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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피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340회 작성일 18-07-30 12:29

본문

<(    )>


삶은 무겁고 존재는 가볍다

그럼에도 존재는 삶을 지탱해야만 한다

직무유기가 일어나는 순간의 파국은

이미 그 시점에서 예견된 것이었다


당신은 이제 김치냉장고가 어디에 있고

아니 뭐가 김치냉장고고

거기에 무슨 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작년에 손수 새우젓이며 배추며

모람모람 사다가 담가놓은 것인데도

며느리 손은 내 눈에 흙 들어간 다음이니

보고서 잘 배우라고만 하셨다

그게 작년보다 몇 개월 덜 지난 시절이다


하기야 작년까지 갈 것도 없다

지금도 밥상을 마주하고 밥은 언제 줄 거냐

늙은이 굶겨죽일 심상이냐

나랏님도 노인은 챙겨준다며 애먼 며느리에

애멀지 않은 수저를 냅다 던진다

며느리 입가에는 보조개가 어금니처럼 흔들린다

아내는 잇몸이 헐어도 임플란트 얘기를 꺼렸다

딸내미 대학 등록금이 아말감처럼 들어앉았기에


그나마도 평온한 나날에 웃음이 헛헛하다

나는 쥐어뜯긴 솜이불이 짓눌린 종량제 봉투에

황갈색 냄새 퀴퀴한 벽지를 쑤셔넣었다

당신의 방은 이제 온통 초배지뿐이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당신은 사라지고

이제 당신의 겉모습을 한 괴물이 들어앉았다

어째서 저 괴물이 당신을 닮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왜 신주단지가 되었는지 도리도 없고


그러던 어느 날은 화창하니 따스해서

단둘이 나들이나 가자고 짐승이 성화를 부렸다

웬일로 나는 순순히 그를 받아들이고는

해묵은 연식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탔는데

이 고속도로는 가드레일도 없었고

가는 내내 결승 테이프를 난간으로 삼았더라

차가 금강 아래쯤을 지나던 시점에는

산도 좋고 물도 깊으니 뛰어나 볼까 싶어지는데 -


어매요

이 불초 후레자식을 용서하시오

당신은 나를 키웠지만

나는 당신을 키울 자신이 없소


이제는 경로를 이탈했다는 목소리만 시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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