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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남자와 나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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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소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50회 작성일 18-06-22 09:54

본문

`

 

 

 

 

작은 갈대처럼 길죽한 그림자가 책상에 놓여 있다

파란 밤의 한 귀퉁이

남자의 등 뒤로는 멀리 아파트 불빛이 가지런히 흔들리고

해마다 여름이 오면 혼잣말을 해오던 떠나는 거야 떠나는 거야

가로등 탱자나무 가시를 통과한 빛줄기도 그렇게 가늘게 찔려 나온다

밤하늘이 흘리는 하얀 피가 쌓여 밤안개를 이루며

얼굴은 가려지고 무작정 견고해진 목소리가 달빛 속으로 서서히 퍼져나와 숨죽인 풍경으로 자리잡는다

뚜벅뚜벅 그녀가 사라진지 10년이 흘렀다 또각또각

마호가니 나이테 물결에 갈대는 톡 톡 검지를 빠뜨리고

잔잔한 베이스음이 밤안개를 부풀려 아파트를 삼키며

어느 강가에 내려놓는다

바위가 조약돌이 되기까지 물결과 얼마나 많은 춤을 추어야 했을까 안개만이 알겠지만

나는 너의 모두를 사랑했어

네가 여기에 없을 때조차도 사랑한다 고백하고 있잖아

띄엄띄엄 징검다리 위에서는 누구나가 고갤 숙이고 걷듯이 참회의 순례자로 걷고 있어

파란 밤의 귀퉁이 강물은 말없이 잔잔하고

오랜 정자 기둥에 나팔꽃이 낭자하게 기대어 온다

참 웃기에 생긴 물건이네 넌 누구야

나 그런 여자 아니예요

아하 나는 파는 여자가 아니라는 바로 그 나팔꽃이란 말이지

너랑 있으면 나까지 요상해져

우리 언제 제대로 한 번 만나자

우린 절대로 만나서는 안되는 사이잖아

나팔이 팔꿈치로 갈비뼈를 찌른다

삐져나온 갈대가 손짓한다 달빛 속으로 희미하게 희미하게 저거 봐

저 편으로 건너간 나즈막한 물안개가 계속해서 출렁거렸다 저거

느끼려면 지형지물이 필요했는지 우뚝 솟은 정자와 언덕에 굴곡지는 곡선을 낭자하게 쓰다듬는다

돌아와야 할 집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름은 순전히 소리일 뿐

그 소리 너머까지 본다면

이름없는 메아리를 만나게 될테니

얼마나 두려웠을 것인가

그날 아침 책상에는 하얀 물방울 몇 개 놓여 있었다

 

오늘 이 밤도 하얀 핏자국은 

베개에 기댄 한 쌍의 인형 같이 아름답게

그렇게 흘러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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