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7> 구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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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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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타 전 현관 거울 앞에서 바라보는 것은 옷 맵시와 구두코 뿐이었다.
어느 해부터 거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타인의 얼굴과 하루를 묵힌 생고기 굽는 냄새,
중지에 힘을 모아 수트에 엉겨붙은 먼지를 털고 삼천원에 시술한 불광을 부활시킨다.
콧대가 축 처진 구두, 어느새 새것에 대한 흥분은 사라지고 기대치는 점점 낮아졌다.
새 구두코에 대한 흥분과 기대는 곧 분리수거통에 버려질 헌 구두에 대한 애착만큼은 아니었다.
이 골목 저 골목 밤을 낮삼아 끌고 다니는 삶은 늘 허기진 목구멍에 굵은 씨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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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을 열자 고약한 구두약 냄새가 예민한 코 밑에 당도했다.
해를 더할수록 살갗에 찌든 냄새의 농도가 짙다.
외면받고 차츰 멀어지는 당신의 손과 그 손끝의 경계,
고집은 굳어버린 캥거루표 구두약처럼 억센 쇠심줄이 된다.
속 쓰린 하루가 길바닥에 봄동 겉저리로 버무려졌다.
무허가 시술도 아닌데 구석에 쪼그려 앉아
몇 마디 흔한 병증을 전하고 은밀한 거래는 성사되었다.
시시때때 심심찮게 오가는 책상 밑 흥정이었다.
악어처럼 째진 입을 꿰매고 벌어진 틈을 봉합했다.
금장 두른 전문의 면허를 내걸지 않았지만 그의 봉합술은
신의 경지에 올라 양말에 쥐오줌 번지 듯 다시 젖을 일 또한 없겠다.
***
성인식을 치룬 후 각인된 야릇한 향기,
캥거루 주머니가 열릴 때마다 코를 벌름거렸다.
책바퀴 돌리는 다람쥐로 환생한 운명,
축축히 땅 젖는 비요일, 헌 구두코가 천명을 다하는 날,
사지를 수선하고 온몸에 불광을 내며
산 밑 허연 연기속으로 사라질 것임을 직감했다.
나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불광속으로 화려하게 버려질 운명이란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글쓴이 : 박 정 우
댓글목록
이종원님의 댓글
버려질 운명을 끌고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뛰는 발자국소리가 점점 커져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닳아지는 것은 뼈와 삶과 닮았습니다
닳아진 뒤축, 그리고 헤진 가죽에 광을 입혀주려는 화자의 의지를 읽습니다
삶의 한부분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맺힙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박정우 시인님!!!
박정우님의 댓글의 댓글
이 세상에 태어나
쓸모가 있거나 혹은 없거나
언제고 불광속으로 버려질 운명,
우리네 삶 또한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빠르거나 혹은 더디거나
되돌아가는 뒷모습이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 이종원 시인님!
허영숙님의 댓글
아버지는 늘 구두를 반질반질 하게 닦으셨죠
구두가 반작거리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시더라구요
늘 거울앞에서 구두코를 닦아내는 아버지를
이 시를 읽으며 생각해봅니다
박정우님의 댓글의 댓글
반갑습니다. 허영숙 시인님
여태까지 발을 옥죄는 구두가 적응되지 않습니다.
출근을 해서 편한 신으로 바꿔는 신지만........
반질반질 윤 나는 구두는 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듭니다.
하루 하루가 윤슬하는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