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부는 자살에 견줄만한 충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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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의 나를 부정함과
자살하고픈 충동에 벌벌 떤 전율戰慄은
목숨 거는 것만으로 부족했다
죽을 거면 공부하다 죽겠다
죽어도 좋다는 대신심大信心이
화두話頭만을 간절히 간看하게 했다
이(부처) 공부하다 죽는다면 영광으로 받아들이겠다
똘똘 뭉친 분하고 분한 대분심大憤心이 있었다
오나가나, 죽으나 사나 화두만 쏘아붙였다
끊임없이 쏘아붙인 충격이 - 충동에서,
한밤중에 해가 뜬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불佛에 불이 붙었다
다 타서 다 죽은 자리,
모든 만물이 공空으로 충만하다
모든 것은 죽어야 나올 수 있다
지금 그 자리는 죽어서 나온 자리.
끝까지 나를 따라오지 않아
선사禪師인 나를 돌팔이로 만드는 거지
너가 돌팔이므로 돌팔이는 너에게 있지
깨친 나에게 돌팔이는 없다
병을 치료해 줄 때도 또한 마찬가지,
너의 모든 재산이 다 털려야
나를 바르게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콧구멍(코뚜레)은 사수死守할지 모르나
어쩔꼬,
눈동자는 멀고 말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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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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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을 알리는 1연 1행, '어제까지의 나'/ 거짓된 나.
* 2연에서 사용된 1인칭 '나'/ 인간의 본래 성품, 깨침, 부처.
* 자살하고픈 충동/ 자살에 견줄만한 충격이 있었습니다.
* 화두話頭/ 선가禪家(깨침의 세계)에서 사용하는 화두라는 말은
/ 세간법에서 말하는 이야기의 말머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 깨쳐야 바르게 알 수 있는 공안公案(조사선, 조사관)입니다.
/ 깨치게 되면 알게 됩니다,
/ 세상 모든 만물은 화두(공안公案)가 다 될 수 있습니다.
* 화두를 간看하다/ 화두를 본다는 말이 아닙니다.
/ 의식을 목 전前(전방 1미터)에 두고 화두를 잡고, (또는 부처의 이름을 잡고)
/ 한 획 한 획 또박또박 의식을 다해 또렷이 그리는(쓰는) 것입니다.
/ 잡념과 망상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또렷이 그려야 하고, 끊임없이 그려야 합니다.
/ 번뇌망상이 따로 놀고, 화두가 따로 놀면 공염불이 됩니다.
/ 이렇게 간화선을 하면 도로아미타불입니다. 하나 마나 한 공부입니다.
/ 선가禪家에서 간화선看話禪을 하는 선승禪僧들은 '화두를 간看한다'는 표현도 간혹 쓰지만,
/ 실은 '화두를 든다'는 말을 사용합니다.
/ 왜? 화두를 든다는 말을 하는가 하면 처음에 화두를 들면 화두가 잘 잡히지 않습니다.
/ 번뇌망상이 많아 잡으면 빠져나가고, 잡으면 빠져나가고 계속 그렇습니다.
/ 그동안 살아오면서 고약하게 든 버릇(습習, 濕)과
/ 무엇이든 잣대와 기준을 자꾸 들이대는 마음 행위 때문에 그렇습니다.
/ 공부가 어느 정도 익어야 화두가 잡히는데, 이때부터 화두를 간看하게 되면
/ 한 획 한 획 또박또박 또렷이 그리는 것이 굉장히 힘들고 무겁습니다.
/ 그래서 '화두를 든다'는 말을 씁니다.
/ 간화선에 물이 완전히 올라야 화두를 들 때 많이 무겁지 않고 많이 힘들지 않습니다.
/ 사실 '화두를 간한다'는 말보다는 '화두를 든다'는 말이 더 옳습니다.
/ 화두를 간하는 것은 대강대강 근성일 수 있지만, '화두를 든다'는 것은 치열함입니다.
* 한밤중/ 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 깜깜한 칠흑에 휩싸인 무명無明,
/ 마음이 무언가에 자꾸 홀리는 미혹迷惑한 상태를 뜻합니다.
* 해/ 부처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래 성품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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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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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꼭, 육신만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 어제의 당신이 죽지 않았다면,
/ 오늘의 당신은 여기 존재할 수 없습니다.
