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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하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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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1,040회 작성일 19-10-15 00:06

본문




내 방 화분에 있는 꽃들은 남미의 고원에서 온 이상한 것들이어서 외계어같은 향기가 방안을 채울 때면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갈망에 난파하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 방은 별들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이 방의 한 조각도 내 체온으로 덥히는 것이 불가능하다. 뿌리가 빨려들어가는 어둠에 맞서는 것이, 막막한 강변을 지키는 희미한 갈꽃들이다.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검은 뚜껑을 닫는다. 뿌리의 얇은 껍질을 벗기자 타들어가는 칠월이다. 갈꽃과 남미의 고원과 아즈텍인의 찢긴 얼굴과 나 사이에는 겹치는 것이 있다.    


나는 이 방의 꽃들이 낯설 때가 많다.


나는 밤마다 익사하고 있는 배에 오른다. 


갑판에 비치는 것은 달빛이 아니라 희미한 형광등 빛이다. 


서로의 팔과 심장과 얼굴과 호흡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꽃들이, 

어머니와 아기가 형제와 자매가 되어 

서로 꼬옥 껴안고서 심연으로 영영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이미 수면 아래 가라앉고 있는 저 빨간 것은 이름 모르는 내 애인. 

종이의 결 따라 글을 이어 쓰다가 

멈추는 자리. 

파르르 떨리는 몸부림이 어머니가 되어, 

호흡 부족으로 시퍼렇게 된 어린 것 손을 꼬옥 붙잡고 

바닥으로 수직낙하한다.


산호가지 날카로운 끝에

심연으로부터 둥둥 떠오르는 것들이 찢기고 있다. 


나는 내 방을 밝히는 작은 전등이 

조금 깜박거릴 정도만큼만 글을 쓴다. 


나는 아프리카의 사반나만큼이나 

확장되어 가는 침대에 혼자 누워, 

풀향기로 매듭 맺은 내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는 바람과 하늘과 산등성이 약간 기울어진 노오란 물줄기   

자운영 밭에 계신다. 

벽이 사라져도

내 뿌리는 조금도 가늘어지지 않았다. 

내 뿌리의 촉수가 무한한 것 속으로 길게 뻗어져서 

우주의 바람에 나긋하게 흔들린다.


빙하가 둥둥 떠다니는, 

물살이라기보다는 분노한 별빛의 분출같은 곳에서

익사하고 있는 배가 있다.

오늘은 그 갑판에 쭈그려 앉아 

사기그릇에 담긴 바싹 메마른 꽃을 노려본다. 

나를 빼놓은 모든 것이 익사하고 있다.


유리상자 안에 내 심장을 담는다.

시즙 가득한 심장이 

비틀리고 상흔만 남은 언어들 속을 탐험한다. 

어둠에 난자 당한,

늑골을 드러내 놓은 배가 여기 있다. 

서서히 가라앉는 뼈 위에 표정 풍부한 천을

칭칭 감아 놓았다.

하얀 이빨 싱긋 웃으며 

나를 빼놓은 모든 것이 익사하고 있다.














댓글목록

자운영꽃부리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미에서 가져온 꽃이라 물을 안 주어도 시들지 않고 꽃이 오래간다는 말만 듣고 샀는데,
벌써 시들어 버렸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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