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7] 병실에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본문

병실에서
정적 흐르는 시간속에 차가운 노크 소리...
곧 이어, 간호사의 팔로 부터 이어지는
쏠비톨 5%의 주사액.
봄밤은 창밖에서 오히려 황량한 정조(情調)로 머물러 있고,
나의 짙은 그림자는 병실(病室)의 환한 불빛에 어른거리어,
잠든 아버지의 가느다란 혈관으로 흐르는 건 촘촘한 슬픔.
지나간 시간들이 낡은 구조로 층층이 쌓여 숨 막히듯 짓누르는 밤,
어린 나의 시절에 내 머리 쓰다듬던 아버지 얼굴이
당신의 죽음 앞에서도 버릴 수 없는 옛날의 기억처럼 환히 웃는다.
" 얘야, 너 예서 뭐하고 있니... 너, 얼굴이 무척 안됐구나..."
구부린 어깨 넘어 날개를 접은 하루가
추억의 한 모퉁이를 쓸쓸히 거닐어 나의 머리도 어느덧 희끗하니
아버지 따라 물드는데,
아버지 얼굴은 세월을 건너뛰어, 석고(石膏)처럼 굳어버린 나를
쓰다듬는다.
그 가느다란 혈관으론 아까 부터 촘촘한 아픔,
내 마음 적시며 흘러가는데...
- 안희선
[Memo]
올해도 어김없이 어버이 날이란다
아버지가 작고하신지도, 2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생각하면, 살아 생전 알뜰히 不孝만 했다
문득 돌아가시기 전,
아산병원의 그 병실이 떠올라서...
아버지
댓글목록
callgogo님의 댓글
父母死後悔(부모사후회),
내눈에 흙이 덮여야 소멸 될 듯.
항상 후회하며 삽니다.
어머니 돌아가신 날 부터 3일을 내내 울어서 주변에서 산송장 치루겠다고 염려를 했다는군요 저에게.
안희선 시인님의 회심으로 아버님께서 극락왕생 하시라라 믿습니다.
부모는 생전에 잘해 드려도 돌아가시면 늘 안타갑고 후회스럽고 보고싶지요.
가슴 뭉클한 시간입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 지는군요.
좋은 감동을 느끼게 한 안희선 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 꾸우뻑
안희선님의 댓글
생각하면, 나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
어쩌면, 하늘의 조물주보다 더 은혜로운 분
저 자신, 아이들을 키워가며 뒤늦게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오늘따라, 하늘나라에 계신 아빠
그리고 80 노모 할머니가 된, 엄마가 가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만사 제치고 빨랑, 귀국해야겠습니다
또, 다시 후회하기 전에...
머물러 주신, Callgogo 시인님,
감사합니다
면책특권님의 댓글
나보다 더 아픈 것을 보면
내는 그만큼 아파보지 못했음에
죄송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늘 용기를 주셔 감사합니다...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부모님에 관한 한,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아픔 가득한 죄인일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문학 (그 장르야 어떤 것이라도)의 경우에도,
부모보다 작가 자신을 앞세우는 경우가
없는 걸 보면..
귀한 걸음으로 머물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면책특권 시인님,
시앙보르님의 댓글
자식들은 불효라는 측면에서는 공범자죠.
특히 이미지 링겔 수액은 제게는 양날개입니다.
지겨웠던 어머니의 병실과, 아버님께 다하지 못한 효도를 어머님께 조금이라도 갚아드리자, 란
삿된 계산이 많이 힘들었지요.
초등학교 때 처음 대했던 어머니의 각혈은, 제 사고방식에서 한순간도 떠나지 않았지요.
어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이라 염려하던 어르신들은 거의 돌아가셨는데, 어머니는 올해 쌩쌩해서리
한숨 돌리는 중입니다. 형제들 모두 내색은 안하지만 비슷하겠지요.
그 어떤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불효자를 향해서는 용서와 이해와 포옹하리라 믿습니다.
우리 또한 하늘에 올라가면 그리하지 않을까요?
더군다나 안 시인님의 시편을 아버님이 기쁘게 대하실텐데, 더욱 그리하실 듯.
시의 한 기능이 '자신과의 화해'라고 볼 때, 저는 그 부분에서 많이 자유로워졌지요.
자신을 억압하지 않는 솔직함 속에서, 주변을 좀 더 제대로 바라보고, 그건 나와 주변의 화해로 이어지니까요.
부모님과 자식간, 가족, 형제들 간의 어떤 갈등에서든, 그리워한다는 것만으로도
치통같은 '아픔'은 지속될 수 없다는 면에서요...
안희선님의 댓글의 댓글
신문기자의 박한 봉급으로는 가족부양이 너무 힘드셨겠지요
대학 졸업 후, 언론사 취업을 한사코 반대하셨던 아버지
결국, 그때 당시 비교적 나은 직장으로 인식되던
은행에 들어 가는 것으로 (요즘은 그렇지도 않지만)
아버지와 절충(?)을 했었는데
그때의 서운했던 맘은 기억에 남습니다
- 왜?
은행원 생활은 적성에도 안 맞았고,
이건 내가 할 일은 아니야 라는 생각땜에 늘 갈등했던 시절을
돌이켜 보니..
작고하신 후에야, 그 모두 저를 걱정하셨던 맘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죠 - 저 자신 자식들을 키우며, 커가는 아이들을 지켜보며..
귀한 말씀으로 머물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시앙보르 시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