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재회, 그 이름 모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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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재회, 그 이름 모를 슬픔
/임동규
작은 풀잎들의 고립된 섬들이 보이는 개울가에
뿌리 잃은 내 야윈 빈가슴을 꽂아두고
한참을 앉았는데
누군가가 등뒤에 쪼로로 쪼그려 앉더라
저 물밑에 가라앉은 밥풀 모양
얇게 흔들리는 한 톨
늦가을 하얀 나비이더라
젊은 날,
저마다 부풀린 파아란 가슴으로 날아오르던 하늘을
슬그머니 등지고 돌아와
퍼렇게 흔들리고 있더라
물밑에 돌아누운 조약돌도 허전함에
제 그림자를 삼키며, 뿌리 없는 눈물만 흘리더라
*
우연히 전철을 탔다
/임동규
도시는 차가운 가을비와 낙엽을 뒤흔들며
역마다 여전히 사람들을 뱉어내고
11월 속으로 다시 비틀거리며 질주한다
어두워져 가는 거리와 나란히 선 간판처럼
몹시 창백한 한 사내도 가만히 가라앉고 있다
주름 잡힌 이마의 간판 이름을 읽는다
도시의 창백한 이름들 속에 너도 있다
철도 레일처럼 옆구리는 녹쓸고 얼룩졌지만
이마는 은빛으로 번뜩거린다
온갖 일들이 네 위에서 일어난다
우리는 환승역으로 나뉘고, 이별과 출발은 피할 길도 없다
이 도시를 속속들이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11월의 누런 전찻길만이 안개 낀 오후 속에 가물거린다
멀찍이 서로 떨어져서 숨을 쉬면서 맞은편
길을 잃은 고독한 사람들이 앉아 있다
축축하게 김이 서리는, 유리창을 향해 찌푸린 표정을 지으며
우리는 함께 한강 다리를 누렇게 헤엄쳐 달리고 있었다
안개와 연기로 뭉친 도시의 구름은 붉은 금빛으로 물들리며
얇게 닳아져버린 눈물과 어쩔 수 없이 단조로운 얼굴로,
빠져나갈 길 없은 인간의 숙명 속으로 걸어가 내린다
나의 얇은 입술은 정확한 문장을 엮어내지 못하고
멀리 적색 신호등은 밤안개 속에 떨며 흩어진다
희미하게 비추는 가로등
얄팍해진 깊이를 밟으며 집으로 돌아갈 뿐
인생의 가을 낙엽과 움푹 팬 눈동자 위로
지쳐 삭아버린 또 하루가
단단히 기대어 웅크리고, 까아깍 갈까마귀 소리 몇 개
적막한 저녁 하늘 속에 머문다
*
저 도시는 세상의 끝에 서 있다
/임동규
매일 아침 폐쇄된 방에서 눈을 뜬다
믿음직한 높이와 넉넉한 공간을 가진 이 별장
절대로 돌아보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걸대로 그렇게 되지 않는다
무대의 커튼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연극을 행해야만 한다
홀로 방치된 거대한 묘비
어디에 있든 어디로 가든
절망한 사람들의 잔인함
사회라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혼자이며
아무도 유리한 위치에 서 있지도 않다
누구나 실수를 하듯이 범죄는 저질러진다
대부분의 범죄는 들키지도 않고, 처벌도 되지 않을 뿐
자연도 온갖 범죄를 야기한다
그것도 정당한 듯이 저지른다
모든 게 언제나 저 자연 속에서
자연으로부터 나온다
통나무벽과 가공된 바위, 무의미한 공기 이외에
회로가 뒤바꿘 정신을 갖고 올라 왔다 이 별장
