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9】소녀상
페이지 정보
작성자본문

少女像
나는 소녀입니다.
저물녘 지게 뒤를 흰 치마 나풀거리며 따라가는,
엄동에도 시냇가 나가 살얼음 걷고 빨랫감 쓱쓱 비비던 소녀입니다.
담 너머 아저씨도 환해 보이던 소녀입니다.
이웃 마을 작은 머슴도 좋아 보이던 소녀입니다.
흙마루에 앉아 빗방울로 해넘이 그리던 소녀입니다.
우물 두레박 내리다 물동이 이고 집으로 돌아올 때
산마루 걸린 달물 휘저어보던 바로 그 소녀입니다.
까마귀떼 날고 천둥 번개 치고
우렛소리 대추나무 부러뜨려도
열너덧 소녀입니다.
별안간 소녀입니다. 장갑차가 발목을 으깨고
더러운 문뱃내 끼얹고 백설을 샅샅이 파먹는 눈알 없는 짐승들이 우글거릴 때도
눈앞에 절벽만 두고 숨 쉰 소녀입니다.
비루먹은 개들도 비웃던 찌그러진 소녀입니다.
시궁쥐들이 핥아먹을 때에도 나는 빛나는 소녀입니다.
육탈한 해골에 바퀴벌레 슬어도 나는 오로지 소녀입니다.
몸서리치게 소녀입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와 동구 밖 느티나무와 눈밭을 뒹굴던 삽살개와 할배와 할머니와 어린 동생이 오빠가 그리운, 그리운 엄...니와 아버,...지,
너무 멀리 있는 소녀입니다.
총알이 육신을 뚫고 총검이 머리통 베어내고
하이에나 뜯어 먹고 늙은 사자가 피 묻은 입을 핥아도
겨우 살아 꿈틀거리는 소녀입니다.
아무리 벗어던져도 소녀입니다.
아무리 짓밟아도 소녀입니다.
모진 세월 할퀴고 죽여도 소녀입니다.
죽어서도 소녀입니다.
묵시로
항거로
청동으로
오래도록 썩지 않을 청초한 소녀입니다.
우리는 기어코 소녀입니다.
댓글목록
고현로님의 댓글
잘 쓴다라고 쓰고 멋지다라고 읽는다.
라고 발자국 남기고 갑니다. 총총
무의(無疑)님의 댓글
제가 활연님한테는 ^^ 이런 표시 가급적 삼가는데....
^^ 갈매기 마구 마구 날아갑니다.
역쉬!
담배 세 개피를 작살내든 한 갑을 태워버리든
출발이 다르면 귀결도 다르네요.
꼼수가 부끄 부끄 ㅡ,ㅡ
활연님의 댓글
연애는 몸으로 하고 글쓰면 안되겠다 싶어 내렸습니다.
그냥 달린 글인데,
밤새도록 매만진 건 죽여버리고, 문득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동피랑 보러 갈랍니다. 안녕히 숙고,
수고하.
라니요. 그냥 즐거운 오후, 저녁, 밤 되십시오.
1등 상: 눈썰매 끄는 견 여러 마리
2등 상: 담배 한 보루
이하 없음.
시상. 오천 년 후.
수련향기님의 댓글
부럽고 부끄럽고....
감사하고 선망하고 싶은!....
아픔을 아프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선명한,...
정직하게 심장이 저릿한 시 입니다....
활연님의 댓글
바람난 애인이 돌아온 것인 양 반갑네요.
시를 들고 오면 사람에 대해 관심이 참 많지요.
그게 사이버 생리 아닐까, 안 보이니까 환상을 갖는데
그냥 사람인데.
잘 쓰니까 궁금해진다는 생각.
그 미모 여전하시지요.
짐작컨데 같이 늙어가는 처지일 것이라는..그래도
여기 할배들 기절할 것인데, 시만 쓰윽 내밀면 된다는 생각.
수련향기는 감추시고, ㅋ
저는 직방으로 쓰는 거 별로 좋아하는데 별로,
다 담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앞서 달려서.
필총.
오영록님의 댓글
모진 세월 할퀴고 죽여도 소녀입니다.
죽어서도 소녀입니다.
청동으로
항거로
묵시로
오래도록 썩지 않을 청초한 소녀입니다.
우리는 기어코 소녀입니다.// 날이가 차네요..
두엄내다가 왔어요.. ㅋㅋ
노래로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이 부끄러운 역사~~~
시인이니까요~~
꾸부덩// 군불넣으러 갑니다.
