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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없는 삶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091회 작성일 21-10-17 17:50

본문

  흔적 없는 삶





  잘 닦여진 도로를 뒤로하고

  헝클어진 머릿결 같은

  숲길을 찾아 걸어 들어가는 아버지가 있었다


  아무도 그의 길을 가늠하지 못했다

  다만 눈 덮인 풀 위를 걷는 것으로 그는 말할 뿐,

  길의 이유를 대는 일은 없었다


  흔적 없이 걷는 숲엔

  피 한 방울 같은 선명한 마침표를 찍기 위해 걸어온 

  살갗이 닳은 생의 쉼표들이 흩어져 있었고

  가쁜 들숨 날숨으로 그의 길을 받쳐주던 띄어쓰기가 있었다


  숲에서라야

  아버지는 의문부호를 떨쳐버릴 수 있었다

  끊임없이 걷는 것만이 그를 살리는 유일한 느낌표였으므로,


  가끔 벽지에 두고 온 딸이 떠오르는

  슬픈 밤엔

  숲의 어스름 속에 흔들리는 자작나무 이파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언젠가 그에게

  길었던 숲의 문장을 마무리할 시간이 찾아오면


  바람은,


  자작자작 잠 못 드는 이파리 위에

  눈송이 같은 느낌표 하나를 가만히 놓고 갈 거라 했다


  


  

댓글목록

하늘시님의 댓글

profile_image 하늘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3연에서 잠시 숨이 마침표를 찍었네요
마지막 연에서 느낌표를 눈송이처럼 맞고 갑니다
저도 이 영화 본 기억이 있답니다

공감할수 있는 좋은 시
잘 읊조리다 갑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든, 영화든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그 질을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에 남지 않는 건 숲에 핀 풀 한 포기의 가치도 없다는 거구요.
풀은 최소한 그 흔들림으로 바람의 말은 들려주니깐요.
공감한다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
공감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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