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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티 쉴레의 변신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226회 작성일 20-08-05 00:20

본문

 


오스트리아에서 온 소녀 게르티 쉴레가 나방으로 변태하는 것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한 바 있습니다. 그녀가 나방이 되어가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은 저 하나뿐일 겁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자잘한 솜털로 부드러운 거대한 몸통을 덮었습니다. 나방이 날개를 넓게 펼쳤을 때 마치 두 다리를 넓게 벌린 소녀가 하얗고 빨간 균열로부터 오줌을 누는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화려한 혐오를 자아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두개 길디 긴 더듬이라니요! 저는 꼬물거리는 더듬이들이 아주 무서웠습니다. 어듬을 뚫고 직진하는 햇빛 속에서 황금빛 가루가 휘날리는데 제 피부와 폐 속 염증들로부터 즐거운 노래가 새어나왔습니다. 말하자면 애벌레가 영원히 암흑인 고치 속에 갇혀 자위행위를 하는 기분? 


아, 당신은 왜 게르티 쉴레가 나방이 되었는지 물으신 거였죠?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금발에 푸른 눈동자 안에서 광기가 비치는 듯도 한 소녀를 아틀리에로 불러들였습니다. 저는 아침을 막 먹은 후였지만 게르티는 허기가 몹시 진다고 하더군요. 제 귀 한쪽을 뜯어먹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자기를 그리려는 사람은 귀 한짝쯤은 봉헌해야한다구요. 하지만 어쩝니까? 저는 어제 저녁 후 비엔나 거리로 산책을 나갔다가 페리스휠이 천천히 돌아가는 검은 놀이공원 앞에서 제 귀를 스스로 잘라버렸습니다. 저는 어딜 가든 예리한 면도날을 꼭 가지고 갔거든요. 제 면도날에는 즉흥성이 강하답니다. 게르티는 실망한 듯 보였습니다. 저는 게르티더러 캔버스 앞에서 옷을 벗고 포즈를 취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게르티를 앞에 두고 아무리 캔버스 위에 스케치를 해보려 해도 도무지 어떻게 게르티의 추함을 잡아내야할 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게르티는 이런 저를 보며 비웃음이랄까 동정이랄까 이해한다는 표정이랄까 차가운 무심함이랄까 뭐 그런 것을 얼굴에 띠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캔버스를 보던 중 저는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 대신 싯구가 떠올랐습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그 싯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게르티는 오빠와 관계를 맺었다. 오빠는 게르티를 데리고 빛과 침묵의 젖은 꼬리들이 서로 탐하는 암실로 들어갔다."


"게르티는 벨베데레궁전 복도에 걸린 사각의 캔버스 안으로 들어가 다리 벌리고 오줌을 관람객들을 향해 쏘아냈다."


"다알리아꽃과 원추리꽃이 서로 항문을 맞댔다."


그렇게 침묵이 계속되자 게르티는 벌떡 일어나더니 제 얼굴 위에 있는 문을 할짝 열지 뮙니까? 그러더니 문 안에 가득찬 일렁이는 밤꽃들을 홱 낚아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게르티는 바로 제 눈 앞에서 서서히 아주 거대한 나방으로 변태하여 갔습니다. 저는 놀라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 광경을 캔버스 위에 미친듯이 그렸습니다. 당신은 이것이 환상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내가 당신 입장이라도 그랬을 테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캔버스가 갑자기 각혈을 하며 제 얼굴 위로 뜨거운 핏덩어리를 쏟아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아틀리에를 가득 채운 거대한 나방 앞에서 제 가죽같기도 한 옷을 훌훌 벗어버렸습니다. 


자, 이야기는 이것으로 다입니다. 이 뒤의 이야기는 언어로 번역하기엔 너무 미묘해서요. 오늘 아침으로 나온 맑은 스프 안에 뼈들이 가라앉아 있더군요. 비틀어진 나방의 다리를 닮은 뼈들이요. 발만 담가도 빨려들어가 익사해 버릴 것같은, 부패해가는 잎듶이 가득 수면을 덮은 그런 늪의 맛이 났습니다. 스스로 혈관을 자른, 무언가 뜨거운 것이 분출하는 맛? 핥아도 핥아도 오늘 아침은 제 의자가 유난히 삐걱거리더군요.


 


 




   

댓글목록

날건달님의 댓글

profile_image 날건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욕구->욕망->황홀->극치->죽음->영원->??? 뭔지 모르지만 이러한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너를 비틀어 나를 채운다는 무라카미 류의 소설처럼..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비엔나에서 본 에곤 쉴레의 누이동생 누드에 대해 써 본 글입니다. 그러니까 게르티 쉴레에 대해 썼지만, 사실 이 글은 에곤 쉴레에 대한 글입니다. 시에 묘사된 생활은 비엔나에서 제 실제경험이구요.

제가 생각했던 이 시의 주제 포인트는 - 내가 게르트 쉴레를 그리려 함으로써 그녀를 변신하게 한 것인가 아니면 게르티 쉴레가 스스로 변신하여 내게 영향을 미쳤을까 하는 모호함 (혹은 긴장)입니다. 하지만 시를 읽는 데 있어서 이런 제 생각은 그냥 한 독자의 감상에 지나지 않을 것 같네요.

일필휘지로 써서 너무 산문적인 글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다듬어서 시로 만들어야겠지만. 그리고, 저는 시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철학이 있어서 그점도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읽어본 적 없구요, 이 시는 카프카의 변신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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