속살이었으므로
상처였으므로 부끄럼이었으므로
덮어준다는 것,
사람으로 말하면 무슨 체위로 말해질
저 흘레의 자세가 아름다운 것은
덮어준다는 그 동작 때문이겠다
맨살로 벽을 더듬는 움막 속의 나날
다시 돌아서면
벽뿐인 생애를 또 기어서 가야 하는 길이므로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덮어줄 수 있는
지금 여기가
지옥이더라도 신혼방이겠다
내 쪽의 이불을 끌어다가 자꾸
네 쪽의 드러난 어깨를 덮으려는 것 같은
저 몸짓
저 육두문자를
사람의 언어로 다 번역할 수는 없겠다
신혼서약을 하듯 유서를 쓰듯
최선을 다하여
아침 한나절을 몇백 년이 흘러가고 있다
[詩 감상]
지옥을 신혼방으로 바꾸는 맨살의 연대
달팽이 두 마리가 서로를 덮는 동작에서 시인은 단순한 생물학적 결합 너머의 ‘지극한 긍휼’을 발견합니다. 일생이 노숙이었고 온몸이 곧 상처인 존재들에게, 서로를 덮어주는 행위는 단순히 육체적인 섞임이 아니라 서로의 부끄러움과 결핍을 가려주려는 눈물겨운 사투입니다.
벽뿐인 생애를 다시 홀로 기어가야 하기에, 지금 이 순간 서로의 어깨를 덮어주는 몸짓은 지옥 같은 현실을 단숨에 ‘신혼방’으로 치환하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내 쪽의 이불을 끌어다 네 쪽의 시린 살을 덮으려는 그 이타적인 육두문자는, 그 어떤 화려한 수사학으로도 번역할 수 없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거룩한 사랑의 언어입니다.
유서를 쓰듯, 혹은 신혼서약을 하듯 온 힘을 다해 서로를 보듬는 아침 한나절. 그 찰나의 시간이 몇백 년의 영원으로 흐르는 풍경 속에서, 우리는 사랑이란 결국 나의 온기로 너의 시린 생을 덮어주는 일임을 아프게 배웁니다.
시 속의 달팽이처럼, 누군가의 시린 어깨에 슬며시 이불을 덮어주고 싶어지는 이른 봄날입니다. 오늘 당신 곁에서 따스한 이불을 덮어주고 싶은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글 / 양현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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