* 다 타서 다 죽은 자리/ 백겁적집죄百劫積拾罪 일념돈탕진 一念頓湯盡으로서
/ 백겁동안 쌓인 모든 죄와 잘못이 일념一念에서 모두 녹아 없어짐(소멸하였음)을 뜻합니다.
/ 생각으로 만들 수 있는 일념이 아닙니다.
/ 일념一念이 정확히 가리키는 곳은 삼매에서 부처의 본체,
/ 공에 떨어져 의식이 부처와 계합한 상태를 말합니다.
* 공空/ 부처표 공空으로서 부처의 본체本體를 뜻합니다.
* 이 자리/ 부처의 경지, 부처와 계합契合한 자리.
* 콧구멍/ '깨침의 세계에서는 인간이 소에 비유된다.' 했습니다.
/ 소는 코뚜레를 꿸 수 있는 콧구멍이 있습니다.
/ 코뚜레에 코가 꿰인 소는 코뚜레를 당기는 데로 따라가게 됩니다.
/ 코뚜레란 인간의 마음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 지식과 외부로부터 들어온 정보입니다.
* 재산/ 물질적인 재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 지식과 외부로부터 얻어들은 잡동사니(정보)입니다.
/ 그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알음알이입니다.
/ 번뇌망상으로 가득한 알음알이로 풍요로운, 마음이 번잡한 재산을 뜻합니다.
* 재산이 다 털려야/ 번뇌망상과 알음알이가 다 죽어야 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 부처표 공이 되면 번뇌망상과 알음알이는 다 죽습니다.
* 눈동자/ 자신의 본래 성품에 대한 눈동자,
/ 자기 자신을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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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선님의 댓글
댓글 붙이지 말라고 하셨는데..
암튼,
목숨 걸고 하는 일은 참, 무섭다는요
탄무誕无님의 댓글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매우 반갑습니다.
제가 글을 올려놓고 교정 작업하다 말고,
엉금엉금 기다시피, 숨차서 주저앉아 쉬어가며, 쉬어가며,
다섯 가구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손바닥보다는 많이 큰 마당을 쓸고,
물청소하고 배수구의 찌꺼기를 걷어내는 청소를 하였습니다.
비가 온 뒤에는 마당 배수구에 지붕에서 떠내려온 찌꺼기가 고입니다.
세수도 깨끗이 하고, 오일풀링도 하고,
부엌엔 비가 새는 관계로 비에 젖은 살림 도구,
깔아두었던 물기에 젖어 있던 수건을 빨아 널어놓고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침을 꽂아 놓은 상태에서 정적靜寂인 공부를 할 것입니다.
자리 함께해주셔서 많이 감사합니다.
굽어살펴주십시오.
건강 잘 챙기시는 일, 절대 잊지 마십시오.
더 악화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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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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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부터 자신이 갖추고 있는 부처를 단순한 추상으로,
부처는 자신과는 멀리 떨어진 은하銀河에 있는 것으로,
혹은 신의 은총과 계시를 받아야만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간화선은 이 같은 생각을 무엇보다 경계합니다.
부처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자신의 내부에 있습니다.
절대 다른 곳에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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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본문의 선시禪詩가 약간 매끄럽지 않았는데,
1연에 행을 하나 더 추가해서 매끄럽게 수선修禪을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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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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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法眼 일행은 작별을 고하고 문밖을 나섰다.
주지는 배웅나와 정원의 돌을 가리키며,
“당신은 삼계유심三界唯心이라느니,
만법유식萬法唯識이라느니 하는데,
“이 돌은 당신 마음의 안에 있습니까, 밖에 있습니까?”
“물론 내 마음의 안에 있습니다.”
그러자 주지는
“대체 어떻게 그렇게 무거운 물건을 안에 담고 행각을 다니십니까?”
법안은 이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의문을 풀기 위해 며칠 더 지내보기로 했다.
매일 새로운 견해와 답변을 꺼내보았지만,
주지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부처는 그런 것이 아니야.”
한 달이 지나 법안은 이렇게 손을 들었다.
“이제 더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자 주지는
“부처는 항상 여기(여기 지금에) 있는 거요.”
이 말을 듣고 법안의 눈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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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재는 바로 앞에 있다.
* 그런데 부처를 이름과 형상의 세계로 번역하고들 있다.
* 부처는 행동주의적 표지나 심리적, 정서적 공감을 통해서는 절대 만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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