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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뉘'라는 말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5건 조회 1,575회 작성일 15-11-19 00:21

본문

    '볕뉘'라는 말                   





    박주가리 터뜨린다
    꽃자지 멀리멀리 날아간다
    젖꽃판 받쳐 들고
    저녁 하늘로 날아간다


    떴다떴다비행기날아라날아라높이높이날아라


                  *

    척추 휜 방이
    아파요
    목젖이 끓어올라 가라앉지 않아요
    쌀 몇 톨과 김은 있어요

    데면데면 흘러 뒤꼍에 쌓인 시간을 켜며 전화가 온다
    예닐곱이 스물아홉 겨울을 밀며 불어온다

    혼자 웅크린 
    퉁퉁 부은 눈시울 데려와 오붓이
    살자 엄마도 버렸는데
    병든 날 거둬주신다고요? 진심이세요.
    진심이세요.

            *

    가을하늘공활한데높고구름없이

    노을빛 물든 뺨 부풀려 박주가리 깃털 분다
    너른 하늘 가장자리
    꽃풍선 번진다, 

    번진다 이윽고 야윈 등에 닿는

    '볕뉘'라는 말


    가슴 안쪽에 등불을 켜고
    밤새 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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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달마의 뒤란

  김태정




어느 표류하는 영혼이
내생을 꿈꾸는 자궁을 찾아들듯
떠도는 마음이 찾아든 곳은
해남군 송지하고도 달마산 아래

장춘이라는 지명이 그닥 낯설지 않은 것은
간장 된장이 우리 살아온 내력처럼 익어가는
윤씨 할머니댁 푸근한 뒤란 때문이리라

여덟 남매의 탯줄을 잘랐다는 방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모처럼 나는
피곤한 몸을 부린다
할머니와 밥상을 마주하는 저녁은 길고 따뜻해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개밥바라기별이 떴으니
누렁개도 밥 한술 줘야지 뒤란을 돈다
맑은 간장빛 같은 어둠에
나는 가만가만 장독소래기를 덮는다
느리고 나지막한 할머니의
말맛을 닮은 간장 된장들은 밤 사이
또 그만큼 맛이 익어가겠지

여덟 남매를 낳으셨다는 할머니
애기집만큼 헐거워진 뒤란에서
태아처럼
바깥세상을 꿈꾸는 태아처럼 웅크려 앉아
시간도 마음도 놓아버리고 웅크려 앉아
차랍차랍 누렁이 밥 먹는 소릴 듣는

해남하고도 송지면 달마산 아래
늙고 헐거워져 편안한 윤씨댁 뒤란은
이 세상이 이 세상 같지 않고
오늘밤이 오늘밤 같지 않고
어제가 어제 같지 않고
내일이 내일 같지 않고 다만

개밥바라기별이 뜨고
간장 된장이 익어가고
누렁이 밥 먹는 소리
천지에 꽉 들어차고



`

안희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 <볕뉘>라는 말..

참 오랜만에 접하네요

우리 고유의 고운 말들이 참 많은데요

요즘은 영어 못하면 사람 취급도 않는.
혀 꼬부라진 괴이한 시대라서
우리 말은 점점 촌닭이 되어갑니다

- 아, 그 어떤 닭이 시도 때도 없이 꼬꼬댁
소리를 내질러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요


암튼, 잊혀가는 우리말을 발굴해서
시로써 일깨워 주는 일

이 시대의 시인들이 담지한
사명이기도 합니다

잔뜩 그늘진 이 세상에
잠시 비치는 햇볕 같은 시입니다

" 노을빛 물든 뺨 부풀려 박주가리 깃털 분다
너른 하늘 가장자리 꽃풍선 번진다,

번진다 이윽고 야윈 등에 닿는

'볕뉘'라는 말

가슴 안쪽에 등불을 켜고
 밤새 운다는 뜻이다 "


살아가며, 따뜻한 걸 지켜내야 할
이 시대의 지순한 命題 앞에
誠을 다하는 시인의 마음이
잘 그려진 느낌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필하시길요

쇄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쇄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제 눈까지 침침하네요.
별뉘로 읽었습니다. 검색도 했네요

생을 통틀어 음지 아닌 적
언제였나 싶습니다. 그래도
잠시잠깐 볕을 쪼이면
'가슴 한 쪽 등불'이 길잡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늘 그렇지만 '긴 호흡' 많이 부럽습니다. 저는 이제
캡쳐 기능만 남은 것 같습니다.