활연님의 댓글
아바타는 두고 진짜 청년이 오시었네요.
강원도는 내가 다 책임진다, 그러시면 등골 휑해집니다.
노작노작 노닥노닥 경영하십시오.
비탈을 평지로 만드시는 분.
몇 자 고치는 중 오시었네요. 너무 단박에 쓴 것이라 수리하고 있어요.
주말 걍, 강원도나 갈까.
남해도 좋고. 시 군불 활활 잉걸불 뜨겁뜨겁.
형은 참 귀여운(무엄하게) 데가 많아요.
솔직히는 쓰면서 울었어요 ㅠ
오영록님의 댓글의 댓글
님아~~ 이 시에 눈물 아니 흘릴 사람 어디있겠나여~~
말로만 타협이니 소녀상이니 했지
이리 뜨거운 글 한줄 제대로 쓴이 어디 었었나~~
철철 피가 넘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저는 근자 누가 보든 말든
그저 스스로 자위하며 씁니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같은 가짜일지 모르지만
님아~~
눈꺼풀 벗어진 사람이라면 다~~ 님을 보고 있을 거외다~~
에구구 뭔 영감같은 소리~~
그래도 사랑한다는 말은 놓고가야지요..
사람합니다.~~많이
무의(無疑)님의 댓글
의자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피해자의 빈 자리, 머리카락은 거친 전쟁과 억압을 상징, 가족 및 고향과의 단절을 표현한다. 특히 댕기머리가 아닌 단발머리인 이유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고국을 떠났던 소녀들의 결심을 뜻한다.
어깨 위의 작은 새는 자유와 평화의 상징, 세상을 떠난 피해자들과 남아있는 이들의 연결고리, 주먹은 일본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내겠다는 의지, 맨 발꿈치는 '내 나라에서조차 온전히 발 붙이지 못했다.' 한국정부에 대한 서운함, 그림자는 소녀가 할머니로 변할 때까지 풀리지 않은 한과 가슴앓이, 하얀 나비는 부디 나비로 환생해 한을 풀길 바라는 염원이 나타나있다.
처출 - 리일데아리코
윤희승님의 댓글
내려주신 시에 울컥 감동하고 갑니다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쓰다 보니 좀 그렇게 되었습니다.
활연님의 댓글
꽃 핀 편도나무, 지하 13구역의 여름
박상순
나의 지나는 생각한다. 내가 뛰어가는 모습을
느릿느릿 걷다가 나는, 뛰기 시작한다.
- 맨발의 여름 하늘이 산맥을 넘는다.
나의 지나는 생각한다. 내가 그녀의 침실에서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모습을,
죽어가는 내 어깨에서 솟아난
작은 날개가 퍼덕이는 모습을,
- 늙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맨발의 하늘을
지하로 밀고 내려온다.
나의 지나는 생각한다. 내가 죽어서, 뛰어가는,
모습을, 내 작은 날개가, 퍼덕이는, 모습을.
- 무대위의 콘트라베이스는
고개숙인 나의 지나가 침묵하는 모습을
기나긴 여름 산맥처럼 오랫동안 연주한다.
나는 생각한다. 나의 지나가 뛰어가는 모습을
느릿느릿 걷다가 맨발의 여름 하늘 위로
달려가는 모습을.
