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의 껍데기 눈 가지고는 부처에게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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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의 껍데기 눈 가지고는 부처에게 통하지 않는다
법명法名/ 덕산德山
법호法號/ 탄무誕无
중생은 생각을 씹어 번뇌를 자꾸 만든다
마음 행위로 짓는 법제法製에 따라
행동이 되고, 말이 된다
그 행동과 말이라 해봤자
손오공의 범주範疇를 벗어나지 않는다
선사禪師는 공空(무無)을 썰어
무無(공空)를 만든다
마음 행위가 어떤 법제를 해도
공空이고, 무無다
중생은 생각의 침(바늘)이
마음 행위 왕성한
번뇌의 원혈原穴에 꼽히므로
헛된 망상妄想의 기氣에 꽂혀 산다
선사는 무無(공空)를 잡으면
공空(무無, 허虛)을
단박에 뚫고 들어가므로
부처의 먹이 텅 빈 고요와 침묵이다
중생은 옥신각신
번뇌망상 잡고서
야단법석 펼쳐라!
선사는 부처의 본체,
영원불멸 들고서
법문 공을 펼치마!
*
*
* 껍데기 눈 가지고는 부처에게 통하지 않는다/
/ 속의 눈, 마음의 눈,
/ 부처의 눈을 떠야 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 법제法製/ 약의 성질性質을 좀 다르게 하기 위爲해
/ 정定해 있는 방법方法대로 가공加工하는 일.
/ 끓이고, 달이고, 볶고, 말리고, 발효(숙성)시키는 것 등에 따라
/ 약리작용藥理作用(몸에 들어가 생리적 변화가)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 즉, 이 선시禪詩(오도송悟道頌)에서 법제란
/ 마음 행위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짐을 뜻합니다.
/ 법제는 생각으로 짓는 마음 행위를 가리킵니다.
/ 생각이 마음이고, 마음이 생각입니다.
* 야단법석野壇法席/ 이 말은 선사가 법문을 펼친다는 것을 안 이판승, 사판승이
/ 야외(옛날에는 야외에서 법문을 펼쳤음)에서
/ 단壇을 먼저 깔자, 아니다, 법法을 먼저 펼치게 해야 한다며
/ 옥신각신한 데서 유래가 된 말입니다.
* 손오공/ 미혹한 인간, 중생, 무명.
/ "손오공 날아봤자,(날뛰어 봤자) 부처의 손바닥 안이다."
/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은
/ 날뜀이 심한 교활한 중생(깨치지 못한 인간)을 가리킵니다.
* 선사禪師/ 나, 선각先覺, 깨친 자,
부처와 계합한 자, 살아 있는 부처.
* 부처/ 인간의 본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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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gjqkd님의 댓글
생각을 뒤집으면 각생 ㅋㅋㅋ
gjqkd님의 댓글
언어가 생각을 그린다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요. 판타지도 그런 판타지가 없겠지요 ㅎㅎㅎ
탄무誕无님의 댓글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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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좋습니다.
생각을 뒤집으면 각생?
하는 행위가 뱀의 몸에 부처의 입이로다.
생각을 뒤집어도 생각은 생각입니다.
마음은 뒤집어도 마음입니다.
나쁜 버릇입니다.
나쁜 버릇 개에게나 주십시오.
탁론으로 청론을 저울질해서는 안 됩니다.
알음알이(마음 행위)로 부처(본래 성품)를 저울질할 수 없습니다.
지금 시마을에서 쉽게 글로 볼 수 있으니까,
선사가 만만하고, 쉽게 보이는가 봅니다.
쉽게 부처의 살림살이 얻을 수 있으니 귀한 줄 모르면 안 됩니다.
몸은 옛 몸이로되 사람이 옛사람이 아닙니다.
쉿!!
멈추어라!!
생판 모르는 아이디로 댓글에 치중하려 하지 마시고,
시를 댓글처럼 써보십시오.