챙기시고요, 건강
그래야
곧 뵙지요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건 리얼스토리지요.
오갈 데 없어진 청춘을 '그렇다면 같이 살지 뭐'
흔쾌히 집으로 들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그런 사람이 있답니다.
더불어 사는 게, 그저 그럴듯한 관념이 아니고
생활이고 배려라면 이 팍팍한 세상도 견딜 만하다.
고시원 한두 평에 깃든 막막한 미래, 아픈 몸을
껴안고 등 두드려 주며 살겠다, 이런 마음이 참 아름답게 느껴지더군요.
살다 보면 우여곡절도 많겠지만,
무조건 절망하라는 법은 없나 봅니다. 세상 어두운 쪽으로
등불을 켜고
마음 한 자리 내어주고 환히 사는 모습을 응원합니다.
세 분 고맙습니다.

고현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고현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동안 너무 깊은 은유에 단련이 됐는지 쉬이 슬슬 읽히는 것은.....
저와 같은 무지렁이 독자를 배려하시는건지, 잠시 약 올리시는 건지...ㅎㅎ
읽고 또 읽어도 새로운 맛.
정말 닮고 싶습니다.

마른 연필하라던 말씀에 박장대소 했던
-시마을신입생 올림-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고스트 라이터

  기혁



퇴고하지 않은 저녁이 온다

비문 속 아내는 새들의 귀를 잘라
밥 무덤을 만든다

오체투지(五體投地)하는 삶의 감각을 환상통이라고 부른 이래,
쓰지 않은 연필심이 닳아 버릴 때도 있었다

허구와 병듦, 수식 없는 문장을 쓸 때마다
신열이 올랐지만

나의 전기엔 인칭을 붙여 줄 생애가 없었다

소설의 유의어가 소설책이라고 적힌 사전을 펼쳐 놓고
체위라는 단어가 얼마나 길고 쓸쓸한 속내인지 헤아려본 일,

산 사람의 영혼을 말하기 위해
죽은 시인만을 참고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한낮의 맹목에도 숨은 귀신을 훤히 깨닫던 점쟁이는
타인의 서두(序頭)를 밥줄처럼 감췄는데

밤새워 촛불을 밝히던 하숙집에 가면
외풍을 사랑하게 된다는 원작자의 엄살도

가끔은 제 살처럼 만져지는 감정을 불러다 준다

그런 감정을 무릎이라고 부르던 날,
나의 슬하도 직각에 가까운 안심을 느낀다
으깨진 무릎은 보이지 않아도 접을 수 있는 것

문턱에 걸린 멍 자국보다 촌스럽게
책장 너머에도 얼룩이 밴다

나는 다시 소리 없이 걸어가야 하고
퇴고를 마친 저녁을 각본의 사인(死因)이라 부른다



|||**|||

요즘은 우리말을 경이롭게 하는 문청들이 많지요. 나같이 순챗국 같은 자는,
시를 좋아할 뿐이다, 그러므로 뭔가 훔쳐갈 것도 없다가 맞는 말.
가끔, 뭔가가 준동해서 끄적거리지만,
숲도 들도 되지 못하지요. 그냥 노닥거릴 뿐이다. 그래서 내가 나를
잘 알고 있는 셈.
늘 개안하고 괄목하십시오.
시마을 퇴물 올림

최정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최정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에궁...오늘 날씨처럼 gloomy 하네요...詩님이...
걸물의 지뢰밭을 걷습니다
달마의 뒤란/ 훔쳐 갑니다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태정


    김사인



    1

  울 밑의 봄동이나 겨울 갓들에게도 이제 그만 자라라고 전해주세요.
  기둥이며 서까래들도 그렇게 너무 뻣뻣하게 서 있지 않아도 돼요, 좀 구부정하세요.
  쪽마루도 그래요, 잠시 내려놓고 쉬세요.
  천장의 쥐들도 대거리할 사람 없다고 너무 외로워 마세요.
  자라는 이빨이 성가시겠지만 어쩌겠어요.
  살 부러진 검정 우산에게도 이제 걱정 말고 편히 쉬라고
  귀 어두운 옆집 할머니와 잘 지내라고 전해주세요.
  더는 널어 말릴 양말도 속옷 빨래도 없으니 늦여름 햇살들은 고추 말리는 데나 거들어드리세요.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미황사 앞.


