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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아이섬에서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1,833회 작성일 24-03-15 02:18

본문

카우아이섬에서


1. 

달이 내 정수리 위에서 

시린 숨을 지상으로 불어 넣는 한밤중이었다. 

탕아타 훼누아 할머니는 

더러운 장막 아래 나무의자 하나를 펼치고 앉아

꼭 호두알을 닮은 단단한 껍질의

나무열매 하나 손 안에서 깎고 있었다.

그런데 나무열매는 껍질이 깎여나갈 때마다 

점점 더 커졌다.

할머니는 두 개 

기다란 나무막대기를 서로 부딪치며 흐느낀다.

머리에 꽃관을 쓴 백인여자아이가 

꽉 닫힌 홍학(紅鶴)의 부리를

억지로 연다.     

할머니 두 다리가 벌리고 

라플라시아 꽃이 겹겹의 눈꺼풀을 열었다.

할머니는 보리수를 출산하였다. 

반나(半裸)의 아이들을 출산하였다.

할머니는 자신의 두 개 

젖꼭지에 아이들을 흐트러놓아  

고통스런 영원을 

살게 하였다.  

그리고 비릿한 열대의 밤은 

조용히 깊어져 갔다.        


2. 

어둠 속이었다. 하얀 뱀이 내 망막 속으로 

기어 들어왔다. 푸르스름한 바람 속에서

 

무화과나무잎들 꼼지락거리는 소리가

흐느꼈다. 나는 투명한


무덤 속에 있는

어미고래를 떠올렸다. 그것은 북극해로부터 먼 


해로를 흘러 들어와 저 앞바다에 새끼를 낳으러 온다. 어둔 

작살로 그것의 만삭인 


망막을 찔렀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오히아꽃이 옷 


벗은 것이다. 새빨간 알몸의 

영육(靈肉)을 찢어 놓은 것이다. 흐릿하게 자취만 겨우 남은 열대의 


길을 떠도는 모아이새들은 

새끼가 죽을 때 아름다운 울음을 낸다고 한다. 예리한 면도칼로 내 입속에 맴도는

 

노래들을 해부한다. 피 섞인 기이한 음파(音波)들이 내 

목구멍을 넘어간다. 살로메. 부풀어 오른 새하얀 배. 희미한 비단자락이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감각. 벗은 네 두 다리 사이에 

잘린 내 머리를 놓아다오. 피 흘리는 내 유년을 


네 비릿한 탯줄로 목 졸라다오. 큼큼한 

향기 갈앉는 


심해에서 조용히 꿈틀거리는

그 자궁은 내내 투명한 몇 겹 라플라시아 청록빛 털에 덮인


그 눈꺼풀을 헤집으면 날 

노려보고 있던 것일까? 내 으스름한 폐 속에는 고름이 


차오르고 황금의 지붕은 타 오르는 불길 속에 있고 하염

없이 내 고통은 나를 난산(難産)하느라 


세필(細筆)의 각혈(喀血). 나는 침대에 혼자 누워 썩어가는 

내게는 시취(屍臭) 닮은 소녀 하나가 


있었으면. 다리가 새하얗고, 목은 사슴의 그것처럼 길고. 새하얀 등에는 움푹 길게 

척추가 곧게 내려간 흔적 웅혼한 바위 봉우리들 사이로 서서히 스러져 가는. 


청록빛 폭주하는 

불꽃놀이 속에서 나는 팔다리가 뜯기고 


눈 코 입으로 뜨거운 골수가 흘러 내려도 나는 

나는 한 줄의 황금빛 


시를 삼킬 수 있었으면. 그런 시를 겁탈할 수 있었으면. 나는 거듭

죽을 수 있었으면. 저 보리수처럼. 껍질이 벗겨지고 화살에 박히고 황홀한 


폭음과 함께 자오선에 걸려 흔들거리는 흩어지지도 

모여들지도 말고 청록빛


코코넛나무 잎의 예리한 끝에 키틴질의 경련  

내 모든 것이 걸려 천천히 흔들거리는.      

 

 


  


 


댓글목록

tang님의 댓글

profile_image tang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영혼의 거멈 정신이 생명의 있음과 혼돈 여림 경합을 하였습니다
순수한 정령으로 내세의 입문을 시도하며 중차대한 영적 묵음을 암흑 너머로 가게 했습니다
소통되어야 할 신적 존엄함을 갈구하면서 내적 수치심에 영적 체험 수행을 빌미삼아 일갈하였습니다
내세는 영원하다는 천상계 누리 명제에 소명으로 답할 때 까지 영면 누림으로 치환하려 했습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열대의 섬에 가서 깨달은 바가 있었나 봅니다. 명징한 생명들 사이에서 많은 생각들이 밀려오더군요.

콩트님의 댓글

profile_image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날의 바닷가
내 발목을 삼키며 차오르는 해조음 같은
시인님의 시를 감상하며 언제 오실까 하고
물가에서 발만 동동거렸는데
게시판에 징검다리처럼 놓인 시인님의 시를 보니
너무나 반갑고 기쁩니다.

건강하시고요.
오랫동안 시인님의 시를 감상할 수 있길
마음속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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