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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성찬(盛饌)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206회 작성일 19-10-27 09:15

본문




버석거리는 인동초잎이 그녀의 소리로 들렸다.

 

하얀 천이 배달되어져 왔다.

 

연한 물빛의 비린내가 한 묶음이 되어 꽃병 안에 꽂혀 있었다.

 

나와 그녀는 추상적인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녀 앞에 놓인 커피잔에서는 빨강색이

내 앞에 놓인 커피잔에서는 청록색이 익사하고 있었다.

 

그녀가 포말(泡沫)을 접시 위에서 쓱쓱 써는 동안,

내 눈 앞을 헤엄쳐 가는 흰긴수염고래를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험준하고 긴 산길이라는 안데스산맥의 아구아 네그라에도 꽃은 핀다. 산석류꽃이 골짜기를 내려간다.

 

산석류꽃이

무호흡의 농도를 높일수록

우리는 점점 더 심해로 가라앉아 갔다.

 

내 표정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명징한 방점이 찍히고 있었지만,

그녀의 가슴뼈는 익사한 색채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함축적이었다.

 

나는 겁에 질린 사슴의 머리를 산 채로 씹었고

그녀는 팔랑거리는 사슴의 꼬리를 핥았다.

 

긴 속눈썹을 투명한 타액과 함께

햇빛 안에 뱉어 놓았다.

파스텔 가루로 

텁텁한 부해(腐海)의 풍미를 그려 넣는다.

 

버둥거리는 쓴 두릅순을 그 안쪽으로부터

나와 그녀는 서로 다른 외국어로 말하였지만,

 

어쩐 일인지

내가 말할수록 그녀가 시들어 가는 것을

그녀가 말할수록 내가 시들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암전(暗轉) 상태에서 흰 천막을 거두어들였지만,

그녀는 핸드백을 열듯

선운사 동백꽃을 딸칵 열었다.

 

바람이 한꺼번에 몰아닥치자,

그녀 앞 커피잔에서는 뜨거운 카페라테가 빙빙 돌아갔다.

 

빈 은쟁반을 들고

명성산(鳴聲山)이 다가왔다.

 


 

댓글목록

책벌레정민기09님의 댓글

profile_image 책벌레정민기09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먼 과거에 잃어버린 표현을
타임머신 타고 되찾은 기분입니다.
참신함이 돋보입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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