제가 댓글 한 줄로 낄낄거리며
눈알 튀어나오도록 후려쳐 드리겠습니다.
아이디(이름)를 바꾼다고 자신의 본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달라져야 하는 것은 자신입니다.
생각을 뒤집으려 하지 말고, 자신을 뒤집으려 노력하십시오.
자신이 뒤집어지면 다 뒤집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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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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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이 죽을 때까지 다 설說 해도 모자랄
부처의 살림살이가 너무 많아
무엇부터 내어드려야 할지?
캄캄한 밤이면 속이 탑니다.
애가 탑니다.
부처의 가피加被를 입으면
반드시 정법正法만을 설하겠다고
대성통곡 울며불며 나와 다짐하고 다짐했고,
팔공산八公山이 떠나도록 울부짖으며 부처와 약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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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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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이 울었습니다.
장이 꼬일 때까지 울었습니다.
너무 깊게 오래 울어 장이 꼬일 때가 잦았습니다.
그래서 제 병에는 장이 자꾸 꼬이며 마비가 오는 증상도 있었습니다.
이 병증은 지금은 거의 다 풀어 완치시켰습니다.
나(부처, 본래 성품)에 대해 몰라 너무 캄캄해 울었고,
배고파서 울었고, 오돌오돌 떠느라 너무 추워 울었고,
불 하나 없는 산속에서 너무 추워 잠들면 얼어 죽을까 봐, 못 깨치고 동태될까 봐 울었고,
해도 해도 안 되니 1818 하며 울었고,
해도 해도 죽으라고 해도 진전進展이 없는 무진전無進展이어서
이리해도 죽고, 저리해도 죽을 거면
맞짱 한번 뜨자며 1818, 218,
개18 하며 부처에 달려들며 울었습니다.(화두를 들 때는 무진전이 대진전입니다.)
화두 드는 거와 우는 거밖에 할 줄 몰랐습니다.
부처 불佛 자字도 쓸 줄 모르는 돌무식한 숙맥이었습니다.
반드시 깨치십시오.
부처에 계합하십시오.
오늘은 어떤 살림살이???
될 수 있으면
본 오도송悟道頌(선시禪詩와)과 쉽게 연관 지을 수 있는
살림살이부터 내어 드릴 것입니다.
7년 전前부터(햇수로 8년째)
법문(경經, 오도송悟道頌)의 차원을 차츰차츰 높여가면서
계속 내어 드리고 있는 모든 살림살이는
저의 대성통곡이고, 울부짖음입니다.
부처로 승화시킨 짜디짠 훈계입니다.
28천天과 삼천대천세계를 감동시킨 묘오妙悟입니다.
부처의 눈물입니다.
부처의 뜨거운 절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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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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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바늘)/ 침과 바늘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사람의 생각은 자기 자신을 아프게 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다 안 되면 다른 사람을 인신공격하며 해코지하는 것을 서슴지 않습니다.
인신공격하는 이러한 죄 절대 짓지 마십시오.
몸이 죽으면 의지할 곳을 잃은 영靈은 엄청난 오라를 받게 됩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못 사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저도 깨치기 전에는 죄 크고, 무식하며,
발랑까지지 못해 깐깐한 성질만 믿고
몹쓸 짓, 나쁜 짓 많이 했던 아주 교활한 손오공(미혹한 인간)이었습니다.
마음 행위가 사람을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므로
침과 바늘이라는 표현을 쓴 것입니다.
마음 행위는 바늘이며 침입니다.
적절한 표현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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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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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자리 닦는 거와 수행은 진전進展이 없다.
진전이 없어야 한다.
진전을 바라면 간화선看話禪이 아니다.
진전을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다.
욕심이 되면 안 된다.
화두를 드는 것이 물 흐르듯 할 때까지는 화두가 천근만근이기 때문에
욕심이 되면 몸이 돌아갈 수 있다.