과학은 이 질병을 뭐라 이름붙일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저 도시의 사람들은 늘 착해지라고 요구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도 능력이었다
범죄자는 의심할 것도 없이 가난 때문에
처벌받는 불쌍한 사람이다
가난은 잔인함과 고통의 어두운 갱도였을 뿐
저 도시에서는 누구나 너무도 나약해져서
그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떠돌뿐
끈적이는 이 질료의 무한한 표면에서
시작할 보람이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한없는 저 도시의 무기력으로부터
춥고 축축한 저녁의 꿈이 이어지고 있다
*
애증
/임동규
사랑은 수제 다마스쿠스 주머니 칼처럼
소파 무릎 위에 오후가 졸고 있다
강철과 연철의 줄무늬가 물결치는 애증이라며
그녀 나름대로 내보내는 이별의 인사였다 그 꿈은,
그 사랑은, 그 무엇에 대해서든지 이론을 필요로 하지만
모든 것은 단편으로 밖에는 머물지 못한다
존재 가능한 모든 미래, 여기저기에서
선형의 시간축을 따라 부는 창가에 갈바람 따라
폭죽의 불꽃처럼 씩씩거리며 돌아다닌다 그녀는
저 흑백의 옛날 옛적, 저예산 예술영화처럼
과거는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다
그렇다 그녀는 오래전에 살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다
일단 떠나고 나면, 그때부터 길이 열리지
이 세상에는 암보다도 더 무서운 병도 있거든
일종의 詩 같은 ,,,,,,끝말을 이어가지 못하던
한 줄기 가느다란 가을 안개 같은 잿빛선을 그리고
우리는 가슴 깊이 숨겨진 말없는 부분을 응시하지만
이번에도 돌아온 것은 침묵일뿐
이별이라는 공갈 수단으로 이 여자 건달은
내 등 뒤에서 칼을 꼿으며
배후의 어둠보다 더 짙어져 있다
*
현대판 선녀와 나뭇꾼
,
,
,
고인돌에 끼인
손바닥 이끼만큼 입었군
벼랑 끝에 내몰린 내 눈길은
참 아름다운 배려다,라며
그녀의 핫팬츠 팔짱에 매달린다
부피가 적으니
숨기기도 쉽겠거니,
*
아름다운 뒷모습이 더 아름다울때
,
,
,
저녁 식탁 위에 가위, 바위, 보,
당신이 이겼는데
설거지를 하러가는
,,,,,,
진 것만도 속쓰리잖아, 하면서
*
취업 전쟁의 탈영병
,
,
,
이 손, 저 손으로
멍든 오렌지가
막장떨이로 떨어진다
블랙커피처럼
깜깜한 비닐 봉지 속에,
젊은 어둠이 아프다
*
사랑, 혈관 속에 계절이 바뀐다
,
,
,
백합 울타리, 작은 분수대에
녹차 티백이 부풀어 올라가는 시간,
향기와 둘이서 식어간듯 하고
당신이 벗어든 샌달 한 짝을 바라본다
나는 괜히 뺨이나 만지작거린다
누군가의 노랫소리에 잠시 잠깐 잠을 깬다면
곧바로 후려갈겨진 미소를 지으며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왜냐면 그런 사랑 노래였기 때문이다
꿈의 안개 속에
에어 키스로 헤어지는 연인을 마신다
*
맑은 날 내리는 여우비처럼
,
,
,
자판기 컵이 쓰러져 나오거나
희멀건 프림만 나올때가 싫어서
캔커피를 뽑는다
평범한 물건들을
평범한 가격으로 진열하는 거리
멋진데요, 섹시가 삽입된 늬앙스다
정찰병의 쌍안경처럼 커진 눈알이 있고
통째로 증발하고 싶군요, 둘이서만
정말 우연이죠
지나가던 길이였는데,,,,,,요
최소한 두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겠죠
길 건너 그늘 쪽으로 눈길을 돌린다
다람쥐 길은 나뭇가지 길인가 봐요
당신 길은 어떤 길인가요?
