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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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연 奇緣
한 번도 가진 적 없는 상자를 한 번도 가진 적 없는 구슬을 한 번도 자본 적 없는 여자를 사랑한다는 말의 기체는 충분하다
밀폐된 차 안에서 성에 낀 창을 닦으며 바깥을 내다보았을 때 비가 내리는 밤이었고 구석은 떨고 있었다 떨림도 한때 격정이고 울음이기도 한 것이어서
죽기 전에 완성되는 말은 없다 죽고 나서 자신이 긁어놓은 어린체 글씨를 읽으며 킥킥, 웃으며 손가락에 침 묻힐 수 있을까 한 번도 속곳을 끌어내린 적 없는 여자의 속을 사랑했다면 그 여자의 눈동자 빛살 같은 홍채에 홀린 거다 눈동자를 빠져나오는데 백 년 올벼처럼 빨리 익고 발목 잘린 볏단이 가을볕 아래 서 있듯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뒷골목에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과 한마디도 통하지 않는 각자 방언을 침 묻혀 귓속으로 떠넣어 줄 때 견딜 수 없는 가려움이 우렁우렁 귓밥을 게워냈을지
한 번도 싸움을 걸어본 적 없는 저녁의 멱살을 잡고 압력밥솥이 마침내 과열을 뿜어내듯 오래전 다른 사람의 목에 걸어둔 넥타이를 오래전 다른 사람의 차표에 찍어둔 지문을 가져오고 싶다는 오래전이라는 가벼운 망각을 생각한다는 액체는 충분하다
왠지 인간은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뽕짝에 자신도 모르는 어떤 항구로 흐르는 강을 발원하고 젓가락을 쳐들고 목청을 높이는 종족이란 생각을 한 적 있다 귀항이 먼 배에서 하염없이 울렁거리던 그들의 리듬을 사랑한다는 건 일종의 멀미 한 번도 입술을 빨아본 적 없는 타자의 앵두 하이힐에 간신히 실려가는 계단
한 번도 솔직한 말에 싸움을 걸러본 적 없는 한 번도 솔직히 고백해본 적 없는 시끄러운 바닷가에서 우우우우 늑대처럼 짖고 있을 고체는 충분하다
* 인트로가 좀 길긴 한데 넋 놓고 보시다가, 뭐야 싶으면
여기저기 버튼을 누르시면 아주 센티멘탈+멜랑콜리 등을 들을 수 있읍니다. 아주 초보일 적, 지금도 그렇지만... 재주를 피우던 것들인데, 그것도 헛헛한 추억일 것입니다. 이 쇼는 며칠만 상영하다, 전문 영상시방으로... 시가 뭔지는 모르겠으나 더러 소리와 놀리도 한다, 혜량하옵시기를...댓글 생존권은 보장할 수 없으므로 그냥 한밤의 푸닥거리. (이 글들을 쓸 때 필명은 切苾인가, 절필(그만쓰자)인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약간 낭송 파일을 수정함.)
달걀버튼은 위(텍스트있음)를, 무지개버튼은 아래쪽(소리만)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낭송: 고은아
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청동기의 아침
고성만
가늘게 등불 흔들리는 집
흐린 거울 속에서 나는 낮은 울음소리를 낸다
밤새 나락을 지고 와 노적가리를 쌓는 아버지 우물가 장독대 심지어 댓살문까지 정교한 꽃 장식을 하는 어머니
나는 또 삼촌의 첫날밤을 보내던 방 돌아가신 할머니가 똥을 싸놓고는 호랭이 호랭이 아이고 무서라 기어들어가던 아궁이 백제 후백제 고려를 지나 임진년 동학 난리 빨치산을 거치는 동안에도 줄곧 집터였을 자리 빗살무늬 강물처럼 흘러가는 어둠을 그리워한다
커다란 거푸집 같은 세상
희붐한 창문마다 햇솜 쌓이면 숫눈길 짚어 물 길으러 간 아버지 타드락타드락 불 지피던 어머니 허리 아래가 따끈한 아랫목에서 한숨 더 자야겠다고 생각한다
더디 찾아오는 아침
그 안에 나는 없는지
맑게 씻긴 청동거울을 들여다본다
`
수련향기님의 댓글
뼈 속까지 시인이라는 말,
있지요! 모든 몸짓이 다 시로 이루어 진 듯한....
