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 것이기에 이미 모든 것 * * * 시는 내게 있어 공에 대고 본성을 그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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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없는 것이기에 이미 모든 것
사문沙門/ 탄무誕无
이 말에 의지하다
저 말에 의지하고
닿는 곳마다 무명(無明)을 일으키니
생각이 미혹한 그림자,
물아일체, 천지는 나와 한 뿌리
이치로는 이해하고 있어도
인간의 마음과 생각하는 말
개념들이 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에서 오고 있는데도
자신이 붓다임을 꿈도 못 꾸는 사람들,
교학에만 머무르고 있기에
'언어로는 미칠 수 없다' (言語不及)
모든 만물의 본바탕으로서
붓다의 본체는 이미 자신에게 있다
이건 어디로부터 온다든지
어디를 향해 가는 것 아니다
절박하면 잘 들리고
절박함 없으면 전혀 들리지 않는 법
시가 선의 경지에 이르면 시선(詩仙),
시가 선사와 부딪히면 선시(禪詩)
*
*
'언어로는 미칠 수 없다' (言語不及)/
언어와 머리로는 깨칠 수 없다,
언어와 머리로는 붓다에 계합(契合)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제 3의 눈으로 발견해야 하는 체험의 영역입니다.
나기 전 본래부터 있었으므로 발견입니다.
발견과 동시에 붓다의 묘용(妙用)예 의해 바로 계합이 됩니다.
'잃어버리거나, 소유할 수 없다.'
'쳐봐도 쓰러지지 않고, 때려봐도 넘어지지 않는다.'
붓다/
모든 인간(만물)의 본래 성품,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이 달라도 다른 이름에 속지 마십시오.
0이라는 기호는 10개, 100개 나열하더라도
실수인 1, 2, 3, 4, 5, 6, 7, 8, 9가 없으면 0일뿐이지만,
0이 하나뿐일지라도 그 앞에 실수가 있게 되면
10도 되고, 20도 되고, 90도 되고, 무한대이지요.
실수의 본바탕은 아무것도 없는 0이지요.
아니, 0이 있기 전 아무것도 없음이죠.
0만이 인도 숫자입니다.
깨친 선각(先覺)이
이 0이라는 수를 발견(개발?)해냈다고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설명한 것입니다.
붓다의 본체는 숫자적 개념의
아무것도 없는 0과는 다릅니다.
테두리가 없고, 탁 트였습니다.
미묘하고, 오묘하다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만물을 포섭하고 있습니다.
삼라만상(우주), 모든 만물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습니다.
우주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참공부(正法, 우리 인간의 본래 성품) 살림살이 친절히 내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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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내게 있어 공에 대고 본성을 그리는 일
사문沙門/ 탄무誕无
잘못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 아니라
잘못을 모르는 걸 두려워해야 한다
잘못하는 게 뭐가 흠인가
잘못하고 고치지 않는 게
잘못이고 흠이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사람이거늘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댓글목록
한뉘님의 댓글
구구절절..^^
그저 고개만 숙이고 숙이다
갑니다^^
시를 쓰기보다 시처럼 산다는게 ㅎ
말씀 속에 들어 있네요~~~^^
탄무誕无님의 댓글
차려 올리신 글에 광(光) 나는,
혜자스런 글 맛집 대표 한뉘님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