깨치지 못하고 수족을 평생 못 쓰는 병신이 될 수 있다.
깨치기 전에 진전을 느끼면 공부를 흐리게 하는 커다란 마장魔障이다.
이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화두에만 집중해야 한다.
화두를 똑똑히 새기지 않아 의식이 분산되면 이러한 일은 자꾸 생긴다.
깨치기 전에 진전을 느낀다면 마귀로 불리는 마음 행위이다.
알아차려라!
알아차리고 화두에 강력한 의식의 힘을 주어야 한다.
화두를 놓치면 죽은 목숨이라 생각해야 한다.
"등신같이 이것도 하나 제대로 못 하나 하면서 호되게 자신을 채찍질하여라!"
진전進展 없는 무진전無進展이 대진전大進展이다.
진전 없이 화두만 따라가야,
화두만 계속 잡아야 바른 공부다.
화두를 들고 닦아보니 힘들고,
죽을 거 같고 진전이 없으니 자꾸 지식적으로 알려고 대들려 하고
마음 행위에 꿰맞추려 할 것이다.
꿰맞추려 하고,ㅡ 살려고 하는 이 마음 행위를 죽여야 한다.
또렷이 새기는 화두로서 죽여라!
지식으로 가니 아는 것은 많아진다.
아는 게 많아지는 만큼 번뇌망상이 줄어들어야 하는데
이 생각, 저 생각, 딴생각은 줄어들지 않는다.
조바심이 일고, 빨리 깨치고 싶은 욕심만 자꾸 커질 것이다.
이럴 때도 또렷이 새기는 화두로서 죽여라!
죽여야 살 수 있다.
이것을 화두로서 반드시 죽여야 다시 부활하는 생生,
해탈解脫을 할 수 있다.
그대로만 한다면 한 치의 어긋남도 있을 수 없다.
아는 게 많아지면 번뇌(생각과 마음 행위)가 줄어들어야 하는데 생각의 요동침이 더 크다.
지식과 마음 행위로는 죽어도 부처(참나, 본래 성품)를 만날 수 없다.
간화선看話禪(기도 포함) 공부를 하는 공부인이라면 지금 간看하고 있는
화두(진언, 부처의 이름을 부르는 염호, 정근 다 포함됨)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바른 대공부로 가고 있는 것이다.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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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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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에 집착하는 실수 때문에 본래 성품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무(無, 공空, 허虛)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
그리고 또다시 무無로 사라진다.
한 남자를 사랑한다.
혹은 한 여자를 사랑한다.
이것은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오지 않았던가?
자신의 본래 성품을 보게 되면
그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경전이 된다.
수천 가지 경전은 모두 밝은 본래 성품, 부처의 본체 무無에서 나온 것이다.
진정한 이해는 무無(없음)에서 비롯된다.
무無(없음)에 계합하면 이해시킬 필요없이 이해가 따르며
무에 바탕을 둔 그대만의 무로부터 창조된 경經이,
고금불조古今佛祖의 죽어 있던 말도 부활시킨 경經이 나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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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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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는 순간 제왕이라 할지라도 왕의 지위를 갖고 갈 수 없다.
지식과 권세와 모든 소유를 하고 갈 수 없다.
갖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본래 성품에 대해 깨어 있음이다.
이것만 죽은 후에도 영靈이 갖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다.
이것만이 영靈을 끝까지 따라갈 수 있다.
깨침만이 죽은 몸을 대신해서 영靈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보호막이다.
만약 그대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재산을 체득하지 못한다면 인간으로서 굉장한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그대에게 보이는 모든 것은 꿈이요.
헛된 환상임을 깨쳐야 한다.
죽음이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리기 때문이다.
죽음은 무엇이 실체인지를 판정해 주는 유일한 기준이다.
부처와 예수라는 말을 사용할 때마다
그것이 석가모니와 예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라.
깨침과 해탈의 뜻으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다.
사실 예수와 부처란 그런 뜻이다.