시 한편 만들어내는 것이 힘들게 느껴지는 저로서는
정말 부러운 부분입니다.
향기로운 시편들,
고맙습니다. 활연님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오래전을 소환하는 건 우선 부끄러움이지요.
이럴 때도 있었다?, 그때는 감성적이었다?, 그런데 감성이든 감각이든
내가 밟고 온 것들이고 또 초라한 흔적일 것입니다.
아직 시에 눈 뜨지 못했지만, 소위 추억을 불러보면 그 속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리얼이 없으면 공허하다, 그런 생각도 들지만.
과거의 센티멘탈을 다 부정하고 버릴 수는 없겠지요.
미문이나, 하소연이 시가 되는 경우는 드물지만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듯이 그런 밤과 그런 바닷가가 있었던 셈이지요. 자주
감정의 과잉을 부정하지만, 한때 노래다, 그리고 지금도 유효한
내 부끄러운 감성이다. 부끄러워도 할 수 없겠지요.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좋아지려 노력하는 것.
시인들도 시집을 내고 나면 그 순간부터, 치욕을 견디는 것일 것입니다.
언어는 아무래도 액체이거나 기체 상태여서, 단단함이 없지요.
나는 아직 무엇이든 고형이 되려면 멀었다, 노닥노닥 놀면서 도달하자,
그 끝이 없다면, 잘 놀았다!, 하면 될 것을.. 이러고 산답니다.
내가 아는 문청일 것이다, 어제는 짐작하기도 했는데 사실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글 지문을 다시 들추어보고, 누구실까 했는데 모르겠더군요.
그것은 시를 잘 쓰시는 분에 대한 관심일 것입니다.
사실 저도 사이버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그 정체성은 나중에
드러나지요.
사이버 공간이지만, 좋은 시로 자주 봬요.
고맙습니다.
수련향기님의 댓글
감성이나 감각, 센티멘탈 ,
그런것들이 시의 본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모든것이 기체나 액체상태에서 시작되는 거 아닐까요,
시라는 세계도 무형의 단계를 거쳐 자신의 혼이 담긴 형태를 이루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제게 시 세계는 질퍽한 늪과 같은 것이었지요
손에 잡히는것도 눈에 보이는것도 없으면서
한 쪽 발이 덥석 물리더니 서서히 빨려들어가서
이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상태라고 할까요!
결국은 "시야 놀자" 입니다
그것도 썩 괜찮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잘 놀고 있습니다. 활연님을 비롯한 참 좋은 시인님들 계시는 시마을에서....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기저에 감정이 없다면 그냥 표기일 뿐이겠지요. 아무렴 나무도 감정이 있는데,
그런데 울먹이는 감정이냐, 감정이 독자에게 발생하도록 배려한 감각이냐는 고민일 것입니다.
시가 상당히 층위를 높여서 독자가 외면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너무나 범람하는 서정들에서 옥석을 가리기도 참 그렇지요.
아무튼 시인으로서 생존권을 가지려면 독특한 개성이거나, 내밀한 자기 세계를 내비치는
것일 것입니다. 결국 감각이 감성을 부활시킨다,
결국 시니피앙(소리의면)이 호소하는 것이 시니피에(의미의면)의 귀에게
아름답게 전달된다면, (그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이고) 그 시는 존재한다 생각은 합니다.
우리가 활자를 통해 위로 받는 것은
지적인 유희가 맞을 것인데, 그것이 감동을 통해 생성된다는 다이돌핀(didorphin)
같은 호르몬을 생성해서 유희가 감동 수준까지 가려면 시는 부단히
진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 참 어렵습니다, 저는 그 희미한 발가락이라도
보이면 온 동네방네 들고 다니며, 이마에 벼슬 하나 새겨달라 외칠 것입니다.
그냥, 앞뒤없는 생각 늘어놓았습니다.
상쾌한 하루 지으십시오.
성영희.님의 댓글
한 번도,
끈끈한 이끌림도 별 매력도 톡 쏘는 맛도 없는
밋밋한 세 글자를 앞에 붙여
이리도 찌릿한 문장들을 펼쳐 놓다니...
역시 활표 선상님^^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영희야 노올자, 나 철수임'
좋은 하루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