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 정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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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근의 詩감상]
아마도 / 정두섭
밥 먹어 부르던 곳 이쯤 저쯤 몰라서
풋사랑 분홍 터진 보리밭도 몰라서
저기요,
길 잃고 길 묻는다
아마도가 어딘가요
햇발에 걸린 바람 길 터서 보내주던
노파의 손가락 끝
수몰 지구 한가운데
그림자 십여 그루가 반나마 젖고 있다
해종일 걸어 걸어 산등성이 겨우 넘어
어림짐작 고향 땅에 마음 한 척 닻 내릴 때
남은 볕
흩뿌리는 서녘
희고 붉은 아마도
[詩 감상]
수몰된 기억 위로 띄우는 마음의 닻
‘밥 먹어라’ 부르던 정겨운 음성도, 분홍빛 풋사랑이 터지던 보리밭도 이제는 물 아래 잠겨버린 비극의 풍경입니다. 시인은 지명조차 희미해진 그곳을 향해 “아마도가 어딘가요”라고 묻습니다. 이 물음은 단순한 길 찾기가 아니라, 사라진 존재의 근원을 향한 처절하고도 막연한 그리움의 문장입니다.
노파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곳, 수몰 지구 한가운데 반쯤 잠긴 채 서 있는 ‘그림자 십여 그루’는 죽어서도 고향을 떠나지 못한 영혼들의 형상처럼 다가옵니다. 해종일 산등성을 넘어 겨우 당도한 어림짐작의 고향 땅에서, 화자는 비로소 마음 한 척을 내립니다. 그것은 도달할 수 없는 과거를 향한 정박(碇泊)이자 체념이기도 합니다.
서녘 노을이 흩뿌리는 ‘희고 붉은 아마도’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억의 색채입니다. 확신할 수 없는 인생의 허망함을 ‘아마도’라는 한 마디에 담아, 물결 아래 가라앉은 삶의 무늬를 찬란하게 복원해내는 슬픈 서정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당신의 마음속에도 지워지지 않는, 혹은 반쯤 물에 잠겨 있는 '아마도'라는 이름의 수몰지구가 떠있는지요?
(글 / 양현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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