깨침의 세계에서는 이것은 어떤 개인의 이름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본래 성품을 일컫는 말이다.
깨침이 무엇인지 실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쳐놓은 덫에 계속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무엇이 석가와 예수의 말이며,
무엇이 추종자들이 덧붙여 놓은 사족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그대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아무것이나 사족이라고 말을 한다.
마음을 통과해서 지나가는 생각이 어떤 종류인가에 따라서
마음은 항상 순결과 오염을 반복한다.
그대가 누구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나 어떤 것을 훔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대에게 나타나는 생각에 따라서 마음은 수시로 변한다.
그래서 마음은 결코 텅 비워질 수 없다.
마음이란 선한 생각이든 악한 생각이든 생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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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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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진짜 본래 성품이 그대의 진정한 존재이다.
몸이 죽어도 죽지 않는 바로 진신眞身이다.
마음은 매우 일상적이고 세속적이다.
이것은 매일매일 작업에만 쓸모가 있다.
마음은 인간의 외부 기능에 해당한다.
내면의 세계에서는 마음이 절대적 무용지물이다.
부처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마음을 넘어서야 한다.
사람들은 깨친 사람이 동일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들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불교도는 오직 석가모니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는 완벽하지 않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은 예수만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시대가 변해도 모든 예수와 부처는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생기는 것이다.
깨침의 세계에서는 석가와 예수는 같은 뜻이다.
하지만 존재계에서 똑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존재가 자신의 고유함을 하고 있다.
사람이 깨침을 체득했을 때 자신만의 개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그는 히말라야의 봉우리처럼 우뚝 솟아 있다.
그것은 다른 봉우리들과 그 모습이 다르다.
이것은 자신의 본래 모습으로서 완전한 것이다.
깨침은 모든 사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비록 깨친 자의 행동이 모두 달랐고, 철학이 달랐지만,
여전히 깨침은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갖추고 있는 본래 성품에 대해서 말했다.
그래서 깨친 자의 모든 말은 내면적 핵심은 동일하다.
부처는 기계가 아니다.
기계는 같을 수 있다.
하지만 부처는 같을 수 없다.
깨치지 못한 사람들조차 모두 틀린데,
어찌해서 부처가 같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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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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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그대가 그대 자신의 본래 성품을 발견하면
그대에겐 그저 놀라움밖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대는 항상 깨침의 상태 속에 있었다.
단지 이 사실을 그대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만일 그대가 수천 가지 경전을 다 설명할 수 있다 해도
자신의 본래 성품을 보지 못하는 한,
그대의 설명은 중생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한번 그대가 자신의 본래 성품을 보게 되면
그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경전이 된다.
수천 가지 경전이 오직 그대의 본래 성품에서 나왔다.
진정한 이해는 자신의 본래 성품에서 비롯된다.
그대의 마음과 의식은 너무나도 표면적이어서
만약 누군가가 그대를 욕한다면,
그대는 겸손의 미덕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즉시 분노하게 된다.
깨친 자는 정법을 바르게 말했는데 그대는 무시함으로 받아들인다.
바르게 말해야 하므로 바르게 말한 것이다.
무시한 게 아니다.
무시는 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가 나를 무시해놓고,
그대의 마음 행위는 내가 그대를 무시했다, 착각하고 있다.
부처는 오직 한 가지,
인간의 본래 성품에 대해 말한다.
듣는 그대 마음이 제각기 달리 해석하고 있다.
무시를 당한 것은 그대가 아니다.
부처에 대해 바르게 말한 나였다.
/ 바르게 가르쳐주는 말을 무시로
/ 혼동하지 않았으면 한다.
/ 바름을 무시로 혼동하면
/ 바르게 말하는 자는 그대 앞에서 모두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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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jqkd님의 댓글
한마디로 딱 잘라서 없음만이 있음이 되는 거네요.
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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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손 합장 예를 갖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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