하드커버 두꺼운 페이지처럼
사람들이 지나간다
낯설은 타인을 떠나
당신 안으로 들어가는 첫 여행길
뭐, 여행길이죠
철사줄 울타리가 몇 년 씩이나 쳐져 있었을
가지런한 이빨로 웃고 있다
그 순간, 친환경적인 눈길이 열렸다
거리와 골목길을 따라
굽이굽이 내렸다
맑은 날 내리는 여우비처럼
*
지금은 안다
,
,
,
접시 하나 가득
바다를 담아가고 싶어요
무슨 유서나 유언 같군
한낮의 눈가리개, 선글라스
하지만 하늘은 낮았고
태양은 빛나지 않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 별빛 까만 어둠 속에
저 눈물없는 울음을,
*
엄지 발가락에 인식표를 걸고서
,
,
,
시험 전날 밤
국정 교과서처럼
연필심이 페이지를 뚫어버릴 때까지
왕복선을 긋던 밤이였다
한 여자가 곁에 있고
말똥말똥 문이 열렸다
또 하나의 밤이 찾아든 셈이다
빼빼마른 인스턴트 위생 종이컵처럼 일까
아님, 진공 포장된 통통한 아몬드처럼 일까
옆 칸, 여자가 번쩍 눈을 뜬다면,
참견 말구 그냥 지나 가세요
외줄이 걸린 늙은 느티나무, 검은 폐타이어가
바람을 타격한다
여기가 어디야, 자기
당분간 치킨을 배달 시킬 일도 없잖아
피자고 짠뽕이고
자기가 얼마나 멍청한지조차도 모르는 굴뚝이나 다름없는 여자와
장례식에서 관을 나르는 표정을 짓는 한 남자
전조등, 밝은 불빛들이 꺾이는 코너
지옥 같아 보이지만
항상 다른 무엇으로 판명되는 저 곳,
그곳을 바로 도시라 한다
때론 병원 영안실이라고도 불린다
창턱에 팔을 괸다
한 밤의 별빛 속에
심장이 한 번씩 뛸 때마다
새벽 하늘에 불이 지펴지고
별들을 태운다
그녀들의 입술은 트고, 시커먼 그들의 그림자는 갈라진다
한때는 자신들의 것이였던 생명의 공간을
큰 물통을 인 여인들과
뒷따르는 작은 물통의 소녀들
이따큼씩 짙은 먹구름에 가려지곤 했을 것이다
액자틀 속에,
아님 여기, 저 바깥에
시험 전날 밤
국정 교과서처럼
연필심이 페이지를 뚫어버릴 때까지
왕복선을 긋던 밤이 지나간다
*
징검다리
,
,
,
휴일의 기다란 그림자 속에 다리를 쭉 뻗고
저녁은 점잖은 눈물처럼 나즈막이 흐른다
남자는 물오른 갯버들 가지 아래
몇 개의 말줄임표를 조심스레 밟아간다
여자의 곧,올께,의 곧 쪽으로
가위 바위 보,로 건너던 다정했던 날들을 향해
이제는 낯모르는 5톤 짜리 바윗돌 위에
얌,얌,의 평평한 쵸코릿을 깨물며
그 어린 소녀는 뽀로로 비누 풍선을 불고
남자는 뭐가 그리 긴지, 23년을 흘려보낸다
내 사랑하는 여보야,까지 가고픈 길 쪽으로,
*
아직도 1인칭으로 사니?
,
,
,
소파에 웅크린 낮은 목소리로
고마워 !,! 고갤숙인 속삭임 속에
여인은 모카향을 감싸 쥔다
물 빠진 창가의 하늘이 흐려졌다
그리고는 또렷해지기를 반복한다
저녁은 젊은 날의 색깔로 갈아 입고
남자는 노을 모자챙을 더 당겨 쓴다
뚜껑 열린 아세톤이 증발하듯
밤속으로 흐릿하게 걸어간다
*
빛고을의 후예
,
,
,
오후의 때늦은 햇살 속으로 겹겹이 호기심만 쌓인다
나는 손님이 되어 본적이 없다
간간이 절뚝거리는 낡은 남자를 본적은 있지만
특히나 이 서민적인 계절의 들장미가 활짝 필 때는
이니셜이 반짝이는 커프스 버튼이나 만지작거리며
운이 좋은 이 주먹은 비바람에 씻긴 조약돌 같이
내 안에 산책노에서만 딸그락거린다
쌓이는 꽃가루 알레르기와 선명한 송홧가루, 줄무늬 냇가
듬직한 층층이 바윗돌에 한가로이 물높이를 재고 있다
모호한 크기의 간판들 산더미 사이에, 빛고을 보신탕이라니
맑은 고딕의 문체가 팰릿 사료로 크고
간식용 개껌으로 즐기던 애완견들이
긴 줄을 늘어뜨리며 우쭐하게 지나는 그 길목을 바라본다
오늘 아침 눈 뜰 때 보이는 마스크를 쓴 사물은
그 전날보다 더 열악한 상태로 존재한다
감히 진실을 말해도 용서해줄까
갈비뼈로 피아노를 치던 총알의 음계를 따라
남자는 눈물을 매단 한 마리 나방이 되어
어두운 층계참에 날아들지만, 나는 뒤돌아서 외면한다
비밀스런 무게에 짓눌러 찌푸려지는 기일의 시간과
기묘한 세상은 눈을 통해 들어오지만