지하 13구역의 여름, 한 여자가 생각하고
한 남자가 행동하고, 한 남자가 생각하고
한 여자가 침묵하고, 한 여자가 생각하고
한 남자가 말하고, 한 여자가 생각하고
한 남자가 돌아서고, 한 여자가 생각하고
- 맨발의 여름 하늘이 꽃 피는 산맥을 밀고
지하로 내려온다
계간 '시와 사상' 2009년 여름호
활연님의 댓글
철새의 장례식
문혜진
타인의 육즙을 달여 해탈한 사람들은
섹스 후 폭풍처럼 울지
타인의 체액에서 여과된
진짜 자기 냄새를 찾고
날갯죽지에 얼굴을 묻은 채
그 냄새에 한번 더 울지
일생을 내륙과 바다 위를 오고가는 철새들
대륙이 갈라지기 전
그 바다 위를 찾아
원을 그리며 흥분하다
마지막 순간 바다로 달려든다지
바다의 이력과 대지의 시선
흙 속 광물의 세계에서 끌어올린 벼랑 끝
암흑 속에서 빛의 수면으로 떠오르기까지
물길을 가르고 스며들어
날개에 흐르는
청동과 무쇠의 잠재성을,
새들이 마지막에 도달하는
바다를 이해할 수 있지
두 발 짐승만이
죽는 순간 혼자이기 싫어
전생을 통틀어 재의 도서관*을 짓지
그들의 몸은 얼음호수에 불시착한
비행기 동체 같았어
빛의 식민지에서 지상의 광합성을 끝내는 시간
화성 북극 하얀 얼음 모자를 쓰고
비밀의 불길 속으로
시간의 정수리에 도끼자루를 던지지
철새의 역사는 기록이 없는 역사,
더 가벼워 지려 하지 않고
가까운 해안을 묻지 않지
거북껍질 돼지의 발
들소 꼬리 표범 골반 뼈
물수리 날개
나투프 샤먼의 유골이 묻힌
돌무덤을 지나
걷기와 달리기로 다다를 수 없는
해안을 향해
무저항의 깃털들이 눈꽃으로 쏟아지면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땅위의 신탁들이 무너져 내리지
이름 없는 자들의 무덤과
세계의 고통 위를 날다
그들만의 북극항로를 따라
거대한 땅덩이가 쪼개지기 전
가장 시린 바다 한 가운데 덜커덕,
잿빛 새떼가 날 선 파도에 뇌관을 꽂는다
* 미술가 레베카 호른의 글에서 인용.
계간 "문학동네" 2008년 가을호
고현로님의 댓글
동피랑님 만나시면 안부 좀 전해주세요.
제가 존경하는 1등은 활연님 2등은 동피랑님이지만
동피랑님에게는 1등이 동피랑님 2등이 활연님이라고
고현로가 그러더라고 전해주시죠.
순서 바꾸지 마시고요.
그럼 안전 운행하십시오.ㅋ~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둘이 아무 약속도 안 했어요, 그냥 지나치다가 입술만 살짝 만져보려고요.
혹 뵙게 되면 전해드릴게요. 동피랑은 고현로 매지구름 뚫고
늘 창턱으로 오는 햇살이다, 뭐 그런 식. 그리고 무척 좌파적이다!도
그냥 며칠 떠돌고 싶어졌어요. 시가 안 보이는 곳으로 ㅎ,ㅎ
김영선님의 댓글의 댓글
좋겠다요~
부럽다요~~
체스님의 댓글
와 감동이네요.
글에 취합니다.
읽는 재미를 주어서 감사합니다. 꾸벅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신춘 한 분이 여기 놀면 '앙' 되는데.
명우 형은 그 선한 모습 그대로요. 참 오래전 뵈었지요.
진정성으로 치자면 국제 당선작이 장원임.
거기 가서 사자후 부탁, 아임 사슴후, 아님
그냥 兄 式대로.
활연님의 댓글
날아라, 닭
박일환
누가 냅다 걷어찰 때만
푸드득 날갯짓 시늉을 하는
저 닭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진화는 퇴행의 과정이기도 하다는 걸
하여 바람을 피운다고
닭날개를 먹지 못하게 하는 속신俗信 따위
믿을 바가 못 되지만
날아라, 닭
날아라, 닭
정작 날아볼 꿈조차 꾸지 않는 자들이
애꿎은 가금家禽만 놀려대는 가학성에 대해
나는 오늘 슬퍼지는 것인가
세월은 그냥 흘러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어서
화석처럼 때로는 몽고반점처럼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법인데
저 닭들은 지금
기억은 하고 있는 걸까
그 옛날 화려했던 시절을 꿈속에서나마
만나고는 있는 걸까
생각하면
우리 모두 빛나던 한 시설이 있었거니
푸르른 청춘의 날들은 가고
퇴행성관절염이나 걱정하는
무리들에 섞여 바쁘게 흘러가다
날아라, 닭
날아라, 닭
우리들 또한 누군가에게 냅다 걷어차인다면
그제서야 소스라칠 것인가
지상의 삶은 여전히 소란하고
날갯죽지 가려운 날들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웹진 "시인광장" 2009년 봄호
* 아인북스에서 펴낸 책에선 제목이 "낡아라, 닭"으로 되어 있다. 시집, "지는 싸움"(애지)엔 "날아라, 닭"으로 되어 고친다.
활연님의 댓글
레슬러 잭의 은퇴 선언
박장호
나는 죽음을 탐미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는 게 지겨울 뿐이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단지 진실을 말할 수 없을 뿐이다. 레슬링은 쇼다. 당신들은 알고 있다. 당신들은 내가 얻어터지는 것을 동정하지 않는다. 환호한다. 모든 경기가 각본 있는 드라마다. 각본 없는 예상 밖의 경기는 당신들을 지루하게 할 뿐이다.
