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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의 방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361회 작성일 21-12-12 11:14

본문

귀신들의 / 백록



 

안방에 기거하시는 마나님께서 늙어갈수록 시끄럽다고 하여

거실에서 그럭저럭 버티다가 결국 건넌방으로 내쫓긴

머슴의 신세

요즘 따라 참 가관이다


그 건넌방은 사실 우리 가문의 기일제사를 지내는 방인데

잠이 들만하면 귀신들이 나타나 날 깨우는데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첫날엔 성산 일출봉 귀신들이 나타나 날 깨우더니

다음날엔 사라봉 귀신들이 나타나 날 불구덩이로 내던져버리더니

날마다 돌아가며 나타나는 귀신들의 면면을 헤아려보니

개중엔 이름 모를 오름의 귀신들이 대다수였지만

어림 삼백예순이 넘겠더라

간혹, 설문대며 영등이며 조왕이며 삼진이며 등등의 할망신들이 나타나

허우적거리는 몸뚱이를 붙들고 어르고 달래기도 하지만

갈수록 몸은 무겁고 목은 뻣뻣하고

그마저 날 돌보는 할망신들이 없다면

동백꽃 떨어지는 어느 날 문득,

옴짝달싹 못 하는 돌하르방 신세로 영영 굳어버릴까

노심초사하는데

 

안방에 주둔하시는 마나님은

날이 갈수록 매서워지는 표정이다

오늘도 밤새 죽어가던 나의 시체詩體

끙끙대며 수습하는 날

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노망老妄같은 잠꼬대 짓

좀 작작하란다

왈왈대며

 


 

 

댓글목록

선돌님의 댓글

profile_image 선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를 읽으니,
마치 제 처지인듯도 하여
同病相憐입니다

문득, 전에 썼던 잡글 하나 떠올라
시감상을 代하여
옮겨봅니다

근데, 우리처럼 늙어가는 건
어쨌던 서러운 일인데
그래도 사는 날까지는
'체면 몰수하고 건강하기' 를
외쳐봅니다

늘 건안하시고,
건필하소서

-------------------------

옛 족보(族譜) 안에


지나간 장소들이 정겹다
전향(轉向)하는 시간의 불꽃이 타들어간다
그곳엔 남들이 하던 말을 주워담은,
과거의 시간들이 빽빽하다
기록된 것들은 대부분 온순했지만,
이따금 사나운 영혼들도 배회(徘徊)한다
여태껏 견디어 오던 사람이 약간
실성한 모습으로 고통에 젖어
공손히 절을 하는 모습도 있다
웃음은 빛의 바탕이라고 우기면서
엎질러진 항아리에 물을 쓸어담는
열심(熱心)한 사람도 있다
마치 관객처럼 그 모습을 동정하는,
사람들은 또, 따로 있다
암담한 생활 속에 외계(外界)의 하늘에서
운명의 별을 찾던 시절도 잠들어 있다
벌레들이 좀 먹은 옛날이 이제야
비로소 평온하다 
모두가 잠든 집 안에
홀로 깨어있는 자명종이 때를 울린다,
죽은 나라의 사어(死語)처럼

김태운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죽은 나라의 언어가 死어로군요
지금 여기 언어는 生어...
차제에 사어들 좀 배워두고 싶네요
저승에 가서 써먹게...
감사합니다
선돌시인님^&^

최현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최현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마나님의 채찍이
백록시인님의 문체를 한라봉 최정상 천년노송가지에 걸리게 할 것입니다.
반듯이......
그 귀신들도 일깨움의 회초리이니 잘 모시 옵소서!
옴~~~흠.

김태운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한라산 정상엔 노송은 온데간데없고 고사한 주목들만 몇 보입디다. ㅎㅎ
벌써 귀신이 되어버린 나무들...
요즘은 자나깨나 귀신 타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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