저 남자의 입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나는, 저 남자를 알지 못할 것이다
*
용산역(龍山驛) 그늘 밑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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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렸나
잭슨 폴록처럼 마구잡이 행색이었다
하지만 담배 한 개비쯤이야 하면서
맑은 5월의 파란 하늘을 나눠 마신다
히말라야에 가니
빈 방도 없고
빈 동굴도 없더라고요
저야 끽,해야 뒷산인데요
돈이 많으셨나 봐요
노숙자가 돈이 많습니까
어떻게든 살아가잖습니까
잘 가라며 일어선다
키가 작은 줄 알았더니
등이 심하게 굽어 있다
다른 똥이 나를 노려보는 건
딱 질색이야 하면서 나왔었다
브래지어 컵 위에 투덜투덜
아, 괜찮다
이런 얘기들 때문에
내 문제가 작아 보이니까
고맙게 잘 들었습니다
힘이 솟는 비아그라 말씀,
하면서 주머니 속에
몇 걸음, 비인 낙타 한 마리
(카멜)내주고 돌아섰다
*
애인에게 버림받은 가슴만이 아는 암호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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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밑에 유리 빌딩
그녀 곁으로 달려가는 한 남자가 보인다
햇빛에 짓눌려 찌브러진 가느런 5월의 눈동자가
동그런 낮달이 되어, 또 하루를 내려다 본다
방금 일어선 당신의 검붉은 온기를 쓰다듬으며
카메라는 라틴어 여성명사로 작은 방, 사무실,
천정을 덮은 작은 배,라는 이름으로 붙여넣기를 하면서
투명 피사체의 노을빛 물감은 불투명하게 불타고
그을린 하늘은 검게 휘어진다
소파에 웅크려 있던 당신의 후레쉬 빛이 터진다
밥맛이니, 재수니
멀리 길게 늘어선 환한 아카시아 꽃가지들이
하얗게 당겨진 망원 렌즈에 가득 차고
카메라 앵글도 겁먹은 작은 새들의 날개짓으로
바르르 떤다,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 같이 가볍게 그렇게
허밍으로 늘어선 발걸음이 조금씩 짧아지면서
층층마다 줄지어선 한 조각 이름이 저문다
애인에게 버림받은 가슴만이 아는 암호 같이
이름은 사랑의 본질이다
그 이름이 그려내는 추상화의 캔버스
움직일 수 없는 본바탕을 받쳐든
나의 존재는 이젤이다
누군가를 부르는 저 이름의 물감은 진짜이지만
맞은편 우리들의 익명은 이름이 없으니 가짜이겠거니
스냅사진에나 어울릴, 피와 살의 이름으로 당신이 스친다
거대한 빌딩 유리벽에
은은했던 이름의 빛은 압도적으로 꽝, 닫힌다
작고 네모지게 남겨진 남자 하나
혼잣말을 한다
나를 납골당과 동급으로 여기나 봐
밥맛이니, 재수니
불 같이 화를 낸다고 해서
내가 더 나긋나긋해지는 것도 아닌데
도시 밖으로 나가 별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다
질서 잡힌 별자리들의 우주를
저 이름이
내 눈가에 닿기 위해
얼마나 오랜 여행을 했을까, 하면서
하지만 이 도시의 별들은 검은 눈꺼풀을 지나오지 못한다
익명의 가로등과 밝은 별빛 몇 개
당신의 이름이 전부다
발 밑에 유리 빌딩
그녀의 이름이 살짝 숨차게 뒤돌아 보는 순간,
애인에게 버림받은 가슴만이 아는 암호 같이
나는 당신의 이름으로 붙여넣기를 하고 있었다
*
지능적인 詩 같다
,
,
,
바닥은 옷장이 아니잖니,
그리곤 우당탕 발걸음질
착한 아들
여기 아이스크림,
낯모르는 남의 창가에
달달한 오후가 흘러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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