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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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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이명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44회 작성일 19-01-20 17:16

본문

 

양귀비

               이 명 주

 

숙성이 덜 됐을 땐

고개는 땅으로 향한 채

시녀처럼 잔뜩 머리를 조아린다

하지만 목덜미에

간교한 내시와 내통하는 줄기

가시 돋친 음흉한 음모를 보았다

단아하게 고개 숙인 채 귀엣말로 들리는

궁에 모든 비밀을 알아챘다

군왕의 속성까지도 모조리 알아차렸을 때

가녀린 목덜미는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수직으로, 거의 꺾여있는

그 가녀린 고개를 일으켜 세워

꽃을 피워내는 벌의 근원지는 어디인가,

나는 꽃을 피우기 전 솜털에 둘러싸인

생김새를 유심히 지켜보았고

비극적 역사의 단서에서 포착되는

아편 같은 독성을 느낄 수 있었다

치골에 숨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지독한 향이 백지장 같은 치마폭 안으로

왕을 끌어들여 만개했을 때

역사는 자궁 안에서 증발하고

궁극적으로 그녀는

마지막 가야 할 곳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꽃잎이 지고 나면 허공에 매달릴

전모[氈帽] 쓴 잘린 머리

 

그 또한 간교한 내시의 짓이었다

 

형장으로 가는 지독한 길  

 

*전모(氈帽)-조선 시대에 여자들이 나들이할 때 쓰던 모자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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