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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의 문어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987회 작성일 20-09-16 09:49

본문

경자년의 문어文語 / 백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금은 음습한 가을의 초입
흐물흐물한 문어들이 족족 날개를 달고 계수나무를 품었다
수중의 시쳇말들이 공중을 나대며 활개를 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꾸짖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회적 자괴감으로 이명을 들쑤시고
그들은 플라톤의 이상과 함께 요단강을 건너갔다며
 
언뜻, 베이컨의 지식은 어느새 곰삭힌 돼지고기로 읽히고
칸트의 고지식은 어느덧 고장난 시계로 비치는
여기는 애월 근처 한가위를 만나러 가는
외도의 길목, 이 섬의 거리엔 가랑비들 추적거린다

며칠 후면 달이 뜨는데 아마도 예전 빛이 아닐 것이다
휘영청은커녕 몹시 흐리멍덩할 것이다
쓸쓸한 도시는 곧 쌀쌀해질 것이다
순진한 토끼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꼬리를 감춘 여우가 가면을 걸치고 들락거릴 것이다
들녘엔 흰쥐로 둔갑한 시커먼 쥐새끼들 들끓을 것이다
컨텍트니 언텍트니 나불거리다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낼 거다
안간힘을 쓰며 내뿜은 먹물
스스로 삼켜버리는
정신 나간 문어처럼


댓글목록

김태운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의 이력서 / 백록


본적은 가난의 젖 같은
쌀의 고향이었지

첫 주소는 생초면 아가리
확 트인 가을하늘 같은
터무니랄까

이후, 무럭무럭 자라면서 무척 튼튼해졌지
간혹, 빠지는 것들 미련 없이 지붕으로 냅다 던져버렸지
송곳니가 움트면서 전생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지만
어금니가 비치면서 비로소 어미를 알았지
사랑니가 생기면서 마침내 여자를 느꼈지

이후, 하나둘 썩어가면서
사이사이 무너지면서
당신의 소중함을 깨달았지
소의 되새김질 같은
지금의 통증을

세월은 그렇게 흘러 흘러
하얀 생각으로 비치던 것들
온통 가을의 들녘이다
몹시 누렇다
나의 늙은 시처럼
시들 시들

책벌레정민기09님의 댓글

profile_image 책벌레정민기09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부지의 시는
제게 살이 되고,
피가 됩니다.
그리고 밥이 됩니다.
물이 됩니다.

언어의 마술사,
언어의 연금술사이십니다.

문운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김태운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ㅋㅎㅎ

떼끼...
아부지라 꼬드끼면서 날 잡아먹을려고
꽤심한지고...

더 이상 건강하면 아니될 듯
잡혀먹힐까 봐서

안 그래도
물이 되어가는 중

김태운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잃어버린 답 / 김태운
- 제발 이 답 좀 찾아주세요


이른 해 전
그해는 무자비한 해였지
붉은 색과 파란 색 그 사이를 오락가락하던
시뻘건 혹은 시퍼런
핏빛투성이의

이른 해 전
그달은 죽음의 달이였지
죽지 않으려고 기를 써도
결국, 죽어야 했던

이른 해 전
그날은 기어코 살아남고 싶은 날이었지
마구 헐떡이는 숨을 죽이고
한껏 졸여야 했던

그해와 그달과 그날의 한은
한라의 문제로만 남아 있을 뿐
여태 풀지 못하는
섬의 숙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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