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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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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釣人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68회 작성일 22-02-19 14:34

본문

천천히 


       釣人



절벽에 선다는 것은 등불을 끄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타버린 심지를 거두는 일인 줄 알았습니다

나는 불 꺼진 하숙에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가파른 기울기를 달려온 자동차가 오십견으로 삐거덕거립니다 

한때 구릿빛 우람했던 악몽이 한 종지의 기름으로 모여 마른꽃처럼 바스스거립니다

절벽 아래에는 기름강이 주르륵 눈물샘을 길어올립니다 

긷는다는 것은 당신의 혈관 속으로 스미어 닿지 못한 뿌리를 바라보는 일입니다

여물지 않은 뿌리가 억세바람을 감당해 나가는 것은 뿌리의 몫인가 봅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급경사의 각도는 침묵으로 니르바나를 읽습니다 

절벽은 난쟁이들의 세상일 지도 모를 일입니다 

납작 엎드린 나목과 풀꽃들의 간격에는 억세바람도 한풀 꺾여 후다닥 지나칩니다 

절벽에는 비상구가 있습니다 

체증을 앓고 있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소곳이 신발을 벗고 당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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