오늘의 드라마에 대해서 말해 줄까? 나는 오늘 26피트 높이의 철창에서 링 바닥을 뚫고 패대기쳐지기로 되어 있다. 구사일생으로 링에 올라와서 상대 선수의 필살기를 맞고 바닥에 뿌려진 수백 개의 압정 위에 얼굴이 처박히기로 되어 있다. 일명 데드매치. 즉 죽음의 경기. 재미있지 않은가? 죽음의 각본이란.
상대 선수의 손이 올라가고 경기가 끝나면 나는 들것에 실려 나갈 것이다. 나는 안다. 당신들은 다 죽어 가는 나의 패배에 더 열광한다는 거. 다음 경기에서 더 처절하게 죽어 가는 내 연기를 기대한다는 거.
모든 게 각본이지만 위험은 진실이다. 절반이나 씹어버린 내 혀와 부러진 앞니, 마모된 양쪽 귀, 진단서 없는 골병이 내 진실의 이력이다. 부상은 당신들을 위한 적절한 배반이다. 예기치 못한 부상은 각본을 위장한다. 당신들은 내 연기의 리얼함에 감동하겠지만 나는 오늘 내장이 파열될 수도 있고 눈알이 깨질 수도 있다.
모든 경기가 각본이지만 나는 각본대로 사는 게 싫어서 각본을 가끔씩 배반하는 데드매치를 한다. 15년의 경력. 매번 죽기 직전까지만 얻어 터졌다. 부상 입는 장면에서 어김없이 터지는 당신들의 환호성. 진실은 거짓의 내출혈일 뿐. 내 러시아 친구 빅토르는 말했다. 거짓을 말하기는 싫어. 하지만 이젠 진실도 지겨워. 그는 진짜로 실려 나갔다. 오직 죽은 자들만 링 밖으로 실려 나갈 수 있다. 반창고를 마시고 활명수를 붙여왔던 내 뒤틀린 인생. 오늘은 진짜 데드매치를 하고 싶다. 이젠 레슬링도 지겹다.
시집 「나는 맛있다」(랜덤하우스, 2008)
손성태님의 댓글
잘 감상합니다. 활연 시인님.
역사에 물든 때 묻은 옷을 훌렁훌렁 벗어 던지면 그야말로 '소녀'입니다. 티 없는 맑디맑은 '소녀'입니다.
고통의 지난 삶을 배경으로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동피랑으로 훌쩍 떠나는 자유가 부러운 이유는 영혼이 젊지않아서 입니다.
젊은 영혼을 화두 삼아 새해를 시작하렵니다.
잘 다녀 오세요.^^ 안부도 전해 주시구요.^^*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저 아직 시인 아닌데요.
동피랑 아래 있는데요. 직접 말씀한 것처럼 읽겠군요.
저 막 살아요 ㅋ, 건강하세요.
새해 별무리 가득한 날 되시고요.
동피랑님의 댓글
저 이미지 보고 소녀상과 바로 직결 못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정신상태에 곰팡이가 피었나 봅니다. 눈으로 읽을 수 없는, 가슴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청동에서 피가 뚝뚝 흐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활이 날아 와도 막을 방패 하나 없어 즐거운 모순!
오히려 환영하는 뜻에서 관공서마다 국기를 게양하고 시내에 만국기가 나부낄 것입니다.
미처 준비 부족으로 우선 주유소들만 펄럭거림을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마음으로 바다와 동피랑을 저려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내가 선전포고 하니까 겁나쥬, 이 양반이 허가도 읎씨 입국하려 하나,
통영이 그리 만만한 밀항지야 뭐야, 안 봐, 하실 듯.
저녁 무렵이거나 암때나 바닷가에서 차 한잔 해요. 뭐 그리 요란, 싫어요.
5분 얼굴 보면 떠날 거임. 그냥 겨울이 어케 생겼나 보려고요.
시로여는세상님의 댓글
제가 좋아하는 말이 있죠..쟁이.
활연님은 온 몸으로 쟁이십니다.
글쟁이...
시마을의 백미입니다.
가슴에 뜨건 피 한 바가지 담고 갑니다. ㅡ눈팅쟁이ㅡ
글터님의 댓글
적국이 알아주지 않는, 적국이 도리어 비아냥거리는, 소녀의 삶에 천국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