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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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마리
멍하니 앉아 있다가, 옆에 묶어두었던 시집 한 페이지에서
갸르릉 거리는 거친 소리 듣는다
날 닮은 짐승이 詩눈에 광기를 발하면서
세상의 詩을 모조리 소화시켜 버리려고 이빨을 가는 중이다
짧으면서도 긴 시심의 목줄을 들고 조심스럽게 시집의 대문을 연다
눈과 눈빛이 마주친다
오랫동안 허기진 시의 위장은 어떤 생각 어떤 기분으로
날 먹어치우려 벌렁이고 있을까
살며시 쓰다듬어본다
까칠까칠한 시어는 가시처럼 손끝 파고드는데
흘러나오는 피는 스며들지 못하고
휴지에 묻어 감각을 상실하고 있었다
용기내어 목줄 채우고 시의 거리로 나선다
여기저기에서 으르르렁 거리는 소리
내가 데리고 가는 이 짐승은 어린 시 한 마리였다
언제 성숙시켜 맛있는 시 밥을 먹여 달래보나
힘들어서 이젠 그만 풀어줄까 생각하다
지금까지 공들인 시간이 아까워
다시 쓰다듬어 본다. 키우는 미련보다
한 마리의 짐승으로 인정하고 같이 동반하기로 한다
나도 따라서 갸르릉 가르릉
댓글목록
金富會님의 댓글
비유가 돋보이는 수작입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공들인 시간이 아까워.....저도 그렇습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