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리 ㅡ 장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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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근의 아침을 여는 詩]
왜가리 ㅡ 장대송
비 그치자
녹천역 근처 중랑천 둔치에 할멈이 나와 계시다
열무밭에 쪼그려 앉아 꿈쩍도 안 하신다
밤에 빨아놓은 교복이 마르지 않아
젖은 옷을 다림질할 때처럼
가슴속에 빈 쌀독을 넣고 다닐 때처럼
젖은 마당에 찍어놓고 새벽에 떠난 딸의 발자국처럼 앉아 계시다
비 그치면
노을에 묶인 말장처럼
열무밭에 앉은 왜가리
기억이 묻은 마음 때문에
물속만 가만히 내려다보고 계시다
[詩 감상] 비 갠 뒤, 젖은 생(生)을 다림질하는 고요한 응시
장대송 시인의 '왜가리'는 비 갠 중랑천 둔치에 홀로 선 왜가리를 통해, 우리 시대 어머니들의 눅눅한 생애를 아리게 포착해냅니다. 시인은 미동 없는 왜가리의 자세에서 삶의 신산(辛酸)을 견뎌온 '할멈'의 뒷모습을 읽어냅니다.
시 속의 정서는 덜 마른 교복을 다리는 조바심처럼, 혹은 비어버린 쌀독을 마주한 막막함처럼 축축하게 젖어 있습니다. 왜가리가 물속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몰입은 단순히 먹이를 찾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가슴에 맺힌 응어리와 차마 떠나보내지 못한 기억의 편린들을 들여다보는 고요한 수행에 가깝습니다.
특히 '노을에 묶인 말장'처럼 박혀 있는 그 모습은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매듭을 떠올리게 합니다. 비는 그쳤으나 마음의 비까지 마르지는 않아, 할멈은 노을빛을 빌려 젖은 기억들을 조금씩 다림질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화려한 수사 없이도 이 시가 깊은 울림을 주는 건, 왜가리라는 매개체에 투영된 '마음의 무게'가 우리 모두의 기억과 닮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잊히지 않는 기억 때문에 물속을 응시하는 그 뒷모습에서, 우리는 어느덧 자신의 젖은 마음 한 자락을 발견하게 됩니다. (글 / 양현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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