    2

  죽는다는 일은 도대체 무슨 일인가요. 그래서 어쩌란 일인가요.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안 보이는 깔때기가 있어
  그리로 내 영혼은 빨려나가는 걸까요. 아니면
  미닫이를 탁 닫듯이 몸을 털썩 벗고 영혼은
  건너방으로 드는 걸까요.

  아이들에게 말해주세요
  마당에서 굴렁쇠도 그만 좀 돌리라고
  어지럽다고.


    3

  슬픔 너머로 다시 쓸쓸한
  솔직히 말해 미인은 아닌
  한없이 처량한 그림자 덮어쓰고 사람 드문 뒷길로만 피하듯 다닌
  소설 공부 다니는 구로동 아무개네 젖먹이를 맡아 봐주던
  순한 서울 여자 서울 가난뱅이
  나지막한 언덕 강아지풀 꽃다지의 순한 풀밭.
  응 나도 남자하고 자봤어, 하던
  그 말 너무 선선하고 환해서
  자는 게 뭔지 알기나 하는지 되레 못 미덥던
  눈길 피하며 모자란 사람처럼 웃기나 잘하던
  살림 솜씨도 음식 솜씨도 별로 없던

  태정 태정 슬픈 태정
  망초꽃처럼 말갛던 태정.


    4

  할머니 할아버지들 곁에서 겁 많은 귀뚜라미처럼 살았을 것이다.
  길고 느린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을 마루 끝에 앉아 지켜보았을 것이다.
  한달에 오만원도 안 쓰고 지냈을 것이다.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이,
  시를 써 장에 내는 일도 부질없어
  조금만 먹고 거북이처럼 조금만 숨 쉬었을 것이다.
  얼찐거리다 가는 동네 개들을 무심히 내다보며
  그 바닥 초본식물처럼 엎드려 살다 갔을 것이다.

  더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그 집 헐은 장독간과 경첩 망가진 부엌문에게 고장난 기름보일러에게
  이제라도 가만히 조문해야 한다.
  새삼 슬픈 시늉을 하지는 않겠다.



  * 김태정은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나 2011년 9월 6일 해남에서 세상을 떠났다.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을 남겼다. 생전에 모 문화재단에서 오백만원을 지원하려 하자, 쓸데가 없노라고 한사코 받지 않았다. 그의 넋은 미황사가 거두어주었다.

톰소여님의 댓글

profile_image 톰소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조그만 빛이라도 나누면 더 환한 이치를 생각합니다.
박주가리 그윽한 향 맡고 갑니다. 여전하시네요. 꾸벅.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올만에 오셨네요. 수능도 끝나고 겨울엔 따순 시 마이 들고 오셈.
여전히 저는 나불거리고 있습니다. 九泊.

오영록님의 댓글

profile_image 오영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늘 님의 시향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합니다.
감사라는 말도 무안합니다.
재촉하는 가을비가 심장을 흔드네요..
건강하입시다.~~~~

활연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감정공장통조림이라, 시가 뭐 그렇지요.
이건 스냅사진이라 현실 그대로지만, 미래가 없는 청년이라면
그 國은 麴이 될 것입니다.
금주를 맹세하지만 늘 잔이 넘칩니다. 그것으로 가뭄에
술강을 댈까.
늘 상큼하십시오. 행님아~~

동피랑님의 댓글

profile_image 동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볕뉘는 따뜻하고 화자의 입김은 훈훈하고 그 속에 핀 박주가리든 시의 철자든
가슴에, 눈에 팍팍 파고드는데요.
아픈 사람이 아픈 자의 속을 안다지만 손까지 내민다는 건 황량한 세상 들판에서
때묻지 않은 야생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활어로 만든 통조림이면 소품종 소량생산에서 다품종 대량생산까지 품질이
FDA 통과하고도 남는다는 거!

닮은 꼴 공주들과 오붓한 날 비례하시길~^^

활연님의 댓글

profile_image 활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참 부지런하신 듯. 아침에 잠깐 눈 붙이시나요.
애들 가르치다보면 올삐미족이 되는 건 당연한데, 건강엔 별로 안 좋더군요.
갯바람으로 말갛게 피로를 씻고 늘 변강쇠 되십시오.
땅콩보다는 시가 더 유익하다, 뭐 그런.
모처럼 화창한 가을입니다. 주말